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인상 의견 접근 소식을 접하고 그저께 처음으로 전 조합원이 함께 삼겹살을 먹었다. 그랬는데… 어제 아침 내려갈 준비를 하고 나를 기다리던 조합원들에게 차마 뒤통수를 맞았다고 얘기할 수 없었다.”
‘최저임금과 극빈생활 탈출’을 내걸고 39일째 파업 중인 KBS 차량 노동자들은 24일 천당과 지옥을 경험했다. 임금 총액 2억2500만원을 인상키로 한 노사 간의 잠정 합의가 하루 만에 뒤집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23일 밤 방송차량서비스 노사는 임금 인상 재원으로 총액 2억2500만원을 사용한다는데 의견 접근을 이뤘다. 그러나 24일 오전 10시 최종 교섭 자리에 박은열 방송차량서비스 사장은 참석하지 않았고, 그를 대신해 나타난 모회사 KBS비즈니스 관계자는 ‘임금 인상 재원 2억2500만원을 일시 격려금으로 지급한다’는 안을 제시했다. 이로써 9부 능선을 넘는 듯 했던 교섭은 다시 파행을 맞았다.
전국언론노조는 교섭 파행과 차량 노동자 처우 개선의 책임이 원청 실질 사용자인 KBS에 있다고 규정하고, KBS를 상대로 직접 교섭 및 전면 투쟁을 선포했다. 언론노조는 25일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당한 처우 개선 요구에 직장 폐쇄 협박으로 맞서고 타결 직전 ‘말 바꾸기’로 교섭 결렬을 초래한 KBS 방송차량서비스의 책임을 KBS 길환영 사장에게 물을 것”이라며 “언론노조 방송사비정규지부 KBS분회에 위임된 교섭권을 회수하고 원천 실질 사용자인 KBS를 상대로 직접 교섭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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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노조와 방송사비정규지부 KBS분회가 25일 오전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KBS와 직접 교섭 및 전면 투쟁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언론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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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차량서비스에는 320여명의 차량 노동자가 속해 있다. 이 중 언론노조 소속 조합원은 190여 명이다. KBS와 KBS비즈니스, 방송차량서비스는 원청과 하청 관계로 연결돼 있다. KBS는 취재 및 업무 차량 제공 업무를 KBS비즈니스(사장 박갑진)에 맡겨놓았고, 이는 다시 방송차량서비스에 재위탁되어 운영되고 있다. KBS-KBS비즈니스-방송차량서비스로 하청을 주는 구조인 셈이다. 소유구조 역시 KBS를 모회사로 자회사와 손자회사로 되어 있다. 언론노조가 이번 파업 사태 해결의 책임을 KBS에 묻는 이유다.
그러나 KBS는 “이번 파업은 KBS방송차량서비스의 노사 문제일 뿐”이라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날 오전 본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도 KBS측의 제지로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며 20여분간 지연됐다. 언론노조와 KBS분회 조합원들을 막아선 KBS 안전관리실 관계자는 기자회견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이게 집회지 기자회견이야?”라며 반말을 쏟아냈다. 결국 언로노조 관계자들과 KBS분회 조합원들은 멀찌감치 떨어진 채 기자회견을 진행해야 했다.
강성남 언론노조 위원장은 “바로 이것이 공영방송의 속살”이라며 “국가기간방송이라고 ‘가오’를 잡으며 수신료를 올려달라고 하는 KBS의 진짜 모습”이라고 처참한 심경을 토로했다. 강 위원장은 “KBS분회 조합원들은 추가근무를 합쳐 월 20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살고 있다”며 “단 돈 몇 억 원에 인간의 존엄성과 자존심을 짓밟고 사기를 치려는 KBS를 상대로 비정규직의 자존심 회복을 위해 끝장 투쟁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봉희 언론노조 방송사 비정규지부장과 이향복 KBS분회장은 비정규직의 비참한 상황에 대해 발언하다 눈물을 쏟아냈다. 이를 묵묵히 듣고 있던 조합원들도 덩달아 눈물을 훔쳤다.
주봉희 지부장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파업 할 때도 KBS 안전관리실에서 요구한 수칙을 지키며 했고, 식당 갈 때는 투쟁 조끼도 벗고 들어갔다. 정말 양반 같이 투쟁했는데, KBS는 우리를 사람으로, 인격적으로 대접하지 않았다”고 울먹였다.
이향복 분회장은 “‘그래도 니들은 정규직이잖아’라고 한다. 파견회사 직원도 정규직인가. 파견 노동자보다 오히려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투쟁에서 이긴다고 해도 파업 기간만큼 급여를 받을 수 없다”며 “하지만 돈이 문제가 아니라 KBS와 KBS비즈니스, 방송차량서비스의 이 행태를 꼭 이겨보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언론노조는 이날 기자회견 직후 KBS에 직접 교섭을 요청하는 공문을 전달하려 했으나, KBS측은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니 공문을 접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언론노조와 KBS분회 조합원들이 KBS 본관 진입을 시도하면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언론노조는 25일 저녁 7시 KBS 본관 앞에서 KBS 비정규분회 파업 투쟁 승리를 위한 긴급 촛불문화제를 개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