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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는 지난 18일 ‘뉴스데스크’에서 톱뉴스로 노건평씨 ‘뭉칫돈’ 의혹을 보도했다. (MBC 뉴스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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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의 경남 통영시 공유수면매립허가 개입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검찰의 ‘언론플레이’가 또다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검찰이 수사계획 수준의 미확인 정보를 흘리고 언론은 이를 받아써 확대재생산한 것은 피의사실 공표 논란을 넘어 ‘검찰-언론 공범관계’의 전형적 사례라는 비난이 나온다.
검찰은 ‘(비자금 저수지로 보이는) 의심스러운 계좌’, ‘수백억원대 뭉칫돈’ 등 자극적인 표현을 쓰며 노씨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았지만 돌연 “노씨와 연관이 없다”며 사흘 만에 말을 바꿨다.
창원지방검찰청은 지난 18일 “노건평씨의 자금관리인으로 추정되는 주변인 계좌에서 수백억원대 뭉칫돈이 발견돼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며 비자금 수사로 번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보수신문 1면·MBC 톱 ‘십자포화’이후 언론의 십자포화가 쏟아졌다. 조선일보는 19일 1면 ‘노건평 자금관리인 계좌에 300억’ 톱기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건평씨가 관리해온 것으로 보이는 300억원의 괴(怪)자금을 검찰이 찾아냈다”며 “이 괴자금은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번영회장인 박영재씨 통장에서 발견됐다”고 대서특필했다.
조선은 21일 사설을 통해서도 ‘노건평 사건, 대통령 가족 부패 이대로 두면 나라 망해’라는 사설에서 “노무현 정권이 막을 내린 지 4년3개월이 지났는데도 건평씨의 뇌물 드라마는 질기게도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 역시 21일자 기사에서 “검찰은 당초 뭉칫돈을 200억원 규모로 추정했지만 규모가 더 클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망했다. 동아일보는 21일 2010년 광복절 특사로 사면된 노건평씨와 함께 걸어 나오는 박영재씨 그리고 노씨에게 큰 절을 하고 있는 고향후배의 사진을 실으며 “검찰은 이 돈이 노무현 정부 시절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노씨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수사상황을 보도했다.
파업으로 기자들이 보도국을 비운 MBC는 뉴스데스크에서 18일 톱뉴스, 19일 두 번째 뉴스로 비중있게 보도했다. MBC는 “입출금 시기와 계좌주인까지 확인됐고 남은 건 이 돈의 실제 주인과 용도”라며 몰아갔다. 같은 기간에 KBS가 18일 6번째 꼭지로 한 차례 보도했고 SBS가 한 건도 보도하지 않은 것과 크게 비교된다.
그러나 검찰은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가 된 지 사흘 만인 21일 돌연 말을 바꿔 “노건평씨와 뭉칫돈 계좌 사이의 직접적인 거래는 없었고, 연관도 없다”고 꼬리를 잘랐다. 언론들이 며칠 사이에 쏟아낸 보도와는 판이한 발표였다.
한국일보는 21, 22일 이틀간에 걸쳐 “뭉칫돈 주인 확인도 없이 노건평씨를 거론했다”며 “여론 떠보기식 수사로 비난을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이동렬 사회부 기자는 22일 기자의 눈에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노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과 맞물려 노건평씨 뭉칫돈 의혹은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정치권 등에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올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라며 “그런데도 검찰은 뭉칫돈의 규모, 조성 경위, 사용처, 실제 주인 등에 대해 확인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공개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기자는 “마침 노 전 대통령 3주기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검찰의 이 같은 행태에 또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현정권 비리 수사정보는 통제검찰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피의사실공표’에 대한 잇따른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최근 6년간 ‘피의사실공표’에 따른 208건의 사건이 접수됐지만 검찰은 단 한 건도 기소하지 않았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피의사실공표의 예외적 상황으로도 공익성, 위법성 등 엄격한 조건에 비춰 책임 유무를 판단토록 하고 있으나 노건평씨 사례에서는 수사단계도 아닌 확인 단계에서 이를 공표해 비난에 휩싸이고 있다.
또한 법무부는 2010년 1월 ‘피의자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수사공보 준칙’을 마련했지만 이번 사례를 비춰볼 때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심석태 SBS 기자(법학박사)는 “수사공보준칙이 지나치게 정보를 통제하고 있어 문제가 있지만 노 전 대통령으로 곤혹을 치른 검찰이 스스로 만든 기준조차 지키지 않는 것은 문제”라며 “전 국민이 관심을 갖고 있는 현 정권의 수사정보는 꽁꽁 묶어두면서 노무현 정권 인사 관련 비리에는 수사계획까지 언론에 흘리다 보니 검찰이 비판받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찰이 수사권을 행사과정에서 피의사실을 언론에 흘려 피의자에게 범죄인의 오명을 덧씌우는 나쁜 관행을 반복하고 있다”며 “이는 형법에서 규정한 피의자의 인격권과 프라이버시권 침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