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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일 서울 여의도 MBC 사옥 앞에서 열린 ‘PD수첩’ 해고 작가 복직을 위한 천막농성 집회에서 정재홍, 이소영, 이화정, 장형운, 이김보라, 임효주 작가(왼쪽부터)가 촛불을 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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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작가들은 방송에서 제일 안 드러나는 사람들이죠. 그런 작가들까지 방송에서 내치면서 ‘PD수첩’을 망치려는 데 정말 화가 납니다.”
MBC ‘PD수첩’ 해고 작가 6명이 지난 12일부터 서울 여의도 MBC 사옥 앞에 천막을 쳤다. 제목은 ‘해고작가 복귀와 PD수첩 정상화를 위한 끝장 캠프’.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부는 쌀쌀한 날씨이지만 새 작가 공고까지 난 마당에 더 이상 원직복직을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PD수첩’ 22년의 기간 동안 12년의 세월을 프로그램에 바친 정재홍 작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170일간의 파업의 목적은 공정방송 쟁취였습니다. 170일 동안 작가들이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공정방송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겠다는 것이었죠. 이것 없이는 현장에 돌아가도 제대로 된 방송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정부 비판 아이템 철저히 묵살”정 작가는 “탐사보도 전문가들인 PD들을 다 내쳐버리고, 저부터 막내작가까지 다 나가라고 하는 것은 ‘PD수첩’이 쌓아온 22년간의 성과를 한방에 밑동까지 잘라버린 것”이라고 성토했다. 정 작가는 MB정부 시기를 ‘PD수첩’의 르네상스로 회고했다. 4대강 수심 6미터의 비밀,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기무사 민간인 사찰, 공정사회와 낙하산, 검사와 스폰서와 같은 선 굵은 프로그램이 쏟아졌다.
“당시 김태현 팀장은 가슴 속에 늘 사표를 갖고 다녔어요. ‘내가 외압을 막아주겠다. 소신껏 프로그램을 만들어라. 대신 PD나 작가들은 프로그램 질을 높여라’고 독촉했죠. 한국사회 정국을 주도하는 이런 프로그램은 성역을 인정하지 않는 비판의 대원칙, 황우석 사태를 통한 자기 확신, 팩트 확보의 노하우 축적 등이 결실을 본 덕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최승호, 김환균, 박건식, 오행운 등 PD수첩의 PD들이 쫓겨난 자리에는 김철진 팀장과 배연규 팩트체커 팀장이 부임했다.
“이때부터 전쟁이 시작됐죠. 거꾸로 우리의 방패가 돼야 할 사람이 도리어 저희를 공격하니 어리둥절할 따름이었죠.”
정 작가는 “4대강에서 속도전을 하면서 노동자가 18명째 사망했을 때, 이를 문제 제기하려고 하자 김철진 팀장은 ‘4대강 공사장이 넓은데 노동자 18명 죽은 것이 뭐가 많다고 그러느냐’며 묵살하려 했다”며 “통계를 제시하며 다시 아이템을 제기해도 한사코 거부했다”고 설명했다.
배연규 팩트체커 팀장에 대해서도 정 작가는 “제주도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문제를 취재하려고 기획안을 올리자 ‘하지 말라는데 왜 자꾸 가져와!’ 하면서 기획안을 박박 찢어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한진중공업 사태, 한·미 FTA, 강정마을 해군기지 등 정부에 비판적인 아이템, 권력 비판적 아이템은 철저히 통제됐다. 비판적 아이템을 계속 내놓은 PD들은 인사조치 됐다. 서서히 ‘PD수첩’의 힘이 약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작가와 PD가 주눅이 들었죠. 어떻게 하면 프로그램을 할 수 있을까. 강한 아이템 사이에 원래 하려고 했던 약한 아이템을 넣어서 제안해보자 하는 식으로 머리를 굴려야만 했어요. 참 비참하고 비굴한 시절이었습니다.”
아이들 눈물에 가슴 미어져고1, 중1 두 아이를 둔 중년 가장인 정 작가는 170일간의 파업 기간 동안 수입이 전무했다. MBC 정직원들의 업무복귀 이후에도 ‘PD수첩’은 계속 불방됐고, 그들은 결국 거리로 나오게 됐다. 아이들도 아빠의 해고를 알고 있다. “아빠 돈 못 벌잖아요. 인터넷에서 다 봤어요.” 눈물까지 글썽이는 아이들 앞에서 정 작가는 ‘내가 나쁜 아빠’라며 가슴을 쳤다.
“그래도 돈 못 받는 것은 견딜 수 있어요. 1년 정도 돈 못 벌면 어떻습니까. 다른 일 제의가 들어와도 갈 수가 없는 것은 이 문제만은 꼭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방송작가를 이렇게 내쳐도 된다고 선례가 남겨지면 남은 작가들은 권력의 입맛에 맞게 원고를 쓸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방송작가 직업군에 대한 위신이 걸려있는 첫 해고 싸움입니다.”
해고된 최승호 PD는 이날 예정됐던 정재홍 작가를 만나 격려의 말을 전했다. 최 PD는 “PD수첩의 저널리즘이 자리 잡는 데는 작가들의 노력이 컸다”며 “이번 작가 해고 사태는 일개 작가의 신상 문제가 아니라 대선을 앞두고 비판 보도를 틀어막으려는 공작의 정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 PD는 “반드시 작가 6명과 해고된 저까지 함께 손을 잡고 ‘PD수첩’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정재홍, 이소영, 이화정, 장형운, 이김보라, 임효주 ‘PD수첩’ 작가 6명은 이제 MBC가 바라보이는 천막에서 농성을 시작하며 원직복직을 위한 긴 싸움을 시작했다. 맞은편에는 MBC 노조가 ‘MBC 민영화’에 반발, 천막을 치고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쌀쌀한 가을과 차가운 겨울 사이, MBC 앞 풍경은 이렇게 낯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