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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순직 종군기자 기념비 건립까지

[특별기고] 이긍규 한국기자협회 고문

이긍규 한국기자협회 고문  2013.06.19 16: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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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긍규 한국기자협회 고문  
 
1976년 제15대 한국기자협회 회장 당시 나는 6·25동란에 파견됐던 400명이 넘는 특파원중 18명이 순직, 젊은 나이에 타국에서 산화한 ‘순직 종군기자 기념비’를 제작하기로 했다. 그러나 순직 종군기자 기념비 건립을 추진, 완성하기까지는 애로사항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종군기자 명단만해도 동란 당시에는 우리 국방부에 외국특파원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국방부 정훈국이 없다시피하여 참전 16개국의 사령부에서 각기 자국특파원들을 관리했고, 각국 사령부에서 관리했던 자료들을 수집, 보관했던 서울신문 조사국마저 4·19혁명 당시 화재로 소실돼 찾기 힘들었다.

그러나 다행히 1976년 당시 시사통신 도쿄 특파원이었던 신화식 선생이 도쿄프레스클럽 회장으로 재직하고 계셔서 450명의 종군기자명단과 그들의 생사, 현직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보내주었다.

당시 기자협회비는 월 500원으로 협회보 발간비와 직원 봉급을 주는 것도 빠듯했다. 그래서 일은 저질러놓고 볼 셈으로 6월 내무부 산하 ‘기금모금 승인위원장’이었던 장기영 한국일보 사주를 찾아가 건립취지와 목적을 설명하고 승인을 요청했더니 쾌히 승낙, 회의를 열어 허가를 해주었다. 이어 몇몇 신문사 문화부 기자들을 초청하며 조각가 중 어떤 분을 모셔야 훌륭한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를 상의한 결과 이구동성으로 홍익대 최기원 교수를 추천했다.

생면부지였던 최 교수를 수차례 찾아가 설득, 상의한 끝에 무료봉사키로 의기투합하고 둘이서 건립장소를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헤매던 중 지갑종 김희중(시사통신 사장)씨 등 한국 종군기자분들을 만나, 휴전협정 당시 외국특파원들의 취재, 보도 장소가 문산에 있는 통일공원 앞 철도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철도 위에는 화물객차가 늘어서 있었는데 이 화물객차 안이 종군기자들의 숙소 겸 편집국인 셈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 ‘순직종군기자 기념비’를 건립하는 것이 의의가 있겠다 생각하고 건립을 확정했다.

36년전 늦가을, 초겨울에 시작한 비문작성은 언론계 원로 홍종인 조선일보 주필, 최석채 대구매일회장, 유광렬 한국일보 주필에게 맡겼는데 비문작성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문제가 발생했다. 문제는 최 회장이 홍 논설위원과는 비문 글을 같이 쓸 수가 없다는 것. 이유인즉 홍 위원과 논설위원실에 함께 근무할 당시, 글을 쓰면 홍 위원이 마구 뜯어고치는 악습을 갖고 있어서 그분과는 어떤 작업도 하기가 싫다는 것이다. 그래서 궁리 끝에 세 분이 오시면 홍 논설고문만 따로 영접하여 프레스다방에 커피를 특별주문하고 사람들을 초빙하여 담소토록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랬더니 최 회장과 유 주필이 화기애애한 가운데 우리 언론계의 선비정신, 즉 정의, 박애, 청빈생활을 염두에 두고 비문작성에 최선을 다해주셨다.

두 분께서 작성한 문구중 “먹물은 쓰러져도 정의는 살아 있다”는 구절은 우리 선대부터 내려온 붓 눈화와 서양 텔레타이프의 잉크를 조화시킨 뜻을 담고 있다.
기념비는 1977년 1월에 완성되어 날씨가 추운 3월을 지나 4월27일에 제막식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