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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난한 '포스트 저널리스트' 삶…타 직종 선택지 좁고 미디어 시장은 악화

2013년, 기자들에게 미래는 있는가 (3)인생 이모작-망망대해로 떠나는 길

장우성 기자  2013.07.31 14:4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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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개 언론사 보도·편집국장 평균 51.4세
60세 정년 연장돼도 실질적 정년은 빨라
이모작 준비 ‘선택 아닌 필수’ 시대 도래


모 일간지 출신의 A 기자는 정년퇴임 후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언론사에서 고위직까지 지낸 그가 3~4개 대학에서 시간제 강의를 통해 벌어들이는 총 수입은 기자 시절의 절반 정도. 그는 애초 한 대학의 전임 교원 임용에 지원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현역 시절 내로라하는 특종을 터뜨렸던 자부심에 자만하지 않고 주경야독으로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지만 현실의 높은 장벽을 실감해야 했다.

그나마 자리를 구했으니 나은 케이스라는 소리도 나온다. ‘포스트 저널리스트’의 선택지로서 선호되는 게 교육자의 길이지만 지원자는 많고 문호는 좁다. 언론학 교수 1세대는 대부분 현업 출신이었지만 지금은 현장 이력이 없는 ‘강단 학자’들도 학교에 남기가 힘든 실정이다. 그의 모습으로 보고 주변의 동료 후배들도 남의 일이 아니라는 분위기다.

가을쯤 정년퇴임이 예정된 B 기자는 요즘 앞으로 진로 모색에 고심 중이다. 한 신생급 매체에서 영입 제안을 받았지만 왠지 내키지 않는다. 옮기더라도 문제는 복잡하기 때문이다.

제안을 하는 쪽에서는 주로 회사를 먹여 살리는 역할을 기대한다. 언론계의 좋은 시절은 지난 지 오래다. 미디어 시장은 작은 파이를 놓고 필사적인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날로 악화되는 시장 환경에서 “기자 생활할 만큼 했는데 이 나이 들어서 또 ‘마케팅 인생’을 살아야 하나”라는 회의가 돌아온다. 현장에서 ‘콘텐츠 생산자’의 입장에 남더라도 기자 생활의 전성기가 어느 정도 지난 뒤라 경쟁력을 갖추려면 젊은 시절 이상의 정신적·육체적 투자가 필요할 게 뻔하다. 고민 중인 그에게는 얼마 전 만난 한 언론사에서 임원까지 올랐던 한 동기생의 토로가 귀에 묻어 있다. “이제 미디어 시장은, 특히 활자매체는 어디든 전망이 없다.”

다른 직종으로 가자니 벽이 높고, 언론계에 남자니 무엇보다 전망이 어둡다. 정년퇴임한 기자가 성공적으로 인생 이모작을 도모하기에 현실은 우호적이지 못하다.

이 또래의 기자들은 더욱 절박하다. 정년인 55~58세를 채우더라도 가장으로서 책임감은 면제되지 않는다. 이 연차라도 아직 자녀들이 대부분 대학 졸업 전후인 게 일반적이다. 요즘은 졸업과 동시에 취업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라 부모의 뒷바라지 기간이 연장되는 실정이다. 자녀가 취업의 관문을 통과하더라도 결혼이라는 ‘거사’가 남아 있다. 회사를 그만 둬도 5~10년은 더 수입이 필요한 셈이다. 이러다 보니 기자들의 노후 설계는 아예 꿈꾸기도 불가능하다. 더욱이 기자 생활만 하기에도 정신이 없었는데 재테크나 자산 불리기는 기사는 쓸지언정 자신의 일은 아니었다.

이모작의 설계부터 실행까지 부담은 역시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다. 언론사 차원에서 퇴임을 앞둔 기자들에게 지원을 해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조선일보가 실시하고 있는 ‘전직자 지원제’가 그나마 몇 안되는 사례로 꼽힌다. 2007년 도입해 시행 중인 이 제도는 정년을 앞둔 사원들이 전직교육기관 이수를 원하면 퇴임 3개월 전부터 유급휴가를 주거나 최고 300만원까지 금전적 지원을 해준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지금까지 이 제도를 이용한 사람은 6년 동안 15명. 그나마 정년까지 회사에 남아 있어야 신청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수혜자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포천지 선정 500대 기업 중 80%가 전직자 지원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한국 언론사에는 꿈같은 이야기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일부 주요 신문사에서는 정년퇴임 뒤에도 계약직 형태로 근무를 연장해주는 사례도 있다. 그러나 선택이 가능한 기자들은 극히 제한돼 있어 보편적인 대안은 되지 못한다.
이같이 정년퇴임을 앞두고 이모작을 준비하려면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때가 늦다. 그래서 중견에 이르면 벌써부터 이직을 도모하는 기자들이 생겨난다.

또한 실질적 정년은 더 빨리 찾아온다는 점도 작용한다. 2016년부터 정년이 60세로 연장돼도 언론사의 실질적 정년은 50대 초반이다.
본보 조사에 따르면 KBS, MBC, SBS, 경향신문, 국민일보, 내일신문, 동아일보,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등 중앙 방송사·종합일간지 11곳의 보도·편집국장 평균 연령은 만 51.4세로 나타났다. 최연소 45세에 40대 국장도 2명이다. 기자로서 사실상 최고위 직인 보도·편집국장의 나이에 따라 선배나 동기급들은 무언의 압력을 느끼게 된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정년은 51세라는 규정이 성립된다.

점점 열악해지는 미디어환경도 기자들을 일찌감치 이모작에 내몰고 있다.
지난해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수행된 주정민 전남대 교수의 ‘언론인 복지증진을 위한 정책방안 연구’에 따르면 현직 언론인 38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58.0%가 전직 또는 이직 의사가 있다고 밝힌 것도 한 예다. 가장 많은 이유가 ‘향후 비전의 부재’(38.7%)다. 이직·전직 희망자 중 68.0%는 다른 직업이나 업종으로 옮길 것을 희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초년 시절부터 주로 사회부에서 기자 생활을 했던 한 방송사의 C 기자는 7~8년차쯤이 되자 고민에 부딪혔다. 사건 현장을 줄기차게 뛰어다녔지만 문득 뒤돌아보니 “내게 남은 것이 과연 무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물어보게 된 것이다. 30대 중반을 넘겨 곧 불혹을 맞는다고 생각하니 선배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미래를 엿보게 됐다. 10년 후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니 불안감도 느껴졌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잔뼈가 굵은 사회부를 떠나 경제·산업부를 거친 그는 이전에는 생소했던 세계를 경험하게 됐다. 기자 외의 분야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기업 쪽으로의 이직도 고려하게 된 이유다.

하지만 기자들의 주요한 이직 루트 가운데 하나인 기업체도 만만치는 않다. “후배들이 관심을 털어놓으면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편”이라는 기자 출신의 대기업 한 간부도 기업체 이직에도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기자 출신이 기업체로 오면 맡게 되는 일은 대부분 ‘홍보맨’ 업무. 그러나 그것도 ‘티오’가 많지 않다. 갈수록 희망자는 늘어나지만 진입장벽은 높아지는 셈이다.

이직에 성공하더라도 관문은 남아 있다. 기업으로 옮겨도 임원급이 아닌 이상 처우가 현격히 나아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반면 기업의 조직문화는 기자들이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이 간부는 “기자는 자신을 브랜드화할 수 있지만 기업은 조직 중심으로 운영된다. 개인이 중심이 되는 기자 사회와 조직의 일부분이 되는 기업과 차이가 크다”며 “이런 조직문화의 충돌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스스로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에서는 경쟁도 상대적으로 더 치열해진다. 기자 조직은 업무 평가가 쉽지 않고 그에 따른 보상체계도 불명확하다. 기자 업무의 고유 특성에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덧붙여져 비롯된 결과다. 이에 비해 성과에 대한 평가가 뚜렷한 기업에서는 내부 경쟁에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도태되기 일쑤다. 저널리즘의 속성상 ‘공공성’ 성격이 짙은 기자가 이윤을 목적으로 한 일반 기업의 경쟁 체제를 소화하는 데는 기자 생활 당시 이상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기자들에게도 ‘이모작’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의 시대가 이미 도래했지만 언론계의 대비는 부족하다. ‘포스트 저널리스트’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기자들에 대한 노사의 시각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노조는 차장급 이하가 주축인 조합원의 가시적 권익 외에는 신경을 쓰지 못한다. 언론사도 당장의 생존에 급급해 비정규직 확대나 인력의 감축 등 대증적인 고용의 유연성 확보에만 관심을 돌릴 뿐 선순환을 위한 고용정책은 여력 밖이다.

그러나 자의든 타의든 40대 중반이면 기자 생활의 내리막길을 걷는 상황이 늘어난다. 1998년 외환 위기 전 언론의 호황기 때 입사한 인력이 ‘역삼각형’ 인력구조를 형성하는 시점이 멀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종합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