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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 무릎꿇지 않은 기자' 헬렌 토머스 별세

NYT 등 외신들 일제히 애도

한형직 기자  2013.07.23 17: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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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헬렌 토머스가 2000년 펴낸 자서전 '백악관의 맨 앞줄에서'의 표지  
 
미국 백악관 기자실의 전설 헬렌 토머스가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 자택에서 92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존 F. 케네디부터 버락 오바마까지 50여 년간 10명의 전‧현직 대통령을 취재한 그는 백악관의 터줏대감이자 대표적인 여성기자로 이름을 떨쳤다. 지난 2010년까지 80대 후반의 나이에도 현장에서 노장 기자로 활발히 활동하기도 했다.

헬렌 토머스의 별세 소식에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유나이티드 프레스 인터내셔널 등 외신들은 그의 행적과 일화 등을 주요하게 다뤘다. 이들은 백악관에 첫 여성기자로 입성한 헬렌 토머스의 선구자적인 행보를 높게 평가했다.


뉴욕타임스(NYT)는 20일자 기사에서 “토머스의 날카로운 호기심과 지칠 줄 모르는 투지는 남성 위주의 백악관 기자단에서도 그를 선구적 기자로 만들었다”며 “직설적인 질문과 예리한 톤은 대중들에게도 익숙한 그만의 개성”이라고 설명했다.


NYT는 “동료들에게 그는 비공식적이지만 반론의 여지가 없는 기자단의 장(長)”이라며 “백악관 기자회견의 끝엔 늘 ‘고맙습니다, 대통령님’이란 그의 상징적 말이 있었다”고 전했다.


헬렌 토머스는 공격적이고 직설적인 질문으로 ‘언론의 퍼스트레이디’로 불렸다. 백악관에 남성 저널리스트 일색이었던 1960년대 당시 백악관 브리핑룸 맨 앞줄에 앉아 대통령에게 거침없는 질문을 쏟아냈다. 워싱턴포스트(WP)는 그의 이러한 모습을 빗대 ‘대통령들의 골칫거리’라고 표현했다.


WP는  21일 기사에서 “토머스는 백악관 기자실 앞줄에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10명의 대통령들을 짜증나게 했다”며 “그는 연방 공무원들이 비밀로 하려던 정보를 폭로하는 데 뛰어났다”고 보도했다. 또 “그는 대통령이나 언론담당 비서들에게 겁먹지 않았다”며 “뾰족한 의문은 권력을 뒤흔들었다”고 밝혔다. 토머스는 지난 2006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신은 진실을 캐기 위한 질문과 무례한 질문을 어떻게 구분하느냐”는 물음에 “무례한 질문이란 건 없다”고 답한 바 있다.


헬렌 토머스가 50년 동안 몸담은 UPI통신도 20일 “헬렌은 워싱턴 지역 기자들에게 단순히 ‘헬렌’으로 통했다”며 “그는 여성 원로이자 백악관 기자단의 총괄 사제였다”고 밝혔다. UPI는 “그는 권력의 유혹에 절대 무릎 꿇지 않았다”며 “백악관 출입기자로서 10명의 대통령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고 보도했다.


토머스는 1920년 켄터키 윈체스터에서 레바논계 이민 2세로 태어났다. 1943년 유나이티드 프레스(United Press, UPI통신의 전신)에 입사한 후 1950년대 초 정부부처를 출입하다 1960년 케네디 대통령 당선과 함께 백악관에 들어왔다. 이후 백악관 기자단 첫 여성 간사와 미국 중견 언론인 모임인 그리다이언 클럽(Gridiron Club)의 최초 여성 회장을 지냈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방중을 수행하는 유일한 여성 기자이기도 했다.


2000년에는 UPI통신이 뉴 월드 커뮤니케이션즈(New World Communications)에 합병되며 백악관을 잠시 떠났지만 허스트 코포레이션(Hearst Corporation)의 백악관 출입기자로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2010년 6월 백악관에서 열린 유대인 관련행사에서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을 떠나 폴란드, 독일로 돌아가야 한다”는 발언이 논란이 돼 기자직을 사임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20일 성명에서 “헬렌은 민주주의를 향한 집요한 신념으로 미국 대통령들을 항상 긴장하게 만들었다”며 “그는 저널리즘 분야에서 여성이라는 장벽을 깨뜨린 진정한 개척자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