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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인가, 당원인가' 위험한 줄타기…저널리즘 정신 잊지 말아야

[미디어 현장] 흔들리는 정치부 기자들

양성희 기자  2013.01.30 13: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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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우정 사이’보다 더 애매하고, ‘악어와 악어새’만큼이나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원칙을 지켜야 하는 정치부 기자와 정치인의 관계다. 정치란 게 기본적으로 ‘사람 장사’이고, 정치기사는 대개 흐름을 짚고 판을 분석하며 ‘내일’을 읽어내는 것이어서 취재를 위해선 취재원과의 깊은 관계가 따라야 한다. 하지만 취재원과의 친분이 기사에 영향을 준다면 ‘유착’이 된다. 정치부 기자들은 오늘도 ‘위험한 줄타기’를 벌인다.


거침없는 커밍아웃 “나는 친박 기자”
줄타기를 하는 쪽은 그래도 고뇌를 하는 편이다. ‘불가근’은 빼고 ‘불가원’만 지키는 기자들 도 적지 않다. 오랜 기간 유력한 ‘미래권력’이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마크한 기자들 중에도 이런 이들을 찾아볼 수 있다.

“나는 친박 기자”라고 당당히 커밍아웃을 해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눈총을 받은 기자도 있다. 대선 기간 중엔 박 당선인이 강조하는 ‘원칙과 신뢰’에서 이름을 따온 ‘원신회’라는 노골적인 모임도 입길에 올랐다. 박 당선인과 그 측근들이 각별히 챙기는 기자들의 모임이다. 이 모임에 속한 한 기자는 캠프 관계자에게 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야권 후보의 의혹을 단독 보도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마크 맨’도 다 같은 ‘마크 맨’이 아니다. 이들 사이에도 ‘계급’이 있다. “잘 해서 오래 출입하는 게 아니라, 오래 출입해서 잘하는 것”이란 말이 있듯이 과거 어려운 시절을 함께한 기자들은 취재가 더 수월하다. 박 당선인이 2004년 천막당사에서 한나라당 대표를 지내던 시절과 2007년 이명박 후보와 경쟁한 대선후보 경선 당시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그 정치인의 성향을 닮아가기도 한다. 새누리당을 출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 기자는 “박 당선인을 오래 마크한 기자들은 대체로 폐쇄적인 경향이 있다”면서 “식사 자리에 끼워주거나 정보를 공유하는 분위기가 덜하다”고 했다. 이 기자는 이어 “본인들도 어렵게 접근경로를 뚫고, 관계 또한 어렵게 맺었을 테니 이해가 되긴 한다”고 덧붙였다.

한 기자는 “상위 계급(?)에 속하는 기자들이 형성한 ‘이너서클’엔 박 당선인 쪽과 ‘아픔을 공유했다’는 심정적인 유대감도 있다”고 귀띔했다. 200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박 당시 후보가 밀려난 순간엔 상실감을 같이 했고, 이번 대선에서 당선됐을 땐 ‘절치부심’ 끝에 꿈을 이룬 성취감을 같이 맛보며 ‘함께 울고 함께 웃었다’는 것이다.

이 기자는 “친이와 친박이 극명히 맞서 있을 때는 출입기자들도 둘로 나뉘어 각각 성취감과 패배감을 함께 맛봤다”면서 “당시 경험을 공유했던 기자들은 그렇지 않은 기자들과 정서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신기자’부터 ‘독수리 5형제’ ‘원신회’까지
과거에도 다르지 않았다. 이른바 ‘총재’ 시절 기자들이다. 총재 자택으로 출근해 아침식사를 함께하며 하루를 열었던 기자들 일부는 지금보다 더 심했다는 지적도 있다. 총재 방에 가면 사과박스가 쌓여 있고 그 틈새로 돈 냄새가 풀풀 풍겼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박정희 대통령 시절 대통령에게 ‘각하’라는 극존칭을 써가며 보도한 ‘유신기자’들이 있다. 이후 각 정권마다 ‘장학생’으로 불리는 기자 그룹이 공공연히 생겨났다. ‘전두환 장학생’, ‘YS 장학생(상도동 장학생)’, ‘DJ 벙커 그룹’ 등이 이에 해당한다. YS 장학생들은 언론계 동향 보고서를 작성해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보고하기도 한 권언유착의 대표 사례로 잘 알려져 있다. DJ 벙커 그룹은 ‘벙커’라고 불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지하 서재에 출입이 가능했던 기자들을 뜻한다. 이곳은 김 전 대통령이 정국 구상을 하던 장소다.

측근 기자들의 역사는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 공신으로 알려진 5명의 기자 그룹 ‘독수리 5형제’를 거쳐 ‘원신회’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어제는 출입기자, 오늘은 국회의원
이들의 종착점은 어디일까. 기자 출신 현역 의원 중 정치부 출신이 다수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총선과 대선이 몰려 ‘정치의 해’로 불렸던 지난해에도 정치권으로 자리를 옮긴 기자들이 꽤 있다. 국회를 17년간 출입했던 서울신문 출신 박대출 새누리당 의원, 중앙일보 정치부장·논설위원 출신 이상일 새누리당 대변인 등이 대표적이다.

갑자기 생긴 일은 아니다. 한겨레 출신 김성호 전 의원도 ‘엊그제까지 출입하다가 출마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당시 한겨레 내에서도 비판이 들끓었다. 한겨레 한 기자는 “권력을 비판하고 견제하던 이가 하루아침에 그쪽에 서겠다고 하니 황당했다”고 회상했다. 2004년 제17대 총선 출마를 위해 문화일보 정치부장에서 곧장 열린우리당 행을 택한 민병두 의원도 당시 논란이 됐다.

특히 정당 출입기자, 국회 반장, 정치부장, 논설위원 등 핵심 감시자였던 이들이 ‘선수’로 뛰어드는 경우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지난 총선 방송을 진행했던 이가 다음 총선 때는 공천을 받아 출마하고, 어제는 칼럼을 통해 정치권을 향해 일침을 가했던 이가 내일은 당원이 되는 모습은 드물지 않다. 공백 없이 현역에서 바로 이동하는 경우라면 더한 비난이 따른다.

한 종합일간지 출신 정치인은 국회반장 시절 만나는 의원들에게 노골적으로 공천을 요구해 소속 회사 기자들이 난감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기자생활 대부분을 정치부에서 했던 한 종합일간지 편집국장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치권에 일단 발을 들여놓으려고 하는 건 기자의 명예를 깎아먹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기자의 정계 진출 자체를 문제 삼는 사람은 적다. 하지만 어느정도 원칙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다른 종합일간지 편집국장은 “어제까진 취재하고 오늘부턴 정치하겠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면서 “권력을 감시하는 자리에서 권력으로 자리를 옮기려면 어느 정도 세탁 기간이 있어야 국민도 납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종합일간지 정치부장은 “출입기자의 소속은 회사다. 본인의 소속을 출입처로 착각해선 안 된다”면서 “유착은 본인의 소속을 잃고 두 발을 전부 출입처로 가는 걸 말한다. 정당 출입기자는 발 하나는 회사에, 다른 발 하나는 출입처에 둬야 한다”고 했다.

기자와 사람 사이 딜레마
“한 다리 건너 ‘형, 동생’ 하는 게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유착을 피하기 위해 취재원과의 관계를 일부러 소홀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보의 깊이, 취재 편의를 위해선 취재원과 친밀한 관계, 신뢰관계가 뒷받침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언론사들도 취재 편의를 위해 기자들의 출신과 성향을 고려해 출입 정당을 정하기도 한다. TK(대구·경북) 출신 기자는 새누리당을, 호남 출신 기자는 민주통합당을 출입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다들 대구 사투리 쓰고 있는데 혼자서 전라도말을 쓰면서 접근하기엔 한계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정당팀 기자들은 특정 정당을 오래 출입하다보면 그 정당의 논리에 뜻을 같이하게 되기 쉽다고 전한다. 지난 18대 대선 전에 국회 말진 기자들끼리 벌인 메신저 투표 결과도 한 예다. 새누리당 출입기자들은 대부분 박근혜 당시 후보의 당선을, 민주당 출입기자들은 문재인 당시 후보의 당선을 점쳤다고 한다.

한 정치부 기자는 “당의 입장을 계속해서 듣다보면 남들이 모르는 정보를 알게 되고 자연스레 그들을 이해하게 된다”면서 “조금씩 물들고 영향을 받는 건 사실이지만 기사 작성은 별개라고 본다”고 말했다.

기자도 사람인지라 개인 성향, 논리를 가질 수 있다. 기자는 결국 기사로 말하는 사람이니 이런 것들과 무관하게 비판정신이 살아있는 기사를 생산한다면 문제없다는 게 중론이다. 한 종합일간지 정치부장은 “판단 근거는 기사다. 기자의 양심은 기사로 드러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