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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지혜 중앙일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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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담임 선생님은 내 생활기록부에 이렇게 적으셨다. “모르는 내용을 배울 때에는 눈을 반짝임.” 이는 공부 좀 한다고 평소 수업시간에는 집중하지 않는 건방진 중딩을 에둘러 꾸짖는 말이었을 것이다. 이 말을 듣고도 “뭐래~”라며 신경도 안 썼으니, 건방지긴 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보다 열 배는 더 건방질 중3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게 됐을 때 업보구나 싶었다. 대체 아이들의 눈을 어떻게 반짝이게 만들 것인가. 국제부에서 근무한 지 2년, 그냥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한다면 백전백패가 뻔했다. 아이들이 이집트의 쿠데타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지 않은가.
“기자님, 우리 학교 아이들 대부분은 기자를 만나본 적도 없어요. 어렵게 뭘 가르치려고 하지 마세요. 기자님이 지금까지 뭘 하셨는지 그 설명만 해도 신기해할 걸요.” 연천중 오인선 선생님이 준 답은 예상 외로 쉽고 명쾌했다.
조언에 따라 초년병 때 취재했던 사건을 예로 들어 기자가 하는 일을 설명하기로 했다. 그래서 택한 것이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 사건이었다.
“유영철이 누구인지 알아?”라고 묻자 아이들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조사도 마무리 않고 사건을 공개해 경찰과 언론 모두 유영철의 입에 놀아난 일, 검거 과정에서 마사지방 업주의 공이 숨겨진 일, 경찰 말만 듣고 피해자들을 윤락여성으로 표현했다 유족들의 공분을 산 일 등 기억나는 것은 모두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토막난 시체 봤어요?” 등 예상했던 수준의 질문들이 나왔다. 그런데 갈수록 “처음부터 왜 피해자 가족이랑 업주를 안 만났어요?” “경찰이 말 안해주면 취재 못하는 거에요?” 등 말문이 막히는 질문이 쏟아졌다. “아니, 취재라는 게 한계가 있고, 그런 부분까지 다 챙기기는 물리적으로…”라고 말하는 내 자신은 물먹은 뒤 데스크에게 쪼일 때보다 더 구차했다. 비겁하다 싶어 “너희 말이 맞아. 당연히 했어야 하는 건데 언론이 놓친 거야. 하지만 덕분에 피해자 보호 필요성이 처음 논의됐는데 그건 긍정적 기여라고 생각해”라고 말하고 나서야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리고 나도 동시에 끄덕였다. ‘맞다, 그게 진짜 기자인데, 내가 무슨 변명을 한 거지.’ 아이들의 맑은 눈은 입사 전형 때 면접관의 눈빛보다 더 매섭게 나의 ‘초심’을 뚫고 있었다.
쉬는 시간에 날 뒤쫓아온 아이들 몇 명이 말했다. “선생님, 멋있어요! 나도 나중에 기자 할래요!” 앞으로 나에게 독자는, 나를 선생님이라 불러주고, 나와 같은 일을 하겠다고 해준 이 아이들이다. 재능을 기부하려고 간 자리에서 난 열정이라는 더 큰 선물을 받아들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