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편집권 독립' 위해 거리에 나서다

부산일보 이정호 편집국장, 정수장학회 사회환원 농성…다음달 해고 위기

이대호 기자  2012.09.26 13:13:53

기사프린트


   
 
  ▲ 이정호 부산일보 편집국장이 2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앞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에게 정수장학회 사회환원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가을볕이 따가운 25일, 이정호 부산일보 편집국장은 신문사 국장실이 아니라 서울시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앞 노상에 앉아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벌써 보름째. 상경 전 부산 본사 앞 농성까지 치면 세 달이 다 돼 간다.

언론 사상 초유의 편집국장 농성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시민들의 관심은 이 국장 앞에 놓인 피켓에 꽂혔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얼굴과 함께 ‘정수장학회 해체’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박혔다.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한 시기, 여당 후보를 비판하는 문구만으로도 시민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이 국장이 노리는 것이기도 하다.

“박근혜가 대통령 후보인 지금이 정수장학회 문제를 해결하고 부산일보 편집권 독립을 이룰 절호의 기회다.”

그는 이 생각에 본사 앞 농성을 접고 주저 없이 상경했다. 편집국장의 체면이나 길거리에 나앉는 부끄러움은 따질 겨를조차 없었다. 정수장학회 사무실이 있고, 언론인과 언론단체가 모여 있는 서울이 부산보다 유리하다는 것이 서울행을 택한 단 하나의 이유였다.

보름 동안 이 국장이 자리 잡은 한국프레스센터 앞에는 박근혜 후보와 정수장학회를 둘러싼 작은 전선이 형성됐다. 시민들은 자신의 입장에 따라 찬반 의견을 표했다. 특히 이 일대에서 모임이 잦은 보수단체 회원들은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즉석에서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언론도 농성소식을 기사로 전했다. 동아투위 등 언론계 원로들도 지지방문을 했고, 언론노조는 농성에 결합했다. 상경의 목적을 상당 부분 달성한 셈이다.

이 국장의 농성과 관련해 두드러진 것은 현직 언론인들이 무관심했다는 점이다. 유력 지역일간지 편집국장의 편집권 독립을 내건 상경 농성은 그 자체로 언론인의 관심을 받을만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의 취재 외에 언론사 기자나 편집국 간부들의 농성장 방문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정수장학회에 대한 언론인의 관심이 박근혜 후보의 해법에만 쏠려 부산일보의 편집권 독립 요구가 주목받지 못한 결과다. 이 국장은 “정수장학회가 부산일보의 편집권 독립을 위협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사회환원을 요구하는 것”이라며 “부산일보가 이루려고 하는 완벽한 편집권 독립의 상은 언론인이라면 고민해야 할 공통의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편집국장까지 거리에 나서야 하느냐는 시선에 덧붙였다. “편집국장이 편집권을 지키려고 농성하는 게 이상한가. 아니면 재단과 사측에 굴복해 편집권을 포기하는 게 이상한가.”

농성으로 정수장학회와 맞서고 있는 이 국장이지만 정작 사측으로부터는 ‘대기발령’ 징계를 받은 상태다. 직무도 정지됐고 회사 출입도 금지됐다. 임금도 받지 못하고 있다. 징계 6개월이 되는 다음달 18일까지 사측과 화해하지 못하면 자동 해고된다.

이 국장 외에도 부산일보 편집국에는 사회부장, 정치부장이 인사발령 거부 후 정직 6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이들도 이 국장이 출입금지 가처분이 떨어지기 전까지 그랬던 것처럼 징계를 거부하며 근무를 계속해 편집국에서 사측이 무력화되고 있다.

이 국장은 정수장학회 사회환원으로 이 같은 부산일보 내부문제까지 단숨에 풀 수 있기를 바란다.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의 퇴진과 함께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재단의 일방적인 사장 임명을 막는 게 이 국장이 바라는 최소한의 해법이다. 사측이 임명한 사장이 인사와 징계를 통해 편집권을 흔드는 것을 막는 방법이기도 하다. 물론 이 과정의 열쇠는 박근혜 후보가 쥐고 있다고 본다.

그는 “대선 레이스가 박근혜 후보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지 않는 한 박근혜 후보가 최필립 이사장에게 직접 도움을 요청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며 “이때가 정수장학회 문제가 풀리는 결정적 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