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남도발이 절정을 이뤘던 1969년 잊을 수 없는 사건중 하나는 12월 11일 발생한 KAL기 납북사건이었다. 승무원 4명과 승객 47명 등 51명을 태운 KAL기가 강릉을 출발, 서울로 향하던 중 납치돼 북으로 끌려간 것이다.
지난 2월 남북이산가족 3차 상봉때 당시 납북됐던 여승무원중 한명인 성경희씨가 50대 후반의 중노파가 되어 남에서 간 모친과 상봉하는 것을 보고 32년전에 있었던 북한의 반인륜적 만행에 분개했을 것이다. 필자도 상봉장면을 보고 실로 착잡한 감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공중납치됐으니 사건경위도 누가 범인인지도 알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매체들은 “주범은 유병희 부기장으로 알려졌다”는 식으로 계속 보도했다.
필자는 승객들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범인을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당시 남한과 북한, 미국과 북한은 철저한 적대관계로 군사정전위원회가 유일한 대화 채널이었으나 북한은 “의거 입북했다”는 발표외에는 일체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사건발생 3일째 날인가. Q신문의 보도를 보고 언론계가 발칵 뒤집혔다.
“…강릉을 떠난지 10분쯤 후 권총을 든 괴한이 통로 앞에서 ‘우리가 비행기를 완전히 장악했다. 이제 북으로 간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행동을 하면 사살하겠다”고 하자 기내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여기저기서 “아이고 어머니” “이젠 죽었구나”하며 비명, 한숨, 울음이 쏟아졌다. 이어 승객들은 저마다 시·도민증(주민증이었을 때였다)을 꺼내 잘게 찢어 버리거나 목에 삼켰다. 30여분이 지난 뒤 비행기는 함흥 근처의 비행장에 착륙했다. 문이 열리자 비행기 아래에는 험상 궂은 인상에 인민복 차림을 한 50중반의 당간부인 듯한 자가 “동무들! 지상낙원인 공화국 북반에 의거 입북한 것을 널널히(열열히) 환영합네다”라고 말하며 누런 잇빨을 드러낸채 드라큐라 같은 웃음을 웃었다…”
이 얼마나 생생한 현장 스케치인가. 어떻게 이런 기막힌 기사를 취재, 입수할 수 있었을까. 로동신문과 제휴해서 협조를 받거나 또는 북한 당국으로부터의 직접 제보가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기사여서 언론계는 물론 당국도 경악했다. 이 기사는 1판에만 실린후 삭제됐지만 얼마 뒤 허위보도로 밝혀져 기자들의 분노를 샀다. 완전한 작문이었으나 너무나 절박하게 묘사해 한동안 화제가 됐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1950년대 후반∼1960년대 언론계일각에서는 “허위기사” “작문기사” “후라이기사”가 성행했다. 많은 승객을 태운 여객선이 침몰하자 인양하지도 않았는데 “건져보니 여기저기에 시체들이 널부러져 있었다”고 앞당겨 보도, 사기 특종(?)을 했다. 대표적인 후라이기사중 하나는 고종황제의 막내인 이은(李垠) 황세자의 귀국. 구한말 망국때 끌려가 강제 결혼을 한 후 수십년만에 병든 몸으로 귀국하던 날 김포공항에는 200여명의 기자들이 취재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들것에 실린채 비행기에서 내린 황세자는 대기중이던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직행했다. 기자들이 목격한 것은 들것에 실린 황세자가 비행기에서 앰뷸런스로 옮겨지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다음날 모신문 1면에는 “바람이 차구나…” “환국한 왕세자 제성”이라는 큰 컷과 요란한 제목아래 긴 기사가 실려 다른 신문들을 압도했다. 이 이상의 피맺힌 절구(絶句)가 어디 있겠는가. 놀란 타사 기자들이 이방자 여사에게 달려가 묻자, 이 여사는 “뇌일혈로 쓸어진 후 10여년째 말을 못하는 식물인간 상태”라고 대답했다.
기자와 데스크가 함께 만든 가짜 합작품이었던 것이다.
이같은 후라이기사는 나중 월남에 파병된 한국군의 소탕전 등을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때로는 허위로 부풀려 승전보를 만드는데까지 일부 발전하기도 했다. 문제는 당시에는 이런 후라이기사를 쓰는 기자를 “명기자” “유능한 기자”로 은근히 추기는 분위기가 있었다. 사실보도·정확보도가 생명인 언론정신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행위인 것이다.
아무튼 사건발생 1주일 뒤 필자는 모기관으로부터 최석만(崔石萬)이 의사인 채모 등과 공모해서 비행기를 납치한 주범임을 단독 보도해 신문사로부터 특종상을 받았다. 납치된지 두달후인 1970년 2월 14일 51명중 승무원 4명과 범인들, 그리고 북한체제를 비판한 것으로 알려진 인사 등 12명을 제외한 39명이 송환됐다. 귀한자들은 모두 최가 주범임을 확인했다.
잊혀졌던 이 사건은 1980년대 중반 북한서 탈출한 독일 유학생 출신 오길남씨가 납치된 두 여승무원이 강제로 결혼한 후 대남선전 방송인 “구국의 소리 방송”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폭로함으로서 다시 밝혀졌고 지난 2월 그중 성경희씨가 모친과 상봉한 것이다.
성씨에 의하면 최가 주범이고 비행기는 순안비행장에 착륙했다는 것, 기장·부기장 및 동료 정양 등은 결혼해 평양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참으로 가슴 아픈 분단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