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3일 서울 조계사 불교역사문화관에서 열린 ‘해직언론인 복직 촉구 토크콘서트’에서 표완수 전 경향신문 해직기자(시사IN 발행인·가운데)가 5공 시절 언론탄압 실태를 증언하고 있다. 왼쪽은 최승호 MBC PD, 오른쪽은 성유보 전 동아투위 위원장. (언론노조 제공) | ||
가을의 쓸쓸한 퇴장을 알리는 눈발이 흩날리던 12월의 초겨울밤. 서울 조계사에 사람들이 촛불처럼 하나둘 큰 빛으로 모여 이글거렸다. 3일 리영희재단 출범 후 첫 행사인 ‘해직언론인 복직 촉구 토크콘서트’가 열린 곳이다.
해직된 이들은, 그리고 그들 곁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차분하고 담담했다. 하지만 감출 수 없는 가슴 속 상념이 이따금 선홍빛을 띠고 배어났다. “복직되면 무슨 프로그램을 하고 싶냐”는 사회자의 물음에 해직 4년째를 맞은 이근행 전 MBC노조위원장에게 잠시 동해 같은 미소가 흘렀다.
“미래를 예측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언젠가는 도도히 바다로 흘러갈 것입니다.”
이날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의 해단식 발언을 두런두런 화제삼던 사람들은 조명이 떨어지고 해직언론인 한명한명의 얼굴이 스크린에 맺히자 숙연한 호수에 잠겼다. 그 누구도 관객일 수 없는 한국 언론의 현실이 묵직하게 말을 걸어왔다.
원조 해직언론인 격인 고 리영희 선생이 ‘저그니’(연하 친구를 일컫는 이북 사투리)라고 부르며 아꼈던 고은 시인은 함축된 언어로 정적을 깼다.
“리영희라는 이름을 가슴에 품고 우리는 살아왔습니다.…오늘 난 리영희의 생애를 하나의 푸른역사, ‘리영희는 청사(靑史)다’ 라고 외치고 싶습니다. 세계사의 시각이 꽉 막힌 어둠의 세월…사회를 객체로 고착시키는 우상을 타파하는 이성 본연의 힘을 뿜어낸 일, 말과 지성의 결박을 이겨내는 뜨거운 저항…리영희, 그이는 우리를 분명히 깨닫게 하고 우리를 힘차게 했습니다.”
리영희의 후예들, 이명박 정권 아래 해직된 22명의 해직언론인은 때로는 무대에서, 때로는 객석에서 머지않았던 과거 취재를 할 때처럼, 앵커석에 앉았을 때처럼 진지했다. 분노하면 웃었다. 고인의 부인 윤영자 여사는 못해준 것만 생각나 더 그리운 ‘그이’같고, 남편 대신 지켰던 아들딸 같은 이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무쪼록 젊은이들이 열심히 정직하게 꿋꿋하게 살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가다보면 옆으로 갈 수도 있고 올바르게 갈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앞만 보고 꾸준히 가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거예요.”
리영희 ‘부장’이 사랑했던 해직 38년째의 후배(신홍범 전 조선투위 위원장), 단 한 장의 가족사진을 남길 수밖에 없었던 젊은 날을 회고하는 백발의 전사(성유보 전 동아투위 위원장) 등 다시는 없을 것 같았던 해직언론인을 후배로 맞이한 선배들은 냉정하게 반복되는 역사가 야속했다. 선배들의 지난날과 후배들의 오늘이 만난 공간에서 한숨 섞인 비탄이 새어나왔다. 그러나 이들은 거기서 주저앉지 않았다. 그 다짐을 대신 말해주듯 한겨레 평화의나무 합창단의 웅장한 울림이 적막한 사찰을 깨웠다. 겨울이 온 세상을 데웠다.
‘삶의 슬픔을 날개로 바꾸어/ 사람의 기쁨을 노래로 실어/ 살아서 꿋꿋이 살아서/ 살아서 끝까지 살아남아서/ 나는 부른다 희망의 노래/ 다같이 부르자 인간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