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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합유통단지 파이시티의 인허가 과정에서 수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구속영장을 발부받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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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위원회 출입 기자는 물론 일반에도 익히 알려진 유명한 최시중 전 위원장의 일화가 있다. 자신과 이명박 대통령의 인연을 소개하기 위해 꺼낸 말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서 돌아왔을 때 그가 지은 강남의 한 빌딩에 들어서는데 이름이 ‘영포빌딩’이었다. 그걸 보고 이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자들은 최 전 위원장이 출입기자 송년회에서 거리낌없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웃기만 할 수 없었다. 지연과 학연을 권력에 대한 정당성으로 연결시키는 사고방식은 공직자로서 상당히 위험한 것은 상식이었다. 바로 그때부터 기자들은 조짐을 뚜렷이 느꼈다는 후문이다.
2008년 MB의 멘토로서 치열한 논란 속에 방통위에 입성했을 때만 해도 기자들 사이에는 기대하는 심정도 없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항상 출입기자들에게 “나는 기자 출신이다. 언론인이다”이라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언론계에 대한 애정을 거듭해 표시하는 그를 보며 일말의 기대감을 갖기도 했다는 기자들도 있다. 그러나 그 작은 기대조차 오래가지 못했다.
“방통위 실무자 얼굴도 기억 못해”통신 정책에 대해서는 일찌감치 무지를 드러냈다. 방통위 현안보다는 바깥 일에 더 신경을 많이 쓰는 게 역력했다. 특히 정권 초기에는 면담 일정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만나자는 사람이 줄을 섰다고 전해진다. “최 위원장은 낮과 밤의 세계가 다르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낮에는 방통위원장이지만 밤에는 정권의 핵심 실세로 군림한 ‘밤의 대통령’이었던 것이다.
그의 방통위 주업무에 대한 무관심도를 나타내는 사례도 있다. 한 출입기자의 말이다.
“최 전 위원장은 4년 가까이 있으면서도 방통위 과장과 팀장의 얼굴도, 이름도 잘 기억하지 못했다. 아무리 연로하고 직급 차가 크다고 해도 방송통신 정책의 일선에 있는 사람들인데 그 정도도 챙기지 않는다는 건 심각했다. 그의 제일 관심사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결국 드러났지만 MB의 뒷일 처리가 주업무였던 것이다.”
종합편성채널 등 신규 방송사업자 선정 이후에는 그의 어두운 앞날을 확신하는 기자들이 늘었다. 보수-진보 성향을 떠난 공감대였다. 기자들은 “이렇게 전망이 불확실한 시장에 종편을 1~2개도 아니고 4개씩이나 허가해주다니…. 저건 반드시 나중에 청문회 감”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어 연임 뒤에는 방통위 내 최 전 위원장 최측근들의 비리가 연달아 터졌다. 그의 말로가 점점 현실화되는 형국이었다. 다만 정권 교체 이후로 봤던 그 시기가 앞당겨졌다는 게 예상 밖이라면 예상 밖이었던 셈이다.
지난달 30일 구속 수감되면서 최 전 위원장은 “뭐가 크게 잘못된 것 같다”고 소회를 묻는 기자들에게 곱씹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기자들은 많지 않은 듯했다.
한 방통위 출입기자는 그가 평소 기자들에게 자신의 좌우명을 들며 인생 선배로서 덕담을 많이 하려 했다고 전한다. 잘 알려진 ‘천망불루’ ‘새옹지마’ ‘역지사지’ 등 그가 내뱉은 말들은 평소 기자들에게 한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 그의 모습은 너무 달랐다. “어느 정도 생각은 했지만 평소의 말과 너무 다른 결과를 빚은 그의 현실을 보며 기자로서 최 전 위원장을 현직 때 더욱 직시했어야 한다는 반성을 한다.”
“로비스트 기자들도 자성을”출입기자들 스스로 자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많다. 방송위와 정통부의 통폐합 후 공룡화된 위원회에는 언론사들의 명운이 걸린 각종 이권이 걸렸다. 그래서 방통위에는 출범 초부터 취재와 보도 보다 회사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투입되는 ‘로비스트형’ 기자들이 많았다는 건 불문가지다. 방송위나 정통부 시절에는 없던 정치부 소속 기자가 출입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기사를 거의 쓰지 않는 간부급의 출입기자도 드물지 않았다. “기자실에 높으신 분들이 많다”는 소리도 나왔다. 어느새 방통위는 청와대와 국회 못지않은 주요 출입처가 됐다. 그것은 기자들이 권력을 감시하기보다 권력을 쫓아다니기에 바쁜 출입처가 됐다는 비극을 잉태했다.
한 출입기자는 “평소 그의 행동과 언행에서 위험성을 많이 감지했고 안 좋은 소문도 파다했는데 이를 심도있게 취재하거나 기사화하지 못했다”며 “기자들도 ‘워치독’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데 반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권이 걸리지 않았던 언론사의 몇몇 기자들은 추적하려 노력했으나 결실을 보지 못해 아쉬웠다고 말한다. 방통위를 출입했던 한 기자는 “살아있는 권력일 때 제대로 파헤치지 못해 아쉽지만 노력을 기울였던 기자들이 적지않았다”며 “지금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앞으로 밝혀야 할 것들이 많다”고 했다.
대선자금 수사 제대로 할지 관심한편 최 전 위원장에 대한 수사가 정권 비리의 핵심에 어느 정도까지 다가갈지에도 기자들의 관심은 쏠린다. 과연 한 권력실세가 7억원을 받은 개인 비리로 끝날지, 이명박 정부의 숨통을 조일 대선자금 수사까지 칼날이 다가가는지에 따라 친박이 장악한 여권의 정국 전략을 읽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언론사 파업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 방통위 출입기자는 “현 정권과 차별화를 강조하려면 대선자금까지 깊숙이 들어갈 수도 있지만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고 조직을 살려놓아 대선에 활용하려고 할 가능성도 있다”며 “그 정도에 따라 여권의 언론사 파업에 대한 대응도 수위가 조절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