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신문협 창구 단일화 합의 '휴지조각'

가뭄극복 캠페인'사세과시'경쟁…액수 따라 글자크기 조정 등 구태 재연

박미영 기자  2001.06.16 00:00:00

기사프린트

가뭄 극복을 위한 성금 모금 캠페인이 또다시 언론사들의 사세과시용 이벤트로 전락하고 있다. 신문사들은 사세 경쟁 자제를 위해 신문협회가 99년 합의한 내용을 깨고 정치인으로부터 금일봉을 받고 사진을 게재해주는 등 유치경쟁을 벌였으며 방송 3사도 ‘가뭄극복’ 생방송에 대통령 ‘모시기’ 구태를 재연했다.

성금모금과 관련 신문협회는 지난 99년 11월 이사회에서 ▷성금 기탁자의 사진 게재를 하지 않고 ▷금일봉을 받지 않으며 ▷기탁자 명단은 본문활자(고딕 가능)로 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이는 같은 해 8월 수재의연금 모금 과정에서 각 언론사들의 경쟁이 과열돼 부작용이 빚어지자 각 사별 경쟁을 자제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신문협회는 이에 따라 지난 8일 각 언론사에 11일부터 공동사고를 게재하고 성금모금에 들어간다고 통보하고 99년 합의사항을 지켜줄 것을 요청했다. 이는 행정자치부의 성금모금 허가를 받아 재해대책협의회가 요청할 경우 공동으로 성금을 모아 협의회 측에 전달해온 관례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올해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이에 앞서 독자적으로 성금 모금에 들어가면서 모든 합의가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가장 먼저 성금 모금에 들어간 신문사는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8일자에 ‘타는 논에 물을 보냅시다’라는 사고를 내고 성금은 농림부 가뭄영농대책본부로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동아일보가 9일자에 ‘농림부와 함께 8일부터 성금 모금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는 사고를 싣고 동시에 정치인의 금일봉과 사진을 대대적으로 게재하고 나섰다. 동아일보는 특히 9일자 가판신문에는 성금 액수에 따라 글자 크기를 다르게 했다가 시내판부터 본문 크기로 바꾸기도 했다.

이어 중앙일보와 문화일보, 국민일보 등이 11일 게재하기로 한 신문협회 공동사고를 9일부터 게재하고 나섰다. 특히 중앙일보는 11일자 가판신문에는 성금기탁자 명단을 게재하지 않았다가 간부회의에서 “우리만 빠질 수 있냐”며 방침을 바꿔 시내판에는 정치인들의 사진과 함께 명단이 게재됐다. 이에 대해 중앙일보의 한 관계자는 “갑작스런 결정으로 일요일 저녁 기자들이 대거 동원됐고, 성금을 내겠다고 응답한 사람들의 경우 금일봉으로 처리했다”고 밝혔다. 이어 11일부터 사고를 내고 성금모금에 들어간 대한매일, 세계일보 등도 정치인들의 금일봉을 받고 사진을 게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같이 성금 모금을 둘러싸고 각 언론사들이 사세과시에 이용하면서 기자들이 대거 동원되는 한편 실제 성금을 내지 않은 경우도 금일봉으로 처리되거나 한 사람이 여러 개 언론사에 쪼개서 성금을 내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중앙일간지 한 기자는 “성금 모금 때마다 정치부와 경제부 기자들을 중심으로 기자들이 동원되는 것은 사실상 관례였다”며 “심지어 지면을 채우기 위해 친척 이름으로 자기가 돈을 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성금모금을 둘러싼 사세과시는 방송사에서도 이어졌다. 방송사들은 지난 8일부터 방송협회와 공동으로 모금전화(ARS)를 동일번호(700-1004)로 일원화해 성금접수를 받는 한편 각각 성금모금 생방송을 진행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방송 3사 모두 대통령 모시기 경쟁을 벌이고 가뭄에 고심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부각시킴으로써 생방송의 순수한 의도를 훼손시켰다는 비판을 샀다.

방송 3사 가운데 KBS가 먼저 9일 ‘양수기를 보냅시다’라는 생방송을 시작하고 대통령 내외를 출연시키자 MBC와 SBS도 뒤늦게 청와대에 자사 행사에도 출연해줄 것을 요청하고 나섰고, 결국 김 대통령은 11일과 12일 잇따라 MBC와 SBS의 성금 모금 생방송에 출연했다.

이와 관련 MBC 노조는 ‘대통령 홍보에 훼손된 가뭄극복 생방송’이란 제목의 공정방송특보를 내고 “무리하게 대통령을 출연시키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경영진 스스로 일방적인 대통령 홍보의 장을 마련한 것이 아니냐”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방송 3사에 모두 출연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기는 하지만 이번 가뭄이 워낙 심각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직접 국민들에게 호소하기 위해 출연하기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