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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2월10일 노종면 당시 앵커가 YTN 9시 정시뉴스에서 숭례문 화재 발생 1보를 전하고 있다. (YTN 화면 캡처) | ||
YTN은 전통적으로 ‘현장’에 강했다. ‘대구지하철 폭발’ ‘삼풍 참사’ 등 대형 사건을 신속히 생중계하면서 한국 언론계에 보도전문채널의 존재감을 알렸다. 2008년 숭례문 화재사건도 YTN의 이름값을 재확인한 계기였다. 숭례문이 5년3개월 만에 복원되고 YTN도 연일 관련 보도를 쏟아내고 있지만 어딘가 텅 빈 구석이 있다. 숭례문이 제자리로 돌아왔는데도 당시 첫 보도를 전파한 YTN 앵커로 활약했던 노종면 기자는 해직된 채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2월10일, 설 연휴로 평화롭던 서울 시내가 발칵 뒤집혔다. 숭례문에 연기가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YTN은 화재가 발생한 오후 8시50분 직후 정규 뉴스프로그램을 숭례문 화재 속보로 긴급 전환해 위급한 현장을 전국에 제일 먼저 타전했다. 11시부터는 사실상 생중계로 특보체제에 들어갔다. 첫 보도가 연합뉴스의 1보보다 10분 빨랐다. 지상파 방송사들도 자정이 넘어서야 특보체제에 들어간 것과 비교가 됐다. 숭례문 바로 옆에 YTN 사옥이 있다는 이점도 있었다. 하지만 과감한 판단과 팀플레이가 결합된 결과물이었다는 평이었다.
“숭례문에 불이 난 것 같다.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현장을 목격한 중계팀 PD의 제보를 받은 YTN 보도국은 9시뉴스 시작 직전 큐시트를 나눠보던 중이었다. YTN 옥상에 설치된 ‘8호 카메라’ 모니터에 비친 숭례문으로 기자들의 모든 눈이 집중됐다. 고민할 틈도 없이 예정된 큐시트를 취소하고 톱뉴스로 숭례문 화재를 올렸다. 앵커는 노종면 기자였다. 노 앵커는 9시부터 이튿날 새벽 3시까지 6시간 동안 원고도 없이 혼자서 특보를 치러냈다. 인터뷰 질문도 즉석에서 직접 뽑아냈다. 뉴스 틈틈이 ‘8호 카메라’까지 모니터하며 상황을 기민하게 판단해야 했다.
당시 뉴스PD를 맡았던 황보선 기자는 “평소 순발력이 강했던 노 앵커가 위기 상황에 침착하게 대응했다”며 “순간적으로 기본 정보를 찾고 발 빠르게 숙지해 뉴스를 진행했다”고 기억했다.
YTN이 첫 보도에 그치지 않고 특보를 이어가기로 판단한 것도 노 앵커의 공이 컸다고 한다. 노 앵커가 긴급히 섭외된 목조건축전문가인 신응수 대목장과 인터뷰에서 “붕괴 가능성이 있다”는 답변을 받았기 때문이다. 단순 화재가 아니라 심각한 상황으로 발전할 것을 미리 가늠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숭례문이 붕괴되는 순간 노 앵커의 입에서는 잠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는 “생방송을 하면서 감정을 드러낸 적이 없었는데 그때만큼은 나도 모르게 탄식이 나왔다”며 “우리나라의 국보 1호가 그렇게 무너지는 것이 너무 어처구니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후 노 앵커는 황보선 박영진 기자, 원경태 PD 등과 함께 사내 특종상 금상을 받았다. 하지만 YTN 기자들은 특종의 자부심 이전에 국보 1호를 지킬 수 없었다는 참담한 심정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고 한다.
5년3개월이 지나 그때 갓 입사했던 공채 12기 기자들이 어느덧 후배들을 거느린 6년차 기자가 돼 숭례문 복원을 알리는 리포트의 마이크를 잡았다. 그 한편에서는 숭례문 붕괴에 탄식을 감추지 못했던 노종면 앵커와 해직기자들이 지금까지도 햇수로 해직 6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당시 노 앵커와 함께 특보를 진행했던 황보선 기자는 요즘 숭례문 복원 보도를 위해 중계차를 타고 있다. 그는 만감이 교차한다고 했다. 이명박 정권 출범 직전에 불타 그 정권과 함께 할 수 없는 운명인 숭례문이었다. 그 정권이 막을 내리자 숭례문은 다름없는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노종면 앵커와 해직기자들은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숭례문을 찾았지만 동료들은 찾지 못했습니다. 이런 오늘이 안타깝습니다. 숭례문이 돌아온 것처럼 해직자들도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YTN과 숭례문, 해직기자들, MB정부의 인연은 얄궂다. YTN이 숭례문 시대를 연 것은 지금의 사옥으로 이사 온 2004년. 새 사옥 입주 후 첫 뉴스의 앵커는 현덕수 기자였다. 그 역시 지금 6년째 해직상태다. 그때 YTN 신사옥 입주 테이프를 끊은 사람 중 한명은 당시 서울시장 자격으로 초청된 이명박 전 대통령.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이듬해 숭례문공원 개장에 맞춰 숭례문 앞에서 YTN과 단독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MB정부, ‘낙하산 사장’을 반대하다 해직된 기자들, 그리고 숭례문 사이에 얽힌 실타래는 언제쯤 풀릴 것인가. 내년초 상암동 시대를 열 YTN은 몇달 뒤 헤어져야 할 숭례문을 오늘도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