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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일 '대장정 파업'부터 공권력 투입 맞선 연대파업까지

언론사 장기파업의 역사

장우성 기자  2012.03.21 14:4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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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0년 4월 30일 서기원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KBS노조의 농성장에 경찰력이 투입됐다. 이 사건은 노조의 전면 파업으로 이어졌다. (연합뉴스)  
 
MBC노조, KBS 새노조의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다. 연합뉴스 노조의 파업도 언제 해결이 될지 안갯속이다. 언론사 노조의 장기파업은 1988년 노조 설립 붐이 일어난 이래 CBS노조의 267일 파업을 비롯해 수차례 기록돼왔다. 2012년 언론사 연대파업을 맞아 장기파업의 과거 사례를 되돌아본다.


한국 언론사 최초의 합법적 파업은 1988년 부산일보 노조의 파업이었다. 최대 쟁점은 편집국장 추천제였다. 편집국 조합원의 투표로 선발된 3명의 후보 중 1명을 사장이 임명하자는 요구였다. 신문발행이 중단되는 등 5일간의 파업 끝에 노사는 편집국장 추천제를 명문화하기에 이른다. 이는 국내 언론사 중 처음으로 편집국장 선출에 구성원들이 권리를 행사하는 사례로 기록됐다. 이후 언론계는 편집국장 선출제도가 주요 이슈가 돼 서울신문 노조도 1989년 편집국장 임명동의제를 놓고 26일간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전조합원 단식투쟁 CBS 파업
국내 언론사 최장기 파업 사례로 꼽히는 CBS노조의 2000~2001년 267일 파업은 한 해 전에 이미 불씨를 키웠다. 당시 CBS노조는 재단이사회 개혁과 체불임금 지급 등을 요구하며 33일간 파업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이열범 노조위원장 등 21명의 쟁의대책위원들이 해고당하는 등 희생이 컸다. 여기에는 교계가 CBS를 전적으로 지배하는 태생적 구조에 대한 내부 구성원들의 비판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때까지 CBS 사장은 재단이사회가 일방적으로 임명한 목사들이 맡았다.

그러나 이듬해 1월 충격적인 사건이 터졌다. 한겨레에 권호경 당시 CBS 사장이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사에 보낸 ‘축 총선승리’ 화환 사진이 실린 것이다. 총선을 3개월 앞두고 언론사 사장으로서 정치적 독립성을 훼손하는 치욕적인 처신이라는 성토가 거세지면서 퇴진 운동이 전개됐다. 이후 노조가 사장의 판공비 남용 실태와 사측이 작성한 ‘노조대책문건’을 폭로하면서 사태는 일파만파로 번졌다. 노조 집행부 해고와 정리해고 단행 등 문건 내용도 충격적이었다. 이어 과거 권 사장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낸 이른바 ‘충성 서약 편지’까지 공개되면서 보직 부장들까지 나서 권 사장의 용퇴를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사측은 대량 징계로 맞섰고 노조는 90%가 넘는 찬성률로 10월5일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사측은 정부와 교계의 중재에도 민경중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김준옥 사무국장, 박종률 기자 등 3명을 해고하고 철저한 무노동 무임금을 적용하는 등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 그러나 조합원들의 대열 이탈은 소수에 그쳤으며 200여 명의 전 조합원 단식투쟁에 이르며 파업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런 끈질긴 투쟁 끝에 6월28일 재단이사회 개혁안을 담은 합의문이 조합원 총회의 추인을 받아 267일 파업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후 3연임을 노리던 권 사장은 결국 퇴진했으며 CBS는 이를 토대로 교계가 회사를 좌우해왔던 관행을 끊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81일간의 세계일보 파업
회사가 동원한 용역직원과 조합원들의 충돌로 유혈사태까지 빚었던 1998년 세계일보의 81일 파업도 기록적이다.

당시 이상회 사장은 ‘제2의 창간’이라는 기대 속에 취임한 김영호 편집국장을 취임 두 달 만에 경질하고 비판적 기자들을 비 편집국으로 대거 전보 발령했다. 이에 세계일보 직원들은 6년 동안 휴면상태에 놓였던 노조를 전격 재결성하기에 이른다. 사측이 노조위원장 등 주요 집행부 3명을 해고하면서 노조를 계속 인정하지 않자 노조는 해고자 복직 및 노조 인정 등을 요구하며 98년 4월8일부터 81일간 파업을 벌였다. 회사 측의 정리해고 강행에 이어 인쇄제작국 직원이 근무 중 쓰러져 뇌사상태에 빠지는 등 열악한 근로조건에 대한 항의도 거셌다.

그러나 계속되는 임금체불에 세계일보의 경영이 최악의 상태로 빠지자 노조는 투표를 통해 파업을 중단하고 노조위원장은 자진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공권력 투입 KBS·MBC 파업
MBC노조가 지난 20일로 파업 51일째에 들어가면서 기록경신을 눈앞에 뒀으나 이전까지 MBC의 최장기 파업은 1992년 52일 파업이다. 당시 MBC 사측이 PD수첩과 대하드라마를 일방적으로 불방시키는 등 단체협약 상 공정방송 조항을 사실상 무력화하고 단체협상마저 결렬되자 노조는 파업에 들어갔다.

파업 14일째에 지역MBC 노조가 연대파업에 돌입하고 시민사회의 관심이 높아지는 등 파고가 오르기 시작했다.

사측은 노조 간부 15명을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고소하면서 압박했으나 이것이 부메랑이 되고 말았다. 노조 집행부들이 출두를 거부하자 검찰과 경찰은 공권력을 투입해 고발된 조합원을 연행하고 보도국 기자 중심이었던 단식 농성장을 강제 진압했다. 이때 이완기 노조위원장과 손석희 대외협력위원 등 7명이 구속됐다.

공권력 투입은 큰 후폭풍을 불렀다. KBS노조와 CBS노조가 연대파업에 들어가는 등 사태가 확산되자 사측은 노조가 주장했던 공정방송협의회에서 보도국장을 비롯한 주요 보직 국장을 경질 가능하도록 하는 등의 강화 안을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공영방송 최초의 공권력 투입을 부른 KBS의 1990년 4월 파업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KBS노조가 ‘낙하산’ 서기원 사장의 취임을 반대하며 출근저지 투쟁을 벌이던 중 회사의 요청으로 경찰이 공권력을 투입해 조합원들을 강제 연행했다. 파업은 수배를 받은 안동수 노조위원장이 자진출두하면서 30일 만에 일단락됐으나 공영 방송사가 용기있게 나선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이었다는 의미를 남겼다.

국민일보의 편집권 쟁취 파업
지난 20일로 파업 89일째를 맞은 국민일보 노조의 2001년 45일 파업도 컸다. 당시 국민일보 노조는 일방적 구조조정과 편집권 침해 논란으로 퇴진한 조희준 전 회장의 계속되는 편집권·경영 간섭과 일방적 석간 전환 등을 반대하며 총파업을 벌였다. 45일에 걸친 파업 끝에 석간 전환 재검토, 조 전 회장의 개입 배제 등을 합의했다. 

성공한 장기파업의 공통점은 조합원들의 단결력이 높았다는 점이다. 노조위원장으로서 CBS의 9개월 파업을 이끌었던 민경중 CBS제주본부장은 “당시 CBS 조합원들은 ‘배고픈 건 참아도 CBS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열망과 자존심 하나로 싸웠다”며 “이것이 267일간 파업투쟁을 가능하게 한 힘”이라고 회고했다.

민 본부장은 “언론의 정치적 독립성이라는 비전을 위해 조합원 스스로 기득권을 버리고 자기 희생하겠다는 확신이 있다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