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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故이수윤 기자 사우회장이 지난 9일 부산의료원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한겨레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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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사 부산지역 담당 이수윤(편집국 부국장대우) 기자가 지난 6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55세. 이에 본보는 박찬수 한겨레 편집국장의 추도사를 싣는다.“이수윤 선배” 하고 부르면 저 영정 사진 속에서 지금이라도 뚜벅뚜벅 걸어 나와 환하게 웃을 것만 같습니다. 아직도 우리 기억 속엔 생생히 살아있는데, 이수윤 선배를 이제 고인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현실을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직 마음속에 자리 잡은 그를 보낼 수 없습니다.
이 선배가 떠난 뒤 우리는 여기 모여 고인의 생전 모습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김정수 사회부 기자는 그의 따뜻했던 마음 씀씀이를 기억했습니다. “1991년 지역기자로 한겨레에 입사해 처음 강릉에 내려갔을 때 이수윤 선배가 자주 전화를 걸어와 ‘힘든 거 없니’, ‘이건 이렇게 해라’ 라며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고 격려를 해준 게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참 따뜻한 선배였다”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회사를 떠난 김형배 선배는 “언젠가 부산에 내려와 수윤씨에게 전화를 했더니 아내와 함께 금세 달려와 횟집에서 저녁을 사더라. 나중에 알고 보니 아내와 단둘이 약속이 있었는데 내 전화를 받고는 나한테 온 거였다. 나중에 그 얘기를 듣고 괜히 연락했다 싶어 너무 미안했다. 정이 많은 친구였다”고 회고했습니다.
고인은 1988년 한겨레 창간 때부터 지금까지, 회사의 부름을 받고 잠시 서울에서 독자배가 운동에 나섰을 때를 제외하곤 줄곧 부산에서 일했습니다. 수많은 특종과 좋은 기사를 썼을 뿐 아니라, 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와 한겨레의 가교 역할을 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기 좋아하고 술자리를 마다하지 않는 친화력으로, 지역 시민단체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습니다. 고인은 글만 쓰는 기자가 아니라 스스로의 신념을 몸소 실천하는 기자 이상의 기자였습니다.
돌이켜 보면 부산일보에 다니던 고인이 1988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창간하는 한겨레신문에 흔쾌히 동참한 이유도 우리 사회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누구나 태어나서 때가 되면 이 세상을 떠나는 게 삶의 이치라고 하지만 어찌 우리 곁을 이리도 빨리 떠나시는지 야속하기만 합니다. “술 한잔 하자”는 사람 좋은 목소리가 금세 다시 들릴 듯합니다. 고인은 떠났어도 그가 추구했던 민주주의에 대한 이상과 기자로서의 열정은 고스란히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살아 숨쉴 것입니다. 못다 쓴 기사는 여기 있는 한겨레 후배들이 받아쓰면서 이 선배의 뜻을 지켜 나가겠습니다.
이제 이승의 인연은 모두 내려놓으시고 마음 편히 가십시오. 한겨레 식구들의 마음을 모아 간절하게 기원합니다.
2012년 10월9일
한겨레 편집국장 박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