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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선출제 갈등…'편집권 독립' 논의 급부상

"신문·방송법 관련 조항 둬야" 지적도

김희영 기자  2013.08.28 14: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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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5월6일 서울 남대문로 한국일보 편집국에서 한국일보 기자들이 하종오 당시 편집국장에 대한 임명동의 투표 실시 뒤 개표 작업을 벌이고 있다.(한국일보 노조)  
 
서울신문 편집국장 직선제 부활 화두
부산일보 사측 3인 추천제 폐지 요구
KBS 소수이사 ‘8개 국장 직선’ 촉구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선출제도가 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1987년 6·10민주화운동이 낳은 언론사 노조 연쇄 설립 이후 난산 끝에 일선 기자들이 편집·보도국장 선출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20여년이 넘은 시점에서 논의가 재가열될 조짐이다. 보도조직의 수장을 뽑는 과정에 기자들이 참여하는 제도는 편집권·제작자율성 독립의 근간이어서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서울신문 노사가 지난 6월부터 진행중인 임단협의 최대 쟁점은 ‘편집국장 직선제’ 부활이다. 서울신문은 지난 2000년 ‘제한적 직선제’를 도입한 이후 2006년 ‘결선투표제’로 정비해 완전 직선제를 운영했다. “직선제는 대주주인 정부의 영향력 아래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서울신문이 최소한의 편집권 독립을 구현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는 게 노조의 입장이다.

논란 끝에 2009년 단체협약 개정을 통해 편집국장 직선제를 ‘임명동의제’로 전환했지만 직선제 부활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기자들의 편집권이 계속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노조는 지난 5월 이철휘 사장의 선임에 주도적 역할을 한 곽태헌 우리사주조합장이 편집국장에 지명되면서 반발하기도 했다. 노조는 지난 14일 공보위를 통해 “최근 서울신문은 청와대에서 월급과 보너스를 받던 80년대 관보 수준으로 되돌아간 듯하다”고 비판했다.

1988년 국내 신문사 중에 처음으로 기자들이 참여하는 편집국장 선출제도를 도입했던 부산일보는 서울신문과 정반대의 상황이다. 8월부터 진행된 단체협약 협상에서 사측은 ‘편집국장 3인 추천제 폐지’를 주요 안건으로 들고 나왔다. 편집국장이 회사 방침에 협조를 해주지 않아 경영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 사측의 논리다. 노조는 협상에 응하지 않고 3인 추천제를 끝까지 지키겠다는 방침이다.

서준녕 부산일보 노조위원장은 “편집국장을 사실상 직선제로 뽑는 3인 추천제는 편집국 독립의 상징적인 제도”라며 “회사는 정치 투쟁으로 몰고 가지만 이것은 언론인으로서 자존심을 지키는 문제다. 이 제도 때문에 경영이 악화된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공영방송 KBS에서도 국장 직선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KBS 이사회는 지난 14일 야당 측 소수이사들이 수신료 인상의 조건으로 제시한 ‘8개 국장 직선제’ 안건을 부결시켰다. 이 안건은 보도국장과 편성국장, 제작국장 등 보도 및 여론과 관련된 8개 국장을 해당부서 기자와 PD가 과반 찬성을 전제로 직접 선출한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야당 추천의 소수이사들은 “KBS가 독립성·자율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국·실장에 대한 인사권조차 대통령이 임명한 사장에게 일방 귀속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많은 언론사들은 편집·보도국장 선출 제도를 단협에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를 ‘지키려는 자’와 ‘뒤집으려는 자’들 간의 갈등으로 내홍 조짐을 보이고 있다.
편집·보도국장의 선임 방법은 경영진 지명, 임명동의, 2~3인 추천제, 직선제 등으로 나뉜다. 임면에 관여하지 않는 대신 중간평가제를 실시하는 곳도 있다.

주요 종합일간지 대부분은 임명동의, 중간평가 등을 통해 편집권 독립의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
동아일보, 경향신문, 한겨레, 서울신문, 한국일보, 연합뉴스는 편집(총)국장 임면동의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중 경향신문은 편집국장 탄핵, 한겨레는 편집국장 중간평가, 연합뉴스는 편집총국장 중간평가 제도를 함께 운영한다. 중앙일보는 편집국장 불신임 건의제를, 국민일보는 편집국장 중간평가제를 운영중이다.

반면 지상파 방송사는 신문사에 비해 관련 제도가 미비한 실정이다. KBS와 SBS가 보도본부장 임기 1년 후 중간평가를 시행하는 것이 전부다. MBC는 노사 공방위에서 보도국장을 탄핵할 수 있는 근거조항을 둔 단체협약이 있었지만 현재 폐기된 상태다. 보도국장 임명 후 기자들과 벌여왔던 정책토론회도 김재철 전 사장 취임 후부터 없어졌다. YTN은 노사합의로 2001년부터 보도국장 3인 추천제를 실시해왔으나 2009년 폐지됐다.

하지만 언론계에서는 “제도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가지고 있어도 사측이나 정권의 의지에 따라 관련 합의가 무력화되거나 퇴행하는 일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학계와 언론계 인사들은 편집·보도국장 직선제를 편집권 독립을 위한 가장 이상적 제도로 꼽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편집권 독립을 명문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단협에서 편집권 독립을 규정한 것 자체가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며 “실제로 최근 법원에서 책임공방을 가릴 때 협약을 준수했는지 여부를 많이 따져본다”고 말했다.

지난달 법원이 한국일보의 편집국 폐쇄가 위법하다는 결정을 내린 것도 단협을 위반했다는 점이 주효했다. 법원은 하종오 당시 편집국장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측이 임명 5일 전 편집국장 내정자를 노조에 통보하지 않았고, 한국일보 기자들이 임명동의 투표를 부결시킨 점이 근거였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제도를 더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노사합의를 위반해도 처벌을 받지 않는 권고사항에 불과하다는 것이 문제”라며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했을 때 사주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도록 신문법·방송법 등에 관련 조항을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도를 넘어서 더 근본적인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희완 민언련 사무처장은 “각 언론사들이 관련 제도를 통해 편집·보도국장을 선임하고 있지만, 또 다시 사측이나 정권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며 “제도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의 문제다. 정부의 영향력이 개입될 수 없도록 근본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