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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배석규 사장에게 지금 필요한 것

[컴퓨터를 켜며] 장우성 기자

장우성 기자  2012.08.01 15: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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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우성 기자  
 
임기 내 연속 흑자 경영, 케이블TV 시청률 부동의 1위, 디지털방송에 이르기까지 채널번호 24번 통일. 배석규 YTN 사장이 이룬 일이다. 보통 방송사 사장이라면 여기저기 자랑할 법하다. 사내 구성원들도 좋아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YTN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모든 걸 한순간에 빛바래게 하는 것이 있다. 노든, 사든 모든 YTN 구성원들의 가슴에 태산같은 응어리를 똬리틀게 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만 4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YTN 해직 사태다.

언론사 동시파업의 회오리가 휩쓸고 간 2012년 언론계에서 아직까지도 포연이 자욱한 전쟁터로 남아 있는 곳은 YTN 뿐이다. 물론 MBC를 비롯해 크고 작은 여진이 남아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 해결의 종착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다른 언론사에 비해 YTN은 혼돈의 나락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YTN의 비극은 ‘낙하산’ 논란을 부른 구본홍 전 사장의 취임 이후 가열된 갈등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이전부터 예견됐다고도 볼 수 있다.

1997년 몰아닥친 IMF사태에 YTN은 풍전등화였다. 한국의 CNN을 꿈꿨던 야심은 일장춘몽으로 끝날 위기에 처했다. 주축 창립멤버들은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 이후 YTN은 혁신의 진통 속에 인적 교체 국면을 맞았고 헌정사 최초의 정권교체와 진보 정권 10년 집권이라는 정치적 환경에서 ‘제3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 파란의 중심에 배석규 사장도 있었다.

배 사장과 같이 일해 본 YTN 몇몇 구성원들은 일에 대한 승부욕과 회사에 대한 애착만 놓고 보면 그에게 이의를 달기 힘들다고 말한다. 공영방송 KBS라는 안정된 직장을 뿌리치고 성공가능성이 ‘시계제로’인 신생 방송사 YTN행을 결단했을 때는 그만한 꿈과 포부가 있었을 것이다. 개국공신이라고 자부할 만한 그가 한순간에 방만 경영과 파행 인사의 책임자로 지목되면서 내리막길로 접어들었을 때 그 정당성 여부를 떠나 본인 자신은 커다란 상처를 받았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배 사장은 사석에서 “지난 10년 동안 YTN은 망가졌다”고 주장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개인으로서는 터널 같았던 10년간이 혁신을 주도했던 노조와 해직자에 대해 일관되게 비타협적인 입장을 유지하는 뿌리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YTN 사태 해결의 열쇠는 배 사장이 쥐고 있다. YTN 대립과 갈등의 한 축이었던 배 사장이야말로 YTN의 평화를 되찾아올 힘을 가지고 있다.

‘아랍의 봄’을 부른 오슬로 협정의 주역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 그는 원래 참모총장 출신으로 아랍인들을 축출하고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를 점령한 인물이다. 하지만 총리가 된 라빈은 문제의 지역에서 이스라엘군을 철수시키고 철천지 원수 같았던 아라파트와 손을 잡아 중동평화의 꿈을 일궈냈다. 비록 강경파의 총성에 유명을 달리했지만 역사는 그를 지구상에서 가장 치열했던 분쟁의 화마에서 민중을 구해내려 했던 용기있는 인물로 기록하고 있다. YTN에는 지금 라빈이 필요하다. 그것도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라빈이 아닌, 성공한 라빈을 필요로 하고 있다.

배석규 사장은 1999년, YTN 창사 이래 최대라는 ‘몽골-유라시아 특별취재팀’을 이끌었다.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에 이르는 취재를 통해 그는 몽골제국의 흥망성쇠를 다큐멘터리로 집대성했다. 다큐에도 담긴 중국의 임안(항주)은 몽골제국 5대 칸인 쿠빌라이의 족적이 뚜렷한 곳이다. 쿠빌라이는 남송의 수도였던 임안을 접수하면서 무력에 기대지 않았다. 전쟁터에 시장을 만들어 남송인들과 교역하고, 포로를 석방하는가 하면 상대방의 문화를 존중했다. 결사항전 태세의 남송인들을 감복시킨 그는 문자 그대로 ‘무혈입성’의 기록을 남겼다. 13년 전 대륙의 흙먼지를 헤치며 2만km를 가로질렀던 대장정의 기억을 되살려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