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간 경쟁 심화로 노동 강도 세지고 콘텐츠 質 떨어져
언론인 정체성·자긍심 회복 방안 있어야◇참석자(가나다 순)
김진혁 EBS PD
김희수 KBS 아나운서
유은길 한국경제TV 증권팀 기자
박진용 한국일보 산업부 차장
최민영 KBS TV 기술국 차장
사회=주정민 전남대 교수급속한 언론환경 변화와 함께 경쟁이 심화되면서 언론인의 근무여건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반면에 급여나 복지 등 처우는 제자리거나 오히려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언론인을 둘러싼 환경이 언론 본연의 역할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이런 열악한 근무 환경은 언론인의 소명의식을 갉아먹고 결국 저널리즘의 질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단의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한국기자협회는 창립 48주년을 맞아 기자, PD, 아나운서, 방송기술인 등 현업 언론인 5명이 참석해 작금의 언론현실을 진단하고 개선 방안을 찾아보는 ‘언론인 직업환경과 저널리즘’ 좌담회를 마련했다. 이번 좌담회는 지난 10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13층 한국기자협회 회의실에서 열렸다. 사회=디지털 미디어시대를 맞아 언론인의 근무환경이 어떻게 바뀌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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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진용 한국일보 산업부 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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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용=지금은 신문만 아니라 인터넷까지 챙겨야 한다. 오전에 인터넷 기사를 마감하고 오후에 신문 기사를 마감한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 취재할 시간이 별로 없다. 매일매일 허덕이다보니 취재의 깊이가 떨어지고 제대로 된 기획도 안 나온다.
김진혁=PD들도 마찬가지다. 방송하고 인터넷 VOD를 같이 한다. 방송 특성상 제작자가 인터넷VOD를 컨트롤하지 않으면 안된다. 인력 충원 없이 PD 한 사람이 제작해서 인터넷에 올리고 관리까지 해야 한다. 업무 분담은 예전 시스템이어서 전반적으로 업무 스트레스를 받는다.
최민영=엔지니어의 경우엔 한 프로그램이 끝나면 바로 또 다른 프로그램에 투입돼 제작을 하는 생활을 반복한다. 현재 업무를 충당하기에 바쁘고 한 사람이 많은 일을 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유은길=용어로 따지면 ‘패스트 멀티플레이어(Fast Multiplayer)’를 요구하는 시대다. 많은 일을 빨리 하고, 한 명이 여러 명의 역할을 해야 한다. 전에는 방송꼭지 하나만 보도하면 하루 일과를 끝낼 수 있는데 속보경쟁이 붙으면서 방송 기자도 속보 체제를 따라가지 않으면 도태된다.
사회=그렇다면 다른 직종과 비교해 언론이 디지털 영향을 더 많이 받는 것인가. 김희수=10년 전 입사했을 때 아나운서가 촬영에서 제작, 방송까지 한다는 의미에서 ‘아나듀서’라는 말이 유행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야기가 쑥 들어갔다. 디지털환경이 발달하면서 1인 제작시스템이 갖춰지긴 했지만 퀄리티가 받쳐주지 않아 시청자의 외면을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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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은길 한경TV 증권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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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길=종편4사가 출범하면서 무한경쟁의 시대로 돌입했다. 경쟁의 강도가 장난이 아니다. 적은 인원이 취재하고 촬영하고 편집하는 멀티플레이어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경영진은 질 높은 퀄리티만 원한다.
박진용=사람 부족에 대한 고민이다. 야근이 일주일에 두 번씩 돌아온다거나 하루에 13~14시간 일을 하지 않으면 부서가 안 돌아간다. 이건 문제가 있다. 언론인이 양적인 측면에서 과도한 노동, 질적으로 ‘원소스 멀티유즈’에 시달리고 있다.
김진혁=제작비가 늘고 제작 규모가 커지면서 프로듀서뿐만 아니라 모든 스태프들의 노동 강도가 올라갔다. 모든 방송사들이 인력 문제에 봉착해 일이 안 돌아가는 상황까지 와서 돈으로 해결하는, 즉 아웃소싱으로 빼버리는 수준에 왔다.
김희수=아나운서는 조로화(早老化) 현상이 심하다. 2~3년차에 활발하게 활동하고 4~5년차가 되면 뒷전으로 빠진다. 5~6년차가 넘어가면 뒷방에 있는 사람으로 치부된다. 예전에는 1년차 일요일 새벽 뉴스, 2~3년차 중계차, 4~5년차 MC나 캐스터 등 그 연차에 맞는 단계를 밟았지만 지금은 2~3년차부터 여기저기에 투입된다. 근무강도가 굉장히 강하다. 처음에는 버티지만 4~5년이 지나면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 흐름이 후배들로 내려가고 나머지 아나운서들은 근무강도가 강하지 않은 악순환 형태로 나타난다.
사회=경쟁이 심화되고 노동강도가 높아지면서 콘텐츠의 퀄리티가 떨어진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박진용=비판 기사는 단기간에 나오지 않는다. 많은 인력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최근 들어 탐사보도나 심층기사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 기자들이 하루하루 허덕이다 보니까 깊이 있게 취재하지 못하고 MB 사저 등 주요 이슈를 나꼼수 등 대안미디어에 빼앗기고 있다. 전통언론이 분발해야 하는 측면이 있지만 제 역할을 못하게 하는 객관적 여건도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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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혁 EBS P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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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광고총량이 동일한 상태에서 매체수가 늘어나면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그럴수록 근무여건은 악화돼 기사의 질은 떨어진다. 거기다 아젠다 세팅을 포털에 뺏긴 상황에서 TV 프로그램에 나온 내용을 기사화해 트래픽만 올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환경에서 1~2개월 고생해서 탐사기사를 쓴다는 게 쉽지 않다.
김희수=방송 프로그램을 기사화한 뉴스가 포털에 많다. 이런 기사를 보면서 ‘진짜 게으르다. 이런 것도 기사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기사들이 점점 많아지더라. 포털사이트가 그런 부분을 뉴스라는 항목에 올려놨기 때문에 대중들이 접근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공정성이나 객관성 내지는 뉴스 가치가 없는 기사들은 포털에서 배제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필요하다.
유은길=언론사 간에 기사 짜깁기, 선정성 경쟁이 심화되는 반면에 심층취재 경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언론사들이 클릭수에 연연해 자극적인 연예나 스포츠, 사건사고에만 관심을 갖는다. 한국기자협회 차원에서 자정의 기제를 만들 필요가 있다.
사회=현장에서 느끼는 직업만족도는 어떤 수준인가.박진용=자기가 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때 만족도는 커진다. 그런 측면에서 저널리즘 자체는 만족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언론사의 비즈니스 모델이 무너지고 대기업에 대한 광고 의존도가 심화되면서 기자들이 기사 이외의 일에 신경을 쓰는 일이 많아졌다. 자본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면서 기자들이 기사 쓰는 것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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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수 KBS 아나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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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안타깝게도 아나운서가 언론의 연성화, 오락화에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예전엔 아나운서들이 뉴스 쪽에 관심이 많았지만 지금은 대부분 예능 쪽을 바라본다. 아나운서가 방송에만 집중하면 되는데 예능에 진출하면서 열패감 같은 것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예능에서 복귀한 아나운서들이 자긍심이 아닌 열패감을 갖고 돌아온다. 그런 열패감에 불만이 쌓이고 조직을 불신하고 극단적으로 조직을 버리는 경향이 생겨난다.
최민영=내가 맡고 있는 음향만 해도 외주제작이 많아졌다. 만들어내기에 바쁘고 인력도 부족해 전문업체에 대한 기술 의존은 커지고 있다. 내가 익힐 수 있는 신기술이 줄어들고 실력도 떨어진다. 공부하고 연구할 시간이 필요한데 그런 여건은 허락하지 않는다.
김진혁=요즘 같은 환경에서 언론인의 정체성을 갖기가 쉽지 않다. 언론인보다는 방송국 직원 개념이 정확한 것 같다.
사회=언론인의 직업만족도를 높이고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방안은 없나. 김진혁=안식년 제도가 필요한 것 같다. 다큐멘터리 한 편이 끝나면 곧바로 다른 프로그램에 투입된다. 2~3번 반복하다 보면 공황상태가 되고 심적으로 우울증까지 오는 PD들도 있다. 새로운 기획이나 자료조사를 위한 안식년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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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민영 KBS TV 기술국 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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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영=승진을 하거나 직급이 바뀌는 타이밍에 전문 기술을 향상시킬 수 있는 교육이 있었으면 한다.
사회=노후나 복지, 이런 측면도 중요할 것 같다.
박진용=언론인들이 퇴직하면 할 일이 많지 않다. 벌어놓은 돈도 많지 않고 노후 대책도 없다. 선배들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언론인의 20~30년 전문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학교나 지역사회에 미디어 영역들이 많다. 이런 영역에 언론인들의 경험을 전수할 수 있는 제도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최민영=노후를 생각할 여력이 없다. 정시에 출퇴근하고 근무시간에 집중해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다. 야근 등 추가 노동에 대한 보상도 적다.
사회=언론이 공적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언론사 또는 정부가 해야 할 정책방안이 있다면. 박진용=소속사가 다르고 성향이 제각각이지만 언론인의 역할은 똑같다. 공적기능 수행이다. 기자협회 등 언론단체가 협업을 통해 공적기금을 만드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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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주정민 전남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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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영=MBC 파업 때 사원들이 월급 문제로 힘들어했다. 언론이 공익성을 외칠 때 그런 것을 보완해주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유은길=수익을 내는 언론사가 매칭펀드 형식으로 공적기금에 일정액을 기부하는 캠페인을 제안한다.
사회=언론인공제회를 운용하면 어떨까. 김희수=개인적으로 공제회에 참여하면 어떤 이로움이 있는지 궁금하다.
김진혁=EBS에 교원공제회에 가입한 직원들이 있다. 교육부 산하기관일 때 가입한 경우인데 모두들 든든해하고 만족도가 높다. 언론인들도 이런 공제회가 있으면 좋겠다.
박진용=노후대책이나 경제적 문제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언론인들이 공적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다. 언론인을 보호하는 시스템을 만들 때가 됐다.
정리=김성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