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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르랭은 한국인인가, 프랑스인인가

언론이 만든 '한국계 신화'

양성희 기자  2012.05.23 14:4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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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 새 정부에서 중소기업·디지털 경제장관에 발탁된 한국계 입양인 플뢰르 펠르랭(38)이 17일(현지시간) 각료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으로 들어오고 있다.(파리=로이터/뉴시스)  
 
18일 조간신문 1면에 일제히 한 여성의 사진이 실렸다. 한국계 입양인으로 첫 프랑스 장관이 된 플뢰르 펠르랭이었다. 언론은 그를 ‘김종숙’이라는 한국이름으로 불렀다. 신문들은 입양인 중 정부각료가 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앞다퉈 부각했다.

펠르랭으로 그치지 않았다. 같은 날 신문들은 내달 총선 결과에 따라 좌파 연립정부가 구성되면 역시 한국계 입양인인 장 뱅상 플라세 녹색당 상원의원이 입각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소식도 잊지 않았다.

펠르랭은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나 생후 6개월 때 프랑스로 입양돼 한국말을 전혀 못하고 그 이후 출생지를 방문한 적도 없다. 자신을 “완전한 프랑스인”이라고 말했다. 플라세는 7세 때 프랑스에 입양됐고 본인의 한국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중앙일보 이상언 런던특파원은 지난 12일자 칼럼에서 플라세를 만난 일화를 소개했다. 한국 언론 특파원들은 상원의원에 당선된 그를 어떻게든 ‘조국’과 연결시켜보려 노력했으나 그의 반응은 오히려 심드렁했다는 뒷얘기다.

‘입양인 신화’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언론이 유력 인사가 된 입양인 출신에게 ‘한국계 입양인’이란 수식어를 붙여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낯설지 않다. 미국 상원의원 부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폴 신(한국이름 신호범), 2006 토리노동계올림픽 동메달리스트 토비 도슨 등 입양아 출신 소식을 다룰 때 언론은 그들이 ‘한국계’임을 강조했다.

한국계라는 혈통만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적 보도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 태생이라는 점이 그의 공적 위치에 미치는 영향은 사실상 없다. 이에 따라 현실에 대한 ‘착시 현상’을 부른다는 것이다.

이진로 영산대 교수(신문방송학)는 “한국 태생이란 점에 지나치게 관련성을 부여하는 것은 독자들이 현실을 오해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향후 양국 관계에 지나친 기대를 불러올 수 있고, 이는 실망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언론 보도에 대해 전문가들은 소수의 성공 스토리에 집착하는 병적인 현상이 깔려 있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서구 선진국에 대한 선망도 겹쳐 있다.

문화평론가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우리 사회엔 아직도 미국,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 성공한 것에 대한 동경이 있다”며 “개발도상국이던 한국 출신 입양인이 서양사회에서 인정받았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6ㆍ25전쟁 이후 입양인은 2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이들 중 성공한 사례는 극히 일부다. 이러한 소수의 스토리를 부각해 고통 받는 다수의 입양인들을 외면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국이 ‘최대 해외입양국’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가린다는 비판이다.

해외입양인 쉼터 ‘뿌리의 집’ 원장인 김도현 목사는 “성공한 입양인의 이야기를 부각해 우리가 지금껏 수없이 행한 입양을 정당화하려 한다”고 꼬집었다. 김 목사는 “입양국가라는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나라에서 해외 입양인의 성공은 일종의 신경안정제 같은 역할을 한다”며 “이를 그대로 받아쓰는, 비판의식 없는 언론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