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 5년은 공영방송의 흑역사였다. ‘고봉순’(KBS), ‘마봉춘’(MBC)이라는 애칭도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또 많은 것이 바뀌었다. ‘공정방송’을 선두에서 외쳤던 이들이 하나둘씩 해고와 징계의 대상이 되어 카메라 앞에서 사라졌다. 대신 지난 한해 여의도와 광화문 일대를 ‘낙하산 퇴진’ 함성으로 뒤덮게 했던 공영방송사 수장들은 자리를 보전했고, 방송통신을 호령하던 ‘대군’은 퇴임 대통령의 선물로 무사 귀환했다. 그러자 마이크를 빼앗기고 카메라 앞에서 밀려났던 이들이 제 발로 일터를 떠나기 시작했다. 인재(人材 )를 잃어가는 인재(人災), 언론장악 5년 만에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진 공영방송의 슬픈 현주소다.
지난달, MBC와 KBS에서 차례로 ‘비보’가 들려왔다. MBC 최일구 앵커가 첫 타자였다. 무수한 어록까지 만들어내며 MBC의 ‘간판 앵커’로 불렸던 최일구 앵커가 지난달 8일 MBC에 사표를 제출했다. 30여년간 몸담았던 조직을 떠나며 최 앵커는 후배 기자들에게 “김재철 사장 체제에서 받은 모멸감이 너무나 컸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 앵커는 지난해 ‘김재철 사장 퇴진’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정직 3개월을 받았다. 파업이 끝난 뒤에도 방송에 복귀하지 못하고 일명 ‘신천교육대’로 교육 발령을 받았던 최 앵커는 지난 1월 또다시 교육 3개월 연장을 통보받았다. 그런 가운데 외부 강연을 회사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사위원회에 회부됐고, 정직 3개월의 중징계까지 받았다.
최 앵커의 뒤를 이어 오상진 아나운서의 퇴사 소식이 전해졌다. 오상진 아나운서는 지난달 22일 MBC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2006년 MBC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한 이래 예능과 교양 프로그램을 오가며 간판 ‘아나테이너’로 활약했던 그의 퇴사 결정은 동료들과 대중은 물론 정치권에도 적잖은 충격파를 던졌다. 민주통합당 허영일 부대변인은 지난달 23일 논평을 내고 “정작 떠나야 할 사람은 요지부동이고, 떠나지 않아야 할 사람이 떠나는 MBC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당혹스럽고 안타까워하고 있다”며 “MBC를 떠나야 할 사람은 오상진 아나운서가 아니라 김재철 사장”이라고 밝혔다.
오상진 아나운서는 지난해 MBC노조 파업에 참여한 이후 1년 이상 방송 진행을 하지 못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다. 파업에 참여했던 아나운서들 대부분이 1년 이상 TV에서 자취를 감췄다. 박경추, 최현정, 김정근, 최율미 등 13명의 아나운서들이 교육명령을 이수중이거나 비제작부서에서 방송사 견학 안내 업무 등을 맡고 있다. 아나운서국 소속인 손정은, 문지애 아나운서 등은 간간이 라디오 뉴스만 진행할 뿐이다. TV 뉴스에서도 파업 참여 아나운서들은 대부분 배제됐다. 현재 MBC 뉴스를 진행하는 9명의 여성 앵커 중 4명이 지난해 파업 기간 채용된 프리랜서다.
보도국 상황도 비슷하다. ‘얼짱 앵커’ 왕종명 기자, 탁월한 방송 능력을 인정받았던 김수진 기자 등 스타급 기자들이 취재 현장을 떠나 ‘브런치 교육’을 받거나 영업 업무를 맡고 있다. 문제는 상황이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육 발령은 최장 6개월까지 연장되고, 징계 행렬은 파업이 끝난 뒤에도 멈추지 않고 있다. 반면 ‘논문 표절’ 혐의가 확정된 김재우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나 퇴진 여론이 끊이지 않는 김재철 사장은 미동조차 않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MBC의 ‘줄퇴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MBC의 한 PD는 “방송쟁이가 방송을 할 수 없다는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고 탄식했다. 한 기자는 “자부심으로 가득 찼던 우리들의 일터가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사막터가 되어버린 것 같다”고 비통해 했다.
파업 후유증이 상대적으로 적은 듯했던 KBS에서도 작별을 고한 이가 있다. 탐사보도팀장을 역임했던 김용진 기자가 사표를 제출한 것이다. 사규상 KBS 기자와 뉴스타파 대표를 겸임할 수 없게 되자 20년 넘게 몸담았던 KBS 대신 뉴스타파를 선택한 것이다. ‘미디어 포커스’ 데스크와 탐사보도팀장으로 일하며 KBS 탐사보도의 부흥을 이끌었던 김 기자는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부산과 울산KBS로 좌천 인사를 당했다. KBS의 한 기자는 “방송장악으로 망가진 KBS가 그를 발붙일 곳이 없게 했다”며 “그의 퇴사는 KBS로서도 큰 손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