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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보다 문화가 문제…선임기자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와 소통'"

기자협회 주최 '2013 대기자·선임기자 세미나' 현장 중계

김희영 기자  2013.10.02 14: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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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달 26일 한국기자협회 주최로 제주KAL호텔에서 열린 ‘대기자·선임기자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데스크나 현장에서 일하는 기자들에게 불편을 끼치지는 않을까, 취재원들에게 주책이라고 욕만 먹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다. (중략) 선임기자 제도는 ‘후배 데스크’와 ‘선배 선임기자’의 주도면밀한 의사소통이 전제되지 않으면 정착하기 어렵다. 그런데 원활한 의사소통은 시스템이 아니라 편집국이나 보도국의 전반적인 문화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선임기자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는 지난 6월 20일자 관훈저널에서 ‘선임기자의 일상과 고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선임기자와 대기자, 그리고 전문기자의 녹록치 않은 취재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기자협회 주최로 지난달 26~27일 제주KAL호텔에서 열린 ‘대기자·선임기자 세미나’에는 전국 주요 신문·방송·통신사 25여명의 기자가 참석한 가운데 대기자와 선임기자, 전문기자 제도의 정착을 위한 토론의 장이 마련됐다.

언론사별 제도 뒤죽박죽
권영철 CBS 선임기자는 이날 발제에서 선임기자 제도가 정착하지 못하는 원인에 대해 “각 언론사마다 선임기자제를 제대로 활용하기보다 인사적체 해소를 위한 대증적 방법의 하나로 이용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 선임기자 제도를 가장 먼저 도입한 한겨레의 ‘선임기자제 운영 지침’에 따르면 ‘본 지침은 일정한 경력과 보직 경험 등을 갖춘 기자를 선임기자로 임명하여 다시 일선 기자로 활동하게 함으로써 이들의 오랜 경험과 필력을 콘텐츠 경쟁력 제고에 활용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훌륭한 역할을 해내고 있는 선임기자가 있는 반면, 무늬만 선임기자인 채 지면 메우기에 동원되는 경우도 있다. 언론사별로 운영 형태도 뒤죽박죽이다. 권 선임기자는 “보직을 주자니 자리가 없고, 그래서 선임기자로 발령냈다가 당사자가 소위 ‘물먹었다’고 생각하고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며 “후배가 국·부장이 되면 그 밑에서 지휘를 받으며 기자생활을 지속해야 하나 고민하는 얘기도 많이 듣는다”고 전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선임기자들도 저마다의 속내를 털어놨다. 이석우 서울신문 선임기자는 “회사 입장에서는 선임기자 한 명보다 젊은 기자 2명을 쓰는 게 나을 것”이라며 “어떻게 내가 2명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심층성 있는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선임기자 생활 2년 동안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이광형 국민일보 선임기자도 “선임기자는 참 어려운 자리”라며 “남들이 ‘선임기자는 뭐하는 기자냐’고 묻지만 아직도 선임기자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데스크, 결정자 아닌 조정자 돼야
배정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외국의 대기자 및 전문기자 사례에서 활로를 찾길 주문했다. 배 교수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경직된 고용시스템, 철저한 기수 문화, 출입처 제도, 상명하복의 편집국 분위기 등이 대기자·전문기자 제도 정착에 방해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실제 미국에서도 60대를 넘어 현직 기자를 하는 것은 흔한 현상이 아니다. 그러나 75세까지 일한 댄 래더 CBS 앵커, 92세로 타개 직전까지 50년간 백악관을 취재한 헬렌 토마스, 70세인 워터게이트 보도의 주인공 밥 우드워드 등 현장을 누비는 노장 기자들의 활약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미국에서 대기자·전문기자 제도가 정착할 수 있던 배경에는 △유연한 고용시스템 △철저한 능력 중심의 인사 문화 △기자와 에디터 간의 수평적 관계 △기자의 전문성 개발을 돕는 언론사 내외부의 풍부한 지원 등이 있다. 특히 뉴욕타임스의 경우 유능한 인력을 상시 채용하는 인사 시스템을 통해 전문성을 가진 프리랜서 기자들을 확보하고 있었다. 또한 영국은 ‘BBC 아카데미’라는 언론사 자체 교육기관과 저널리즘 스쿨 NCTJ(National Council for the Training of Journalists) 등을 운영하며 기자들의 경력개발과 경쟁력 향상을 돕고 있다.

이를 통해 배 교수는 대기자·전문기자 제도 정착을 위한 대안을 제시했다. 첫째는 인사시스템 개편이다. 공채 중심의 채용시스템을 상시 채용 등으로 다변화하고 연공서열을 탈피, 능력 중심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둘째는 편집국 내부 문화의 혁신이다. 대기자와 전문기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출입처 중심의 취재 관행을 개선하고, 데스크의 역할도 권위적 결정자가 아닌 책임 있는 조정자로 변화해야 한다. 마지막은 기자 전문성 교육에 대한 장기적 지원과 투자다. 기자 스스로가 자신의 부가가치를 높이려는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

문화 개선·경쟁력 확보가 핵심
이러한 해외 사례가 우리나라 언론환경에 적용 가능한 방안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었지만 편집국 문화를 개혁해야 한다는 지적에는 참석자 모두가 공감을 표시했다. 특히 모범사례로 꼽히는 선임기자들의 공통점은 후배 기자들과의 협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신상순 한국일보 선임기자는 “선임기자로서 강렬하게 원한 것은 ‘기자 끝날 때까지 현장에 있겠다’는 것”이었다며 “후배들과 야근도 하고, 1단짜리 사진도 찍고, 등산이나 스킨스쿠버 등 별걸 다했다.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열심히 했다. 덕분에 후배들과의 관계도 점점 좋아졌다”고 말했다.

성한용 선임기자와 신상순 선임기자뿐만 아니라 깊이 있는 칼럼으로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서화숙 한국일보 선임기자, ‘최보식이 만난 사람’의 최보식 조선일보 선임기자, CBS 1호 선임기자인 권영철 선임기자 등도 언론계에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경험과 넓은 인맥을 통해 다른 기사들과 차별화된 심층 기획물, 인터뷰 기사 등을 전달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는 “회사 측에서는 선임기자를 ‘제도’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저 기자 한 명이 열심히 하는 것으로 보고 끝낸다”며 “내가 무엇을 위해 열심히 뛰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년 때까지 현장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제도적으로 확실하게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언론인공제회를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서이석 동아일보 기자는 “후배들을 위해 연금 문제를 해결해야 좋은 인재들이 와서 제4부의 역할을 하지 않을까”라고 반문하며 “기자들이 기댈 곳이 있어야 정년까지 열심히 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를 맡은 김홍국 tbs 보도국장은 “결국 스스로 능력과 지혜를 갖춘 언론인임을 인정받는 점이 중요하다”며 “이와 함께 선후배간 융화와 제도적 개선, 정부의 지원 등의 흐름이 이어질 때 선임기자·대기자·전문기자가 정착되고 언론의 위기가 해결될 가능성이 생긴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권영철 선임기자는 언론인으로서의 ‘용기’를 강조했다.
“허명과 허세, 그리고 가오를 버리는 일이 가장 어렵다. ‘내가 부장까지 지냈는데’, ‘새카만 후배가’ 등의 의식을 버려야 한다. ‘나는 기자다’라는 자부심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려놓는 용기, 현실을 받아들이는 용기,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