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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사찰 문건을 폭로한 전국언론노조 KBS본부가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KBS 사찰’과 관련해 김인규 사장의 해명과 퇴진을 요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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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기억에서 희미해진 사건이 있다. 이명박 정부가 공식 출범하기 전인 2008년 1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언론사 간부들의 성향을 조사하도록 지시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일었다.
경향신문이 입수해 보도한 인수위의 공문서는 언론사의 사장, 편집·보도국장, 정치부장, 문화부장 등을 대상으로 약력, 정치적 성향, 최근 활동 조사는 물론 언론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광고주, 산하 단체장까지 포함시키라는 지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동관 당시 인수위 대변인은 “인수위에 파견된 한 문화부 공무원의 돌출행동”이라고 해명했으나 한국기자협회를 비롯한 언론단체들은 언론자유를 유린하는 행위라며 강력히 경고했다.
이 사건은 현 정부 언론 사찰의 예고편으로 기록될 법하다. 이후 정부의 언론 사찰 의혹은 양파를 까듯 실체를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6개월 후 국무총리실에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설치됐다. 촛불시위와 광우병 파동이 한 바탕 정국을 휩쓸고 지나갈 즈음이었다. 총리실 관계자들조차도 실체를 모를 정도로 무소불위의 비선조직으로 움직였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조직적으로 민간인을 사찰한 행적은 경향, 서울신문 등의 언론보도로 2010년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YTN, MBC 관계자들의 이름과 동향이 빼곡하게 적힌 윤리관실 원충연 사무관의 수첩 내용도 폭로됐다.
한발 더 나아가 최근 KBS 새노조 ‘리셋 KBS 뉴스9’의 보도로 공개된 윤리관실의 사찰 문건은 정부가 언론사 사장 인사에까지 깊숙이 개입한 정황을 드러냈다. 2009년 9월3일 작성된 ‘YTN 최근 동향 및 경영진 인사 관련 보고’의 ‘조치 건의’에는 ‘새 대표(배석규 당시 YTN 사장 직무대행)가 회사를 조기 안정시킬 수 있도록 직무대행 체제를 종식시키고 사장으로 임명하여 힘을 실어 줄 필요’라고 나와 있다. ‘사건 진행 상황’ 대장에 제목만 나와 있는 ‘KBS, MBC, YTN 임원교체 방향’ 역시 어떠한 내용일지 미뤄 짐작이 가능한 대목이다. 정황으로만 제기되던 언론사 ‘낙하산 사장’의 실마리에 한층 접근한 셈이다.
그러나 이것은 언론 사찰 실체 규명의 서막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다. 이번 문건이 7팀까지 있는 지원관실 일개 팀 한 직원의 USB에서 나온 내용인 데다가 과거 정부의 잡다한 정보까지 뒤섞여 있는 것을 감안하면 사찰의 범위와 규모는 상식적으로도 짐작 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 민간인 사찰 건을 취재했던 한 기자는 “검찰에 제출된 자료와 지원관실 공무원들이 파기한 자료 외에도 남아 있는 문건들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며 “이것이 발견될 경우 언론을 비롯한 민간인 사찰 부분은 더 많은 부분이 드러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윤리관실 민간인 사찰 과정이 드러나기까지 언론의 역할이 컸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종익 KB한마음 대표 사찰 건을 단독보도했던 정환보 경향신문 기자는 “언론의 위기가 거론되는 마당에 아직 언론의 역할이 유효하다는 것을 이번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다”며 “권력 말기와 정권교체기에 접어든 현 시점은 더 조건이 좋다. 언론의 노력에 따라 더 많은 진실이 밝혀질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