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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도 '여유 있는 삶' 원해요"…달라진 언론사 풍속도

지금은 '기자사회 2.0' 시대

양성희 기자  2012.08.15 14:5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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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에서 “그만 마시겠습니다” 당당한 의사 표시
선배들, 세대간 문화 차이 존중하며 변화 받아들여
“언론 환경 급변으로 기자 정체성 혼란” 우려도




   
 
  일러스트=설인호 화백  
 
“회식이요? 전 약속 있는데요.” 부서 막내 기자의 말 한 마디에 한 종합일간지 문화부장은 요즘말로 ‘멘붕’(멘탈 붕괴)을 실감했다. 20년 넘게 기자생활을 해오고 있지만 개인의 스케줄을 조직보다 우선시하는 경우는 요즘 기자들에게 처음 느낀다는 것이다.

기자 선후배 간의 끈끈한 정, 조직에 대한 애착 등이 예전만 못한 것 같아 당혹스럽다고 한탄했다. “부서를 이끄는 사람으로서 힘들다. 다 모아놓고 술 한번 마시기가 어렵고, 술자리를 갖더라도 막내들 표정이 좋지 않을 땐 눈치가 보인다.” 그러나 세월이 변했고 세대가 바뀌었다. 기자 사회에도 새로운 풍속도가 그려지고 있다. 선배와 후배들은 서로 당황하지만 조금씩 인정해가며 ‘기자사회 2.0’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선배 세대 역시 이 같은 세태 변화에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긍정적인 변화로 받아들이는 한편 부러움 섞인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한 방송사 보도국장은 긍정적인 입장이다. 이같은 자유로운 문화가 보도 질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해석이다. 1988년 기자생활을 시작해 20년 넘게 언론계에 몸담고 있는 그는 “젊은 기자들의 자기 의사표현이 확실하다 보니 오히려 조직 분위기가 좋아졌다”며 “과거처럼 강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성과를 높이는 시대는 지났다. 수평적인 조직문화에서 다양한 의견이 맘껏 나오고 이는 좋은 기사로 연결된다”고 평했다.

올해로 23년차인 한 종합일간지 국제부장은 “술자리에서 ‘됐습니다. 그만 마시겠습니다’라고 거리낌 없이 말하는 요즘 기자들은 좋겠다”며 부럽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나는 6개월의 수습기간 내내 날마다 토했다. 요즘은 폭탄주를 잔의 반만 채워 마시지만 예전엔 가득 따라 마셨다. 술을 강권하는 시대 분위기여서 매일 퇴사 욕구가 치밀 만큼 견디기 힘들었다. 나도 늦게 태어날 걸 그랬다.”

폭탄주에서 테이크아웃 커피로
여기자가 급증한 것도 기자사회 2.0의 중요한 요인이다. 참석한 기자 절반 이상이 여성인 팀 회의 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여기자 숫자가 점점 늘어나면서 조직 분위기가 자유롭고 부드러워졌다는 말이 나온다. ‘낮술’을 외치기보다는 때에 따라 피자와 파스타가 점심 메뉴에 오르곤 한다.

“지난 20년간 폭탄주는 내 일상이었다”는 한 종합일간지 편집국장은 “요즘엔 파스타에 와인 한 잔, 그 후엔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자는 말이 내 입에서 먼저 나온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 같은 기자사회 문화의 변화는 자칫 향락적으로 흐를 수 있는 남성 중심적 문화에 ‘천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한 부장급 기자는 “남성위주의 놀이문화, 이를 테면 술자리에서 단란주점으로 이어지는 질척질척한 문화가 사라진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했다. 노래방에서 술을 거나하게 걸친 선배들이 무심코 여 후배의 어깨에 손을 올려놨다가는 “왜 이러시죠?”라고 무안당하기 일쑤다.

이러다보니 선후배의 수직적 위계질서 아래 욕설이 난무하던 분위기도 많이 완화됐다. 한 1년차 기자는 “선배들이 종종 ‘너넨 그래도 사람 대우 받으니까 좋은 줄 알라’고 하신다”고 말했다. 

분위기가 유연해진 것과 더불어 일본식 은어가 사라져가는 것도 또 하나의 현상이다. 야마(핵심 혹은 주제), 사스마와리(경찰기자), 우라까이(베끼기), 하리꼬미(밤샘 취재) 등 몇몇 용어만 명맥을 유지한다. 과거엔 흔히 쓰이던 도꼬다이(특종), 와리스께(레이아웃)와 같은 말은 거의 외계어 취급을 받기도 한다.
선배들이 일본식 용어를 무신경하게 쓰다가는 후배들이 되묻기 일쑤다. 때로는 “굳이 일본식 말을 써야 되느냐”고 꼬집는 후배들에 머쓱해지기도 한다.

“기자 정신 약해졌다” 지적도
하지만 마냥 긍정적인 평가 일색은 아니다. 이같은 변화 속에 “젊은 기자들에게서 기자정신을 엿보기 힘들다”는 핵심적인 비판이 있다.

한때 기자의 꽃이라 불리던 사회부 사건팀, 법조팀을 기피하는 현상이 도드라지는 것도 한 예로 거론된다. 상대적으로 업무강도가 덜하고 자기 취향을 살릴 수 있는 문화부, 국제부를 선호하는 기자들이 점차 늘어나는 현상도 낯설지 않다.

얼마 전 문화부에서 정부부처로 출입처를 옮긴 한 중견 기자는 “인사철이 되면 후배들은 절대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며 “누군가는 양보해야 하는데 결국 연차가 제일 모호한 내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또 한 중견기자는 “사회부는 싫어하는데 의외로 정치부를 원하는 후배들이 많다”며 “정치부 출신이 회사에서 결국 주요 위치에 오르는 법칙을 너무 일찍 터득한 게 아닌가 싶다”고 씁쓸해했다.

이를 기자 정체성의 혼란으로 연결짓는 ‘위기론’도 존재한다. 한 종합일간지 논설위원은 “젊은 기자들의 대부분은 언론사를 직장의 하나, 기자를 직업의 하나로 생각하는 것 같다”며 “업무 시간 외 취재를 시키면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치열함이 엿보이지 않는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는 “기자는 단순한 생활인이 아닌 사명감을 가진 존재”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 종합일간지 편집국장도 마찬가지 논리였다. 그는 “취재를 시작하면 스스로 끝을 보는 건 당연하다고 여겨졌는데 요즘 젊은 기자들은 취재 도중 차질이 생기면 징징거리곤 한다”며 “사실 그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보는데 하소연하는 걸 들을 때마다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젊은 기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수습 딱지를 막 뗀 한 기자는 “취재환경이 바뀐 걸 생각하지 못하고 부장, 국장들은 우리를 깨기만 한다”며 “경찰서에도 수습기자들이 너무 많아 형사들이 새로운 수습이 오는 것만으로도 귀찮아하고, 문서를 빼가기도 하던 과거의 관행은 용납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니 젊은 기자들이 ‘3D 부서’를 기피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언론 환경 급변이 주원인
이러한 변화는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언론 환경의 변화가 이 같은 문화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지렛대가 되고 있다. 인터넷언론의 등장으로 언론사 수가 급증하고 그에 따라 기자 수도 대폭 늘어나 기자의 희소가치는 사라져버렸다. 과도한 경쟁으로 상업성, 선정성이 짙어져 언론의 신뢰도가 덩달아 하락하면서 언론인이 일반 직장인과 별다를 것이 없어지는 상황이 생겨난다.

한 논설위원은 “언론환경의 변화로 기자들의 사기가 떨어져 단순한 직장인, 생활인처럼 돼버렸다”며 “사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질 수 없듯 뭐가 우선하는 이유인지 명확히 말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한 부장급 기자는 이렇게 진단했다. “언론계뿐만 아니라 사회가 변했기 때문이다. ‘잘 살아보자’는 분위기에선 일에 매진하는 게 당연한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저녁이 있는 삶’이란 한 대선주자의 구호가 큰 반향을 불러올 만큼 여유 있는 삶, 즐거운 삶에 대한 열망이 높아졌다. 기자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