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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실족사' 의문 제기했던 동아일보

당시 언론 중 유일하게 보도…기자는 긴급조치 위반 구속

장우성 기자  2012.08.29 14:4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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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시 언론 중 유일하게 장준하 선생의 사망 원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1975년 8월19일자 동아일보 사회면 톱기사.  
 
장준하 선생이 사망한 이틀 뒤인 1975년 8월 19일, 동아일보는 사회면 톱으로 ‘장준하씨 사인에 의문점’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당시 언론 중 유일하게 장 선생 사망에 의혹을 제기한 보도였다.

동아일보는 이 기사에서 “검찰이 경찰의 수사 결과에 의문을 품고 최종 목격자인 김용환씨를 두 차례 소환하는 등 다시 조사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동아는 “△추락사고 지점은 산이 너무 험해 젊은 등산가들도 마음대로 오르내리지 못하는 경사 75도 길이 12m의 가파른 절벽인데 장(준하)씨 혼자서 아무런 장비없이 내려오려 한 점 △사고 현장 벼랑 위에 오를 때는 멀리 등산코스를 돌아 올라갔는데 내려올 때는 등산로 코스도 아닌 벼랑을 내려오려 한 점 △사고 직후 (목격자) 김(용환)씨가 장씨의 시계를 차고 있던 점” 등을 들어 ‘실족사’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목격자인 김씨가 사고 직후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군부대에 신고한 점도 미심쩍게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당시 동아가 보도한 이 같은 의문점은 현재까지도 명쾌히 풀려지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그러나 동아의 이 특종 보도가 나온 날, 검찰은 서둘러 기자회견을 자청해 “동아일보의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며 이 사건을 실족사에 의한 사망으로 단정했다. 목격자 소환도 의례적인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검찰은 기자회견이 끝나기 무섭게 이 기사와 관련해 한석유 지방부장, 장봉진 의정부 주재기자, 성낙오 편집부 기자(현 대한언론인회 편집주간)를 소환 조사했다. 이 중 성 기자는 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구속되기까지 했다. 열흘 간 갇혀 있다가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으로 풀러났으나 ‘진실의 대가’를 치러야 했던 것이다. 동아일보는 이 구속 소식 보도까지 막으려던 정부기관의 압력 속에 이를 단신 처리해 내보냈다.

이후 영남일보 사장을 지낸 성낙오 대한언론인회 편집주간은 당시 검찰이 조사 과정에서 “왜 제목을 이렇게 뽑았느냐”, “왜 이렇게 크게 다뤘느냐”,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고 회상했다.

성 주간은 “기사를 사회면 톱으로 뽑으면서 (정권이) 틀림없이 문제를 삼을 것이라고 예감했다”며 “당시 기자들은 민주화를 위해 독재정권에 맞서는 정신을 갖고 있었다. 각오를 하고 신문을 냈다”고 말했다.

당시 동아일보는 장 선생이 사망한 다음날인 18일 역시 단신 처리한 다른 신문과 달리 1면,  3면, 7면 등을 할애해 비중있게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