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부터 정치권과 언론계에는 ‘안철수 괴담’이 떠돌았다. 간추리면 “안 원장이 치명적인 돈 문제와 여자 문제를 갖고 있다. 새누리당 측은 이미 인지하고 있다. 때를 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모 매체는 관련 제보를 대거 확보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렸다. 그 속도는 바이러스가 확산되듯 빠르게 퍼져나갔다. 하지만 출처와 근거는 확인되지 않은 ‘카더라’ 식이어서 아무도 섣불리 공론화하지 못했다.
급기야 이 ‘괴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새누리당과 언론이 아니라 안 원장 측에서 먼저 터뜨렸다. 안 원장 측 금태섭 변호사가 정준길 전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기획단 공보위원이 전화를 걸어와 이같은 의혹을 다 알고 있다며 불출마를 종용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여기에 한겨레가 11일 이 통화를 들었다는 택시기사의 증언을 보도하면서 진실 공방은 격화되고 있다. 다소 각도가 다르지만 민간인 사찰 재판 과정에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측에 ‘VIP’(대통령)에게 보고하도록 했다는 김용진 전 지원관실 기획총괄팀원의 진술 내용도 11일 경향신문 보도로 공개됐다.
‘安 내사’ 뉴시스 후속보도 예정 이로써 정국의 쟁점은 일단 ‘사찰’로 다시 모아지는 형국이다. ‘안철수 사찰’ 의혹이 대선 정국의 뇌관이 될 뿐 아니라 국회 민간인사찰 국정조사특위의 지지부진으로 표류상태에 놓인 현 정부의 언론 사찰 규명까지 재점화시킬 지 관심사다.
금 변호사는 새누리당이 국가기관을 이용해 안 원장 주변을 사찰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정부는 펄쩍 뛰고 있지만 이에 앞서 뉴시스가 지난달 25일 경찰이 지난해 안 원장에 대해 광범위한 뒷조사를 벌였다고 보도해 파장이 일었던 사건과도 연결된다.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인 경찰청은 뉴시스에 정정보도를 요구하며 언론중재위에 제소해 11일 첫 심리가 열렸다. 뉴시스는 다음 심리가 열리는 18일 이전에 후속 보도를 내보낼 계획이다. 이 기사를 썼던 손대선 뉴시스 기자는 “안 원장에 대한 루머가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는지 역추적하는 과정에서 확인한 것”이라며 “후속 보도를 통해 명명백백하게 밝히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대선 국면에서 뒷전으로 밀려나던 국회 민간인 사찰 국정조사도 모처럼 관심을 끌고 있다. 특위 활동을 합의해놓고도 지루한 논쟁을 벌이며 국정조사계획서도 채택하지 못하던 교착 구도에 오랜만에 새 변수가 생긴 것이다.
민주통합당은 안철수 원장 사찰 의혹을 민간인사찰국정조사 특위에서 다뤄야 한다고 공식 제기하고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유산인 민간인 사찰을 박근혜 후보와 연결시켜 정치적 압박을 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특위가 활기를 띨 경우 YTN을 비롯한 언론 사찰 문제도 재조명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정부에 의한 사찰은 아니지만 MBC 사측이 사내 전산망과 직원의 가정 컴퓨터에까지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해 이메일은 물론 메신저 대화 내용 기록 등까지 수집한 사실이 드러나 언론계는 연이은 ‘사찰’의 충격에 빠진 상태다. 안팎의 ‘언론 사찰’에 대한 경종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대두되는 이유다.
사찰 진상규명 ‘첩첩산중’ 그러나 새누리당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불투명하다. 아직 유보적이거나 부정적인 반응이 대세다. 우선 박근혜 후보부터 “개인적인 일을 확대해석하면 안된다”고 공식 발언했다. 신주류인 이상돈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위원도 “안 원장은 공직자도 아닌 개인이고 국정조사 감도 아니다”라고 말해 일찌감치 선을 긋는 분위기다. 홍일표 대변인이 7일 브리핑과 백기승 새누리당 공보위원이 언론 인터뷰에서 “야당이 원한다면 논의할 수 있지만 (국조에서) 안 원장 관련 의혹도 다뤄져야 한다”고 밝힌 게 그나마 적극적인 반응이다. 이 기회에 안 원장 의혹을 입증하면 승기를 잡을 수 있다는 판단이지만 사찰 논란의 맞바람도 만만치 않을 것이어서 계산이 복잡해 보인다. 출마 의사를 확정짓지 않은 안 원장 측도 아직 추가대응에 나서지는 않고 있다. 결국 안 원장의 출마 여부에 따라 민간인 사찰 진상규명 움직임이 본격화될 지가 달려있는 셈이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정황이 제기된 YTN 사찰 건은 현재 노사가 각각 증거인멸과 부당노동행위를 공모한 혐의, 무고죄와 명예훼손 혐의로 맞고소해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이다. 조사 일정은 조만간 마무리될 전망이다. YTN노조는 2008년 YTN사태 초기에 YTN 인근에 상주한 정황이 나타난 원충연 전 조사관의 교통카드 내역을 확보해 공개하는 등 추가 폭로에 나섰지만 ‘대선 앞으로’ 가 있는 검찰 수사, 국회 특위 활동 모두 뒤쳐져있다.
김종욱 YTN노조위원장은 “민간인 사찰 국정조사는 여야가 국민 앞에 합의한 것인데 여야의 당리당략에 따라 좌우돼서는 안된다”며 “현 정부의 불법행위에 대해 여야 모두 국민에게 밝히는 것이 순리이자 기본 예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