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환영 KBS 사장의 취임 후 첫 인사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길환영 사장은 26일 KBS 이사회에 고대영 부사장에 대한 임명 동의안을 제출했으나 표결 끝에 부결됐다. 사상 초유의 부사장 임명 동의안 부결 사태에 길 사장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후임 후보자 물색을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BS 이사회는 이날 길환영 사장이 각각 방송, 경영 담당 부사장으로 임명 제청한 고대영 전 KBS 보도본부장과 육경섭 전 KBS 인력관리실장에 대한 임명 동의안을 부결했다. 특히 과거 편파 보도, 폭행, 골프 접대 등의 전력으로 내부 반발을 샀던 ‘고대영 부사장’ 카드에 대해 야권 이사들뿐 아니라 여권 이사들도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총 11표 가운데 반대가 7표, 찬성은 3표에 불과했다.
임명 동의안 부결 사태는 전례가 없는 일이어서 충격파는 컸다. 배재성 KBS 홍보실장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며 “통상적으로 부사장 임명은 사장의 인사권으로 인정하고 이사회는 이를 추인하는 모양새를 갖춰왔기 때문에 경영진 입장에서도 당혹스러운 일”이라고 전했다.
외압설까지 나돌았던 고대영 부사장 내정에 대해 이사회가 제동을 걸고 나선 배경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 남철우 홍보국장은 “KBS 사장 후보로 지원해 현 사장과 경쟁했던 인사가 부사장으로 오는데 대한 문제인식이 있었던 것 같다”며 “보도책임자 시절 편파보도를 이끌어 불신임을 받고 자진 사임했던 인물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의 정치적 바람을 안고 부사장을 하려는데 대해 여당 이사들도 반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배 실장은 “이사회가 소위 ‘거수기’ 역할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뜻”이라며 “이번 이사회가 여야를 떠나 이사들 각자 소신과 판단에 따라 의결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분석했다. 이어 “사장 입장에선 당혹스러운 게 사실이지만 이사회가 요식 행위에 그치지 않고 본래 역할과 기능에 충실한 셈”이라며 “사장과 이사회가 적당히 긴장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기 역할을 하겠다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부사장 임명에 제동이 걸리면서 후속 인사 일정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KBS는 당초 26일 부사장 임명 동의안이 문제없이 통과된다는 전제 하에 27일 본부장, 28일 주요 실·국장에 대한 인사를 단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부사장 임명이 해를 넘길 가능성이 커지면서 결국 길 사장의 취임 후 첫 인사는 새해가 돼서야 전체 진용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배 실장은 “31일에 정기 이사회가 있고 그 전에 28일에라도 임시 이사회를 열어 다시 부사장 임명 동의안을 처리할 수도 있다”며 “새로운 부사장 후보자를 찾아 이사회와 조율을 거쳐 조속한 시일 내에 인사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KBS 기자협회, PD협회 등 사내 9개 직능단체들은 27일 공동 성명을 내고 고대영 부사장 임명동의 부결에 대해 “천만다행”이라고 논평하며 “뒤늦게나마 사내 구성원들의 여론을 수렴한 이사회의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한 “길환영 사장은 본인이 제청한 인사가 부결됐다는 점에 대해 깊이 반성해야 한다”면서 “새 부사장 후보자를 제청할 때 공영방송에 대한 철학이 확고한지, 자질과 도덕성은 갖췄는지, 그리고 구성원들로부터 신임을 받고 있는지 등을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임 부사장 후보로 거론되는 이화섭 보도본부장에 대해서도 불가 입장을 밝히며 “똑같이 부적격자인데도 이화섭 본부장이 부사장으로 선임된다면 고대영 씨에 대한 부결의 정당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면서 “구성원들의 의사를 물어 부사장 후보를 제청하든지 임명할 사람이 정 없다면 비워두고 가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