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유신 미화’ 논란을 빚고 있는 현대사 다큐멘터리 신설을 강행키로 했다. 내부 반발이 거셌던 KBS 1라디오 ‘열린토론’ 폐지와 ‘뉴스라인’ 시간대 이동도 확정됐다.
KBS는 4일 봄 개편 설명회를 열고 한국전쟁 전후 현대사를 다룰 ‘다큐극장’과 4대 다큐스페셜(KBS·역사·환경·과학)을 통합한 ‘KBS 파노라마’ 신설 등을 골자로 한 개편안을 발표했다. ‘정권 코드 인사’ 논란을 빚었던 고성국 정치평론가와 김무성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처남’으로 알려진 최양오씨의 라디오 MC 내정은 철회됐다. 그러나 현대사 다큐 외주화를 둘러싼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어 ‘개편 여진’이 상당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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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BS가 4일 여의도 신관 5층 국제회의장에서 봄 개편 설명회를 열었다. (사진=KBS) | ||
그러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평도 나왔다. TV에서만 프로그램 15개가 폐지되고 16개가 신설됐지만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2TV 경쟁력 강화’를 내세웠으나 시청률 부진으로 폐지된 ‘달빛프린스’를 대신해 ‘우리 동네 예체능’을 신설하는 게 고작이었다. 기자들 사이에선 “올드하다”는 말이 나왔다.
이날 개편 설명회 자리를 가득 메운 콘텐츠본부와 편성센터 간부들은 ‘공영성 강화’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정작 관심이 쏠린 ‘다큐극장’ 관련 의혹에 대해선 명쾌한 설명이 없었다.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문제제기에 김성수 외주제작국장은 “이 프로그램은 지난 선거에서 나타난 세대 간의 갈등과 소통 부재를 어떻게 풀어볼 것인가에서 시작했다”며 “정치적 의도성이나 특정 정파 비호를 의심하는데, 소통 문제와 세대 갈등을 푸는 것은 KBS의 공적 책무 중 하나”라고 밝혔다. ‘밀실·관제개편’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외주 공모 절차부터 제작사 선정까지 투명하게 이뤄졌다”며 “우려하고 걱정할만한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민감한 현대사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외주제작에 맡기는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에는 “외주제작국장으로서 듣기 거북한 질문”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러나 KBS PD협회와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는 여전히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특히 ‘다큐극장’ 관련한 콘텐츠본부장과 일선 PD들 간의 합의가 백지화 된데 대한 반발이 거세다.
KBS PD협회 산하 교양다큐PD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3일 콘텐츠본부장과 다큐멘터리국장과 ‘다큐극장’을 자체제작으로 전환하는데 사실상 합의했다. 이들은 지난 한 달간의 논의 끝에 △‘다큐극장’의 제작주체를 외주제작국에서 다큐멘터리국으로 이관하고 △이관 전 방송분은 다큐국 내에서 선임된 팀장과 협의해 방송하며 △6월 초·중순부터 다큐국에서 제작한 방송을 내보내는데 잠정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만 하루도 안 돼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 PD협회는 4일 개편 설명회를 3시간 앞둔 오전 10시30분, 콘텐츠본부장으로부터 전날 합의는 없던 것으로 하자는 통보를 받았다. PD협회에 따르면 장성환 본부장은 “(다큐국에서 제작을 맡는 것을) 사장이 불안해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PD들은 충격에 빠졌다. 이날 12시 열린 PD협회 긴급 총회에선 “뒤통수를 맞았다”, “우롱당했다”는 탄식과 성토가 쏟아졌다. 다큐국의 한 중견 PD는 “사장이 본색을 드러낸 것”이라며 “PD들을 믿지 못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PD협회는 총회 직후 개편 설명회장으로 이동해 반대 목소리를 냈다. 윤성도 새노조 정책실장은 “정치적 의도가 없다”는 김성수 외주제작국장의 발언에 항의하다가 제지당하기도 했다.
PD협회 한 관계자는 “기획 단계부터 음험하게, 비밀스럽게 진행되는 것을 보며 시청자가 아닌 청와대용 기획이 아닌지 의심이 됐다”면서 “본부장과의 합의를 파기하면서까지 최소한의 검증장치조차 두지 않고 외주국 틀 안에서 모든 것을 결정해서 하겠다고 강경하게 나오는 것을 보니 더더욱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새노조도 이날 성명을 내고 “내부에서 제작을 하는 것이 왜 그렇게 불안하고 우려가 되는 일인가”라며 “이는 이 프로그램이 애초부터 손쉽게 통제할 수 있는 외주를 동원해 독재정권을 미화하려는 의도였다는 것을 자백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전진국 편성센터장은 “다큐국이 신설되는 ‘KBS 파노라마’에 역량을 결집해야 하는 관계로 여건이 안 돼서 부득이 하게 내부제작이 아닌 외주제작을 결정하게 됐다”며 “일단 외주로 가고 여건이 되는대로 인하우스(내부)와 공동 제작을 할 수 있도록 다큐국과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