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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牛步千里)

YTN 해직기자 공정방송 국토순례기 / 조승호 기자

YTN 조승호 기자  2013.07.03 14:4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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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승호 기자  
 
파란색 수술복 입은 진주의료원의 간호사
일하고 싶은 사람이 일할 수 없는 건 형벌
나보다 더 가슴아파하는 후배들과 걸으리


돌아오니 역시나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나 또한 이런 작은 발걸음 하나로 세상이 바뀌리라는 환상은 애초부터 갖지 않았다. 그렇지만 국토순례 기간 응원해주신 수많은 분들을 통해 이것 하나만은 깨달았다. 우리가 비록 승패의 싸움에서는 지고 있을지 몰라도, 옳고 그름의 싸움에서는 분명 이기고 있음을…. 그리고 지금 이 순례기를 쓰고 있다.

처음 국토순례 제안이 나왔을 때 내가 참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챙겨야 할 아이가 셋이나 되고 아내도 출근을 해야 하는데 19일간 집을 비울 수 있을까? 그러나 의외로 아내는 ‘다녀오라’고 했다. 그렇게라도 마음의 응어리를 풀고 오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후배들이었다. ‘정작 고행을 해야 마땅할 사람들은 그냥 있는데, 왜 선배들이 고행길을 떠나야 하느냐’며 반발했다. 이들 중 일부는 끝내 출정식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걱정이 앞섰다. 이들의 동의조차 얻지 못한 이 길을 과연 우리는 떠나야 하는 걸까?

고민 속에 출발한 국토순례…. 19일간 천리가 조금 넘는 412km를 걸었다. 미디어피폭지 20곳을 방문했고, 9곳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었다. 그들은 우리가 기사를 쓸 수 없는 해직기자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찾아와줘서 고마워했고, 자신들의 말을 들어줘서 고마워했다. 그토록 말이 고팠나 보다. 나 자신 그동안 기자로 살아오면서 국민에게 시청자에게 뭔가를 알리려고만 했지 그들의 말을 들으려 노력했던가? 사람의 눈동자가 검은 이유는 어두운 부분을 통해 세상을 봐야 한다는 의미인데 나는 그동안 기자실에서 보도자료로만 세상을 봐 오지 않았던가? 기계적 중립 프레임에 갇혀 ‘갑’의 횡포에 눈 감고 ‘을’의 고통을 외면해 오지는 않았던가?

진주의료원을 방문했을 때였다. 농성중인 간호사 한 분이 파란색 수술복을 입고 있었다. 아직 환자가 있다기에 환자를 돌보다 나온 건가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다시 일하고 싶어서 입고 있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일이 하고 싶었으면….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나도 주변에서 ‘워커홀릭’이라 불렸었다. 연합뉴스에서 YTN으로 옮겨와 경찰기자를 맡았을 때 나도 똑같은 수습이라 생각하고 후배들과 새벽 ‘마와리’를 함께 돌았다. 돌다가 수습들의 보고를 받았고, 캡에게 보고할 시간이 남으면 남은 만큼 한 번 더 돌다가 보고를 했다. 아침뉴스팀장을 맡았을 때는 그동안 새벽 4시였던 출근시간을 1시간 30분 앞당겼다. 매일 새벽 2시 반에 보도국에 나타나 야근자들에게 밤새 상황을 묻고 다녔다. 어느 후배가 내 이름을 빗대 ‘조승사자’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러던 내가 지금 5년째 일을 못하고 있다. 흔히들 중노동에 시달린다고 말하지만,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 일을 못하게 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은 형벌이다. 그 형벌의 시간을 나는 지금 이렇게 걷고 또 걸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있다.



   
 
  ▲ 지난달 28일 서울 남대문로 YTN타워 앞에서 열린 공정방송 국토순례단 해단식에서 YTN 노조원들이 순례를 마친 해직기자들을 응원하는 대형 박을 터뜨리고 있다. (사진=YTN노조)  
 
국토순례의 막바지 구간으로, 4대강 공사가 이뤄진 남한강 여주보에서 이포보 가는 길. 중간에 당산리라는 마을을 잠시 지날 뿐 9km 가까이 일직선으로 길게 뻗은 자전거길이었다. 시속 3km로 걸었으니 3시간 가량 걸리는 길이다. 낮기온 32도의 뙤약볕 아래를 발만 보고 걷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끝없는 시멘트길과 콘크리트에서 올라오는 아지랑이만 보였다. 앞으로 봐도 끝이 없고 뒤로 봐도 끝이 없는 이 길이 우리 상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나 이 길의 저 앞 어딘가에는 분명 끝이 있겠지만, 우리 앞길에는 과연 어떤 끝이 기다리고 있을까?

순례 기간 YTN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참담하기만 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관련 단독기사가 갑자기 방송이 중단됐다. 국정원 직원이 취재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보도국 회의 내용을 언급하며 압력을 가했다. 보도국 회의 내용을 국정원 직원이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그런데도 기자들을 대변해야 할 보도국장은 오히려 국정원을 감싸고 나섰다. 이 참담한 소식이 무더위나 물집보다 우리를 더 힘들게 했다. 같은 물이라도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고 뱀이 먹으면 독이 된다. 언론은 누가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우유가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언론을 독으로 만드는 뱀은 권력일까, 아니면 권력의 주구(走狗)들일까? 그나마 위안이 된 것은 이에 맞서 싸우고 있는 후배들이었다. YTN 보도가 많이 망가졌지만, 그 안에 기자정신이 살아있는 한 국민의 신뢰를 잃지는 않으리라. 힘들게 싸우고 있는 후배들을 생각하니, 걷기만 하는 우리가 되레 미안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누가 뱀인들 상관없이 우리는 우직하게 소의 길을 가련다. 우보천리(牛步千里)…. 4대강을 온통 회색 콘크리트가 뒤덮었지만 그 사이를 뚫고 녹색 풀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정유신 기자의 말처럼 ‘400km가 넘는, 여태껏 가장 먼 출근길’을 걸어 마침내 YTN 앞까지 왔다. 우리의 출근길을 타사의 언론 동지들이 함께 했다. 숭례문 앞에서 ‘해직기자 복직’ ‘공정방송 사수’가 큼직히 쓰여진 대형 펼침막을 보는 순간 가슴이 울컥해졌다. 우리가 뭐라고 이들은 이토록 우리를 기다렸을까? 우리를 보기 위해 광주까지 밀양까지 내려온 사람들이었다. 출정식에 나타나지 않았던 후배들의 반가운 얼굴도 보인다. 초등학교 운동회처럼 박을 터뜨리자 후배들이 쓴 플래카드가 펼쳐진다. ‘이제는 우리가 걸을 게요’…순례 도중 동행 취재한 기자가 물었었다. “YTN 복직 외에 새로운 길을 고민해 본 적은 없었느냐?” 솔직히 대답했다. “왜 그런 생각을 안 해 봤겠느냐”고…. 그러나 나의 해직을 나보다 더 가슴 아파하는 이들과의 인연을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이제 자신들이 걷겠다는 후배들을 보며 내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내가 앞장서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후배들 옆에서 함께 걷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