5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어도 마이크를 든 손은 어색하지 않았다. 기약없는 터널을 통과하고 있지만 그들의 표정은 어둡지도 않았다. 단 하나, 현장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저널리스트의 귀소본능만이 가득했다.
YTN 해직기자 6명이 길게는 7년, 짧게는 5년 만에 방송 리포트를 했다. YTN 정규방송을 탄 것은 아니다. 지난 5~6일 YTN노조가 개최한 ‘해직 5년 희망찾기 캠프’에서 선보인 ‘해직리포트’였다.
YTN노조는 희망찾기 캠프에 앞서 권석재, 노종면, 우장균, 조승호, 정유신, 현덕수 기자에게 ‘해직리포트’를 제작해달라고 요청했다. 해직기자들은 마이크를 잡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자막은 세련되지 않았다. 카메라는 흔들리고 편집도 매끄럽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또렷한 목소리, 꼼꼼한 취재와 제작은 변함없었다. 수년간의 ‘허기’ 때문인지 1분1초의 러닝타임이 부족해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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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승호 기자는 매일 아침 막내딸의 등교를 배웅하는 것으로 해직 일상의 하루를 시작한다. 조 기자의 ‘해직리포트’ 중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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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타임 7분의 조승호 기자의 해직리포트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모습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해직기자이자 ‘딸 바보’ 아버지로서 진솔한 고뇌가 이어진다.
“아빠는 직업이 뭐야? 아빠는 왜 회사 출근 안해? 그런 질문을 할 때마다 좀 가슴이…. 애한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을 내가 이러고 있어야 되느냐….”
리포트에서 보여준 막내딸을 학교 앞까지 배웅하고, 텃밭을 가꾸고, 아내를 위한 효소를 재배하고, 마라톤을 뛰는 조 기자의 일상은 과거 부지런했던 현업 생활 그대로라고, 또 현장에 대한 갈증이라고 동료들은 입을 모았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로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막막합니다. 강태공이 낚시를 하면서 때를 기다렸듯이 저는 효소를 저으며 시간과 싸우고 있습니다.”
조승호 기자의 해직리포트는 부인이 대신 촬영을 맡았다는 뒷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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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덕수 기자의 ‘해직리포트’ 중 한 장면. 작고한 부친의 묘비에는 ‘언론인 덕수’라고 새겨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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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해직 직전까지 노조위원장으로 전임자 생활을 했던 현덕수 기자는 실로 오랜만에 손수 제작한 리포트였다. 해직이라는 거대한 성벽까지 무너뜨릴 듯한 고향 땅 제주의 바람소리로 그의 7년만의 7분짜리 리포트는 펼쳐졌다.
카메라를 들고 백사장을 달리는 그의 표정에는 해직의 그늘보다 언젠가 동료들의 품으로 돌아가리라는 희망이 더 커 보였다. 추석을 맞아 오랜만에 한 가족이 모인 부친의 묘비 앞에서 현 기자는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해직 기간인 지난 2009년 별세했다.
“몇 해 전 세상을 등지신 아버지의 묘비엔 아들은 여전히 언론인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비록 현장과 마이크를 빼앗겨 5년이란 세월이 흘렀어도 쉽사리 이 길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를 이곳에서 되살립니다.”
해직기자 중 막내이지만 어느덧 14년차의 중견이 된 정유신 기자. 그의 리포트의 중요한 등장인물은 두 딸이었다. “가족이 없었다면 지난 5년을 어떻게 버텼을까… 첫째가 생겼을 때 1심 전원 복직 판결이 들려왔고, 납득하기 힘든 2심 판결로 낙담하고 있을 때 둘째를 얻어 희망이라 불렀습니다.”
YTN노조는 해직리포트를 상영한 이번 희망캠프가 뜻깊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노조는 “해직사태가 해결되는 순간부터 YTN은 제2의 비상을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확인했다”며 “노동조합은 이 ‘5년’을 회사 발전을 위한 큰 전환점으로 삼고자 한다”고 밝혔다.
해직기자들 리포트에서 전환점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동트기 전이 더 어둡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태양은 뜨기 마련입니다. 일출봉 위로 솟아오른 해를 보며 우리의 내일도 곧 오리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모두 함께’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YTN 현덕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