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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일의 제작거부와 '선비의 길'

[특별기고] 박성호 MBC 기자회장

박성호 MBC 기자회장  2012.07.18 15:5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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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성호 MBC 기자회장  
 
겨울, 봄, 여름. 계절의 4분의 3을 썼다. 그러고도 우리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지만 ‘일단 멈춤’의 표지 앞에 섰다. 승리인가, 패배인가? 조용필의 옛날 노래가 귓전에 맴돈다. ‘오늘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가사의 뒷부분은 모르겠다.

1월 5일. 참 추웠다. 집에 가지 못했다. 숙직실에서 잤다. 못 잤다. 한 시간 반을 뜬눈으로 누워만 있었다. 기자총회를 열어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의 퇴진, 불신임 투표를 결의한 밤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내 몸에 상처 없음을 상기하면서 좀 다쳐도 된다고 생각했다. 많은 후배 기자들의 고통스러운 얼굴을 떠올렸다. 나는 잠시 뒤 아침 뉴스의 진행자로 화면에 나왔다. 다시보기로 봐도 멀쩡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주 월요일이 나의 마지막 방송이 됐다. 기자회장으로서 공정방송을 회복하겠다는 요구를 집약한 게 이유였을 가능성이 높다.

2월 29일. 4년에 한 번, 올림픽이 있는 해에만 맞이할 수 있는 날이었다. 잘렸다. 내가 17년간 모든 걸 바쳐온 조직에서 해고 통지를 받았다. 갈색 목도리를 칭칭 감은 채 청계광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섰다. 웃었다. 갓 잘린 싱싱한 해직기자라고 농담까지 했다. 그 앞에 천 명 가까운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한 사람 앞에서도 운 적이 없는데 그 많은 사람 앞에서 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운 건 후배 기자들이었다. 술잔 앞에서. 내가 없는 MBC는 MBC가 아니라고도 했고, 내가 없는 한 마이크 잡을 일 없다고 했다. 고마웠지만 100% 현실화할 얘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날을 넘겨 새벽 3시, 신발 분실의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24시간 업소에서 구두를 잃었다. 수십 켤레의 구두 속에 내 것은 없었다. 마침내 슬펐다.

4월의 어느 날.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를 읽다가 밑줄을 그었다. 민주주의에 걸맞은 시민은 자신의 운명을 수정하는 능력을 가진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존재여야 한다는 대목이었다. 우리가 그렇다고 생각했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기자들이 이 시대와의 불화 속에서 운명을 고쳐나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6월 12일. 인터넷에서 기사를 읽었다. 나의 해고가 정당하다는 회사 임원의 인터뷰였다. ‘회사라는 조직에 미친 악영향이 있었다면 거기에 대해서 책임지는 것이 마땅하다. 그게 정상적인 조직이다’라는 내용이었다. 공감했다. 그리고 그 인터뷰에 나선 임원을 포함해 7명의 기자들을 떠올렸다. 언젠가 그들에게 적용될 판결 주문처럼 들렸다. 전범(戰犯)이라는 역사 속 표현도 마침 떠올랐다. 기자라는 것이 별 것 아니구나, 세상 이치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진영의 논리 속에서 신념을 강화하는 존재로 타락할 수 있구나, 자신이 살고 죽는 길에 연연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 능력, 콤플렉스, 사회성, 신념. 이런 단어들이 그들의 얼굴과 겹치며 정신을 어지럽혔다. 가여웠다.

6월 20일. 최승호, 박성제 선배마저 해고됐다. 봉건시대의 군주조차 덕과 지혜가 다스림의 근본임을 되뇌었는데 2012년 문화방송의 사장은 짐승 잡듯 창과 칼로 후배들을 죽였다.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이 불을 불로 끌 것인가? 소방관이라면 이 미친 불에 맞불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법구경’에 나온 대로 ‘불은 물로 끈다’는 말로 참았다. 이러다가 출가하겠구나.

7월 8일 밤. 다음날 있을 대학 강의를 앞두고 원고를 준비했다. ‘나는 왜 기자가 되었나?’가 주제였다. 답이 자동으로 나왔다. 스물네 살 때 입에 달고 있었으니까.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시인이 되고 싶었고, 실록의 사초를 쓰는 사관이 되고 싶었고, 세상의 이치를 밝히는 철인이 되고 싶었다. 문사철(文史哲)의 구현이었다. 다시 말해 선비의 길을 걷고 싶었다. 거창했지만 실로 그런 생각을 품었다. 그리고 9일 아침 학생들 앞에서 그대로 말했다. 청중의 절박한 관심사를 감안해 90분 가운데 85분은 ‘나는 왜 기자가 되었나?’에 할애했고, 나머지 5분은 ‘나는 왜 해직기자가 되었나?’를 덧붙였다. 그리고 말했다. 공정방송을 회복하겠다는 외침과 그 길을 걷겠다며 디딘 발걸음으로 비로소 내가 그토록 꿈꾸던 문사철의 구현을 실천한 것 같다고. 선비를 꿈꾸던 내 생각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은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