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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보도 "기자사회 합의 필요"

전문가 "피해자 고통 가중 "…공론장 마련 목소리도

원성윤 기자  2012.09.19 14:2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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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보도의 선정성을 극복하기 위해 기자 사회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지역에서 잇따른 성폭행 사건에 언론이 지나치게 과열 경쟁 양상을 띠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성폭행범 사진 오보 사태를 빚은 조선일보의 사례 역시 언론들의 과열경쟁이 빚은 사례 중 하나로 손꼽힌다. 결국 1~2면에 걸쳐 “피해자의 명예회복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사과문과 함께 사회부장 경질 및 편집국장 징계까지 하게 됐다.

경향신문 역시 최근 성폭행 보도에서 피해자 어린이의 일기장 공개와 아동 포르노 실태 등 선정성에 대한 내부 반성이 제기됐다. 경향 기자들은 지난 13일 평의회를 열고 편집국장, 사회에디터, 사회부장, 전국부장, 편집부장 등을 소환해 토론을 벌였다.

결국 기자들과 데스크는 성범죄 보도 관련 TF를 만들어 조만간 보도준칙(가이드라인)을 제정키로 했다. 편집국 한 간부는 “범죄사건 피해자를 고려하는 데 부주의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언론 보도에 가해자의 범죄수법, 피해자의 집, 가정, 가족, 신체부위 등을 상세히 묘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지난 1일 범인의 이동 경로를 보여주는 그래픽 지도와 폭행 장소, 집안 구조, 가해자와 아이의 당시 장면 등을 자세하게 보도했다. 이는 피해자들에게 끼칠 2차 피해를 섬세하게 고려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피해자학)는 “이번 어린이 성폭행 사건보도에서는 피해자의 가정과 어머니에 대한 관련 보도가 여과 없이 노출됐는데 이는 사건의 본질과 관계없는 가십이자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보도”라고 비판했다.

영국과 미국의 경우 피해자의 사생활, 인격권, 명예를 가장 우선시해 보도하는데 비춰보면 국내 언론의 경우 피해자의 심적 상처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것이 표 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최근 보도는 공익목적이나 범죄 예방 목적에 부합하지 않고 모방범죄 우려까지 있다”며 “경쟁 일변도 보도에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근 5년간 아동 성폭력 기사 역시 급증했다. 양현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서울대공익인권법센터 교수)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07년까지 1년간 100건~200건에 머물던 아동성폭력 기사는 김길태 사건 이후 2009년 5배, 2010년 10배가량이 늘었다고 지적했다. 또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3월에 발생한 아동성폭력을 중요한 정책 의제로 삼은 것도 한 이유로 분석됐다.

양 위원은 지난 5일 언론인권센터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성폭력에 대한 의식고양은 갑자기 사라졌다”며 “꼭 필요한 국민의 알권리는 무시되고 무차별식 보도로 언론이 광범위한 공포심만 생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사 데스크들은 선정적 보도는 지양해야 하지만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려는 기자의 노력은 구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종합일간지 사회부 한 데스크는 “매일 뉴스를 다루다 보면 피해자의 사생활 캐기와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는 기자의 취재를 놓고 헷갈릴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선정적 보도로 기울지 않기 위해 기자사회의 넓은 동의를 끌어낼 수 있는 일련의 합의가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박종률 한국기자협회장은 “언론의 성범죄 보도 범위에 대해 근본적 의문이 일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일선 기자들과 편집 데스크들 사이에 서로 공감을 이룰 수 있는 논의의 장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