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되려거든 기자생활을 집어치우든지, 기자가 되려거든 작가는 아예 단념해 버려야 하겠거늘, 붓 한 자루로 되는 일이라 해서 그런지, 쌍수집병(雙手執餠)으로 두 갈래 물결에 쓸려 내려왔던 것이 나의 과거 문필생활이었다….” -횡보문단회상기
경향신문이 횡보 염상섭(1897~1963) 50주기를 맞아 지난 21일 경향신문 대회의실에서 국제어문학회, 한국작가회의와 공동으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냉소와 소문의 경성, 그리고 염상섭’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학술대회에서는 경향신문 초대 편집국장을 지냈던 염상섭의 언론 활동이 그의 창작활동에 미친 영향이 발표됐다.
기자와 작가로서의 두 길을 걸어온 염상섭은 언론과 문학 활동이 밀접해 있다. ‘해방기 염상섭 문학과 언론 활동’을 발제한 최인숙 인하대 교수는 “염상섭은 언론활동을 통해 당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획득하고 그 정보를 취사선택했다”며 “그의 소설에는 시대 흐름과 당대 사회의 시급한 해결 과제를 예리하게 포착하는 편집자의 감각과 세계 인식이 반영돼 있다”고 밝혔다.
일제 강점기에 만주로 떠났던 염상섭은 1946년 6월 서울로 돌아온 후 그해 10월 새로 창간된 경향신문의 편집국장으로 선임됐다. 당시 염상섭은 주필 정지용과 경향신문의 ‘엄정 중립’을 지향한 논조와 기사를 주도했다는 평가다.
최 교수는 “해방기 염상섭의 언론활동은 자주적인 통일국가 수립을 위한 여론 형성에 주력하고 있다”며 “창간 초기 경향신문은 좌우대립을 지양하고 국민 단결을 호소하며 사회ㆍ경제 질서의 회복, 사회정의의 구현 등에 역점을 둔 논조를 펼쳤다”고 밝혔다.
사실주의 소설도 언론 활동이 바탕이 됐다. 염상섭은 ‘문학상의 집단의식과 개인의식’에서 사실주의에 대해 “객을 주에서 걸러서 보는 것”이라고 밝혔다. 최 교수는 “염상섭 문학의 객관적 시선은 언론활동을 통해 형성됐고 주관적 시선은 이주 등 자신의 생활체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며 “특히 개인의 절대 자유와 해방을 추구하는 중간파적인 시선은 객관적 사실 보도라는 기자정신과 맞물려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한 원동력이 됐다”고 밝혔다.
염상섭은 게이오 대학을 휴학하고 1918년 일본에서 기자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20년 4월 창간한 동아일보의 정경부 기자로 입사했지만 3개월 만에 사직했다. 이후 신생활, 동명, 시대일보 등을 거쳐 1929년 조선일보 학예부장, 1932년 중앙일보 사회부장, 매일신보 정치부장, 만선일보 창간 편집국장 등을 지냈다. 이후 1946년 경향신문 초대 편집국장을 지낸 후 1948년 신민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