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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기자실, 때 아닌 '프린터' 전쟁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 PDF 파일로 배부
문서 일일이 타이핑…'정부 3.0' 시대 무색

원성윤 기자  2013.09.25 14:4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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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예비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통과된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기자실에서는 때 아닌 ‘프린터’ 전쟁이 벌어졌다. 국회가 배포한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 PDF 파일을 출력하느라 길게 늘어선 줄 때문이었다.

총 84페이지로 구성된 이 파일에는 수원중앙지방법원이 보낸 2페이지 분량의 체포동의안과 국정원이 보낸 구속영장청구서가 함께 첨부돼 있었다. 그동안 언론에서 단편적으로 보도된 이 의원의 내란음모혐의와 이른바 ‘RO’ 및 핵심인사들의 활동상이 상세하게 포함됐다.

문제는 PDF 파일의 양도 상당했지만 문서 내용을 복사할 수 없는 그림파일 형태의 PDF 파일이었다는 것. 이 때문에 기자들은 내용을 일일이 받아쳐야 했다. 또 각도를 5도 가량 틀어서 원본 형태로 인식할 수 없게 해놓았다.

기자들은 문서를 출력하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을 허비했다. 프린터가 텍스트가 아닌 그림파일을 인식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탓이다. 특히 속보를 보내야 하는 통신사 기자들은 더욱 애가 탔다고 전했다. 문서가 우측으로 틀어져 있는데다 출력상태도 좋지 않자 기자들은 이 파일을 받아본 데스크로부터 “너는 이런 거 하나도 제대로 못 보내냐”며 핀잔까지 들었다는 후문이다.

이에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정부로부터 받은 자료 가운데 체포동의안만 공개했고 구속영장청구서는 보안상의 이유로 의원들만 볼 수 있도록 했다”며 “문서에 변형을 준 것 역시 보안상의 이유”라고 답했다.

하지만 어차피 언론을 통해 구속영장 청구 내용이 곧바로 알려졌기 때문에 보안상의 이유를 내세우는 것은 군색하다는 지적이다. 한 지상파 방송사의 국회출입 기자는 “문서 전체를 출력하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려 늦게 온 기자들은 회사에 내용을 보고하는데 애를 먹었다”며 “모든 정보를 공개하는 정부 3.0 시대를 열겠다고 하면서 굳이 공개될 정보를 기자들이 일일이 치게 만드는 폐쇄적 접근방식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부 3.0’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7월 대선 출마 선언 후 첫 번째 공약으로 내걸었을 정도로 높은 관심을 보여 왔다. ‘정부 3.0’은 국민의 알권리 충족을 위해 국민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는 정보를 그대로 사전에 공개하겠다는 뜻이다. 이는 2009년 미 오바마 대통령이 내건 ‘정부 2.0’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우리나라에 ‘정보 3.0’이 자리잡기 위해서는 정보의 질은 물론 공개 방식도 활용이 원활하도록 개선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때문에 안전행정부도 내년부터 공개 결정된 정보를 청구인에게 제공할 때 한글·엑셀·파워포인트 등 생산된 원문을 있는 형태 그대로 제공할 계획이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소장은 “정부 3.0을 추진하는 목적은 콘텐츠를 자유롭게 융합하기 위한 것인데 이번 조치는 이를 가로막은 것”이라며 “공무원들이 정보가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료에 제한을 걸어두고 있다. ‘정부 3.0’이라고 구호만 외치지 말고 자료를 자유롭게 가공해서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