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 여건 갈수록 악화…노후안정·복지방안 고민 필요
기자협회, 언론인공제회 설립추진위 구성 등 본격 ‘시동’
#기자생활만 24년인 A기자는 정년이 가까워지면서 걱정이 많다. 아이들은 어리고, 배워둔 기술은 없고, 모아둔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뭘 해먹고 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하다. 그런 걱정 때문인지 요즘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 “기자로서 끝까지 가고 싶죠. 하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아요. 지금이라도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이런저런 고민이 많습니다.”
#지역신문에 근무하던 B기자는 얼마 전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급여가 수개월씩 체불되고 빚이 늘어 가는데 회사 사정이 언제 좋아질지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과외선생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다른 직장을 알아보고 있다. “10년 넘게 기자생활을 했습니다. 웬만하면 버터 냈을 겁니다. 그런데 여건이 받쳐주지 않더군요. 밥벌이를 위해 과외를 하고 있지만 지금도 기자로 돌아가고 싶어요.”미래에 대한 불안감…저널리즘 ‘적신호’미래에 대한 불안감, 박봉에 악화된 근무여건이 기자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미디어환경이 급격하게 변하면서 기자들의 직업 환경은 악화되고 있다. 신문 이외에 인터넷 기사를 마감해야 하고, 방송기자는 촬영과 편집까지 해야 한다. 그렇다고 일하는 여건이 나아진 것도 아니다. 급여나 복지수준은 다른 직종과 비교 자체가 언감생심, 격차가 점차 커지고 있다.
그날그날 처리해야 하는 기사에 심층취재는 남의 나라 얘기가 됐다. 특히 광고의존도가 심해지면서 기자가 기사 이외의 일에 신경을 쓰는 일이 많아졌다. ‘어느 날, 거울을 보니 쓰고 싶은 기사는 못 쓰고 취재원과 적당히 타협하는 내 모습이 들어 있더라’는 한 기자의 고백처럼 기자로서 자부심은 사라지고 샐러리맨화 됐다. 당연히 직업만족도는 떨어지고 이직 및 전직하는 기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언론재단이 2009년에 발간한 ‘언론인의 직업환경과 역할정체성’을 보면 2008~2009년 2년간 자신이 몸담았던 언론사를 떠난 이직 및 전직 언론인은 오프라인 언론사 종사자 4040명, 온라인 언론사 종사자 299명 등 모두 4339명에 달했다. 각 회사마다 전체 총원의 10% 이상의 기자가 이 기간에 퇴직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방언론사 기자들의 이직 및 전직 비율은 3명 중 1명꼴인 31.4%에 달했다.
황치성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은 이 책에서 “언론인의 직업환경 악화는 직업만족도를 떨어뜨리고 결과적으로 다른 직업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며 “현재의 직업환경이 계속되는 한 수준 높은 저널리즘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언론인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게 하기 위해 언론사 자체의 노력과 국가적·사회적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기자협회가 언론인공제회를 추진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국민 알권리를 충족하고 사회를 감시·비판하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다. 국민의 신뢰를 받고 권력과 자본에 타협하지 않고 건강한 언론활동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생활난에 허덕이고 미래를 불안해하는 언론인들이 제대로 된 저널리즘 기능을 수행하기가 힘든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언론인공제회는 언론인 상호간 부조와 복지를 목적으로 설립한 조직이다. 공제회에 가입한 언론인이 납입하는 회비가 주 재원이지만 안정적 운영을 위해 초기에 상당 규모의 종잣돈이 필요하다. 언론사의 분담금과 정부의 공적자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과학기술인의 생활안전과 복지도모를 목적으로 지난 2003년에 설립된 과학기술인공제회는 정부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사례다. 정부는 과학기술인공제회가 운영하는 과학기술인연금에 2004년부터 2008년까지 1000억원을 출연했으며, 2013년까지 추가 1000억원 등 총 2000억원을 출연할 예정이다. 과학기술인의 사기진작과 안정적인 연구환경 조성이 정부출연금 조성의 이유다. 과학기술인공제회는 이 기금의 운용수익금을 공제회 회원인 정부출연연구소 연구원들에게 퇴직연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언론인들도 공적자금 투입에 긍정적이다. 기자협회가 2008년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현직기자 303명을 대상으로 벌인 여론조사에서 언론인공제회의 재원 방안 마련으로 ‘언론재단(현 언론진흥재단)의 언론인 금고와 방송발전기금’이 73.9%, ‘회원 갹출과 정부 출연금’ 12.9%, ‘협회회원들의 갹출’ 8.3%순으로 나타났다.
9월부터 공론화…언론계 공감대 확산 주력한국기자협회는 1974년 ‘기자복지에 관한 입법 청원’을 국회에 내고 2007년 창립 43주년 기념행사에서 ‘언론인공제회추진위원회’를 띄우는 등 공제회 설립을 추진했다. 하지만 후속작업이 이뤄지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지지부진하던 공제회 설립 작업은 올해 6월 기자협회가 ‘언론인 복지증진을 위한 정책 방안’ 연구용역에 들어가면서 급물살을 타고 있다.
기자협회는 9월 중순 연구 결과가 나오면 언론인공제회 설립 문제를 본격적으로 공론화할 방침이다. 기자, PD, 아나운서, 기술인 등 범 언론인을 망라한 ‘언론인공제회 설립 추진위원회’를 만들고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을 위한 입법 작업도 추진할 방침이다. 주정민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지역신문을 회생하기 위해 지역신문발전기금을 만들어 공적자금을 투입했듯이 언론인이 공적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언론인공제회와 같은 제도를 만들어 최소한의 복지를 보장하는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인공제회는 무엇보다 언론인 내부의 공감대 형성이 필수다. 언론인은 그 범위가 기자, PD, 아나운서, 기술인, 경영직 등 다양한 직종이어서 군인, 교직원, 과학기술인 등 타 전문 집단에 비해 구속력이 약하고 경제적 능력도 천차만별이다. 기자, PD, 아나운서, 기술인 등 언론계 종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정부, 국회, 시민사회 등 외부 이해관계자들의 공감대 형성이 중요한 까닭이다.
한국기자협회 박종률 회장은 “언론인공제회는 정론직필을 하는 언론이 되겠다는 다짐이자 국민의 신뢰를 받으려고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며 “전국언론노동조합, PD연합회, 아나운서연합회, 방송기술인연합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신문협회, 한국방송협회 등 언론 유관단체들과 공제회 설립에 대한 공감대 형성에 주력할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