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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개성공단 가동을 잠정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가운데 9일 오전 경기도 파주 문산읍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공단 관계자가 입경한 뒤 취재진에게 질문을 받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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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박스’ ‘인질구출’ 보도 구실로 위기 고조
정부 유출 정보 ‘여과없는 쓰기 경쟁’도 문제개성공단 북한 노동자와 한국기업 철수 요구 등 점점 단계가 높아지는 북한의 위협 속에 한반도 정세가 일촉즉발의 위험에 놓였다. ‘위기 탈출’을 위한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럴 때일수록 언론보도가 좀 더 신중해져야 한다는 자성 또한 일고 있다. 특히 북한이 김정은 시대 이후 한국언론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패턴의 변화를 유념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최근 언론보도로 위기국면이 극단적으로 요동치는 사례는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 군이 김일성 동상 타격 계획을 세웠다”는 지난달 25일자 조선일보 보도는 파장을 불렀다. 조선은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이 고강도 국지 도발을 감행할 경우 우리 군은 일부 김일성·김정일 동상을 공대지·지대지 미사일로 타격하는 방안을 마련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김관진 국방부장관은 국회에서 “그런 계획이 없고 군이 그런 언급을 한 바도 없다. 언론이 앞서 보도하는 것에 자중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부인했다.
북한의 개성공단 폐쇄 위협은 ‘달러박스를 걷어차는 자충수’라는 보도 역시 논란을 불렀다. 북한이 남북관계가 냉각될 때마다 폐쇄 위협을 해왔지만 매년 벌어들이고 있는 현금 약 9000만 달러와 개성인근 지역 주민의 생계 때문에 개성공단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게 주 내용이었다.
개성공단 체류 인력에 대한 안전 문제가 거론되면서 보도된 ‘개성공단 인질 구출 대책’도 쟁점이 됐다. 이는 김관진 장관이 새누리당에서 열린 북핵안보전략특별위원회 회의에서 “국민 신변안전을 최우선 고려해 군사조치와 더불어 만반의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발언한 것이 알려지면서 보도됐다. 이에 일부 언론들은 ‘아파치헬기’ 투입 등을 통한 한미연합작전 및 특전사 단독 작전 등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거론했다.
또 “주한미군 8군사령부가 북핵시설 장악팀을 운영하고 있다”는 지난 3일자 동아일보 보도도 주목을 끌었다.
이에 따라 전례없는 한반도 위기 상황에서 언론이 ‘필터링’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부 각처에서 흘러나오는 정보를 여과없이 경쟁적으로 전달하는 데 매몰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자들은 지난 3일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나온 ‘킬체인 조기 도입’ 방안 보도도 예로 든다. ‘킬체인’은 북한 미사일에 대한 한미 연합 대응체계로서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앞서 선제 타격을 가한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열린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는 이를 2015년 도입하기로 합의했는데 우리 군은 북핵위기를 맞아 이를 조기에 시행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기술적으로도 조기 도입이 가능한지 따져봐야 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일방적인 희망이 현실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하거나 보도한 언론은 전혀 없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개성공단 인질 구출 대책 역시 전시 상황 중에나 가능한 일인데 이를 발언 그대로 보도하는 게 적절하냐는 반론도 나온다. 주한미군의 핵시설장악팀 운영처럼 사실관계 확인 없이 정부 관계자의 말을 그대로 옮기는 것은 위험하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은 지난달 오바마 대통령이 ‘시퀘스터’에 서명하는 등 예산삭감에 열중하고 있어 이 같은 팀을 운영할 비용을 투자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전문가의 말도 나온다.
한반도에 투입된 B-52를 비롯해 미군의 무기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것도 결국은 중동 분쟁을 종식시키고 ‘아시아 회귀’를 추진하는 미국의 무기 판매와 방위비 협상 전략에 우리 쪽이 불리하게 작용할 소지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결국 북한은 ‘돈줄’ ‘인질구출’ 등 이러한 한국언론의 보도를 구실로 개성공단을 가동중단에 몰아넣는 등 위기를 최고조에 이르게 하고 있다.
이 같은 배경에는 김정은 등장 이후 한국 및 서방언론의 보도를 극단적으로 민감하게 의식하고 반응하기 시작한 북한의 변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난해 4월 북한은 미사일 발사 일주일 전에 외신기자 50여 명을 동창리 미사일기지에 초청하기도 했다. 같은달 동아일보, KBS, MBC, YTN 등 한국 언론사를 직접 거론하며 위협한 것도 전례없는 일로 평가된다. 서방언론의 보도에 따라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부인인 리설주의 행보를 관리하는 것도 달라진 모습의 방증이라는 분석이다. 언론보도로 증폭되고 있는 개성공단 문제도 한국언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북한 태도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군사안보전문지 디펜스21플러스의 김종대 편집장은 “우리 정부와 언론은 북한의 이러한 변화를 심리전, 교란작전으로 치부하며 간과하는 한편 일부 언론은 이를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호재로 활용하고 있다”며 “우리 보도가 북한 군부의 강경파를 필요 이상으로 자극해 예기치 않은 행동을 감행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김 편집장은 언론보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역설적으로 언론 보도로 북한과의 위기국면을 변화시킬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통일부장관의 ‘4차 핵실험 징후’ 논란에서 나타나듯 정부의 대북 정보 및 메시지 관리도 문제가 많다는 비판이다. 평소에는 군사안보 정보를 필요 이상 통제하면서도 이 같은 위기상황에 언론에 기밀사항을 흘려 보도하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흥분하면 언론도 흥분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한 군사전문가는 ‘군 개성공단 인질구출 계획’을 예로 들며 “예전부터 그런 계획을 마련해놓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회자됐지만 그것을 이 시점에 특정언론에 흘린 것은 무슨 의도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선 우리 언론이 남북관계에 언론보도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신중한 접근을 해야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 방송사의 외교통일 전문기자는 “언론보도는 자유의지 없이 당국 입장을 반영한다는 게 북한의 언론관”이라며 “북한이 한국언론의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는 탓이라는 반론을 펴기에는 한반도 상황이 너무 위중하다. 우리 언론이 해법을 찾기보다는 위기를 증폭시키는 것은 아니냐는 자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