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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한겨레 김양중 기자, MBC 신재원 전 기자, 동아일보 이진한 기자, SBS 조동찬 의학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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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서 가장 놀라운 점은 뭔가요?” 신은 답한다.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잃어버리는 것, 그리고는 건강을 되찾기 위해 돈을 다 잃는 것이죠.”(시 ‘신(神)과의 인터뷰’)
2000년대 ‘웰빙’ 바람을 탄 건강에 대한 관심은 의학전문기자를 탄생시켰다. 수년간 들고 살던 메스를 내려놓고 마이크와 펜을 든 이들이 있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외쳤던 의사들은 왜 기자가 되었나.
기자, 매력적 이름에 발을 들이다발걸음을 옮긴 이유는 제각각이다. 2005년 MBC에 입사해 만5년 간 의학전문기자로 일한 신재원 전 기자는 서울대 의대에서 가정의학과 전문의를 취득한 뒤 기자에 입문했다. “의학 기사를 접하면서 가진 아쉬움이 크더라고요. 제가 진료를 하면서도 건강정보를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병원에서도 쓴 소리를 많이 하던 터라 후배가 MBC 원서를 들고 지원해보라고 하더군요.”
신 기자는 1분30초의 호흡에서 벗어나 5분짜리 심층취재 리포트를 하려고 노력했다. ‘질병모험 해부’ 시리즈는 그가 꼽은 기억에 남는 보도다. 당시 CI보험 (Critical illness insurance, 치명적 보험)이 의학적으로 성립하기 힘든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보험금을 지급하는 시스템의 함정을 지적했다. “의사가 아닌 일반인들이 알기는 힘든 부분이었죠.”
보건복지부를 출입하는 한겨레신문 김양중 기자는 보건·의료 정책통으로 불린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경상북도의 한 마을에서 공중보건의로 진료를 하던 그는 문득 깨달았다. “의료현장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것도 소중하지만, 미리 질병을 막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이야말로 의학의 가장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했죠.” 의대시절 학년신문을 만들었던 추억이 2002년 그를 기자로 이끌리라곤 그때는 몰랐다.
2008년 SBS에 입사한 조동찬 기자. 한양대 의대에서 신경외과 전문의를 취득한 조 기자는 의학전문기자의 2세대 격 기자다. “TV에 (신)재원이 형이 나오는데 ‘저거다’ 싶어서 아내를 졸랐어요. 전문의를 따고 펠로우(전임의)를 하던 30대 중반이라 주변의 우려가 컸죠. 어려운 시기 다 지나고 쟁취하는 시점이라…. 행복하기 위해 선택한 길이라 후회는 없어요.”
그들은 기자인 동시에 의사이다. 2010년 1월 아이티 지진 참사현장에서 취재와 진료를 동시에 해냈다. 조동찬, 신재원 기자와 동아일보 이진한 기자가 그랬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2001년 입사한 이진한 기자는 “아이티는 한국과 밤낮이 반대인 곳이라 아이티 현지에서 낮에는 의료봉사를 하고 밤에는 기사를 송고하며 하루를 꼬박 보내면서 의사와 기자의 삶을 살았다”고 회상했다.
조동찬 기자는 “의사로서 진료하는 과정이 곧 취재 과정과 맞닿아 있었다”며 “당시 급성스트레스증후군에 대해 보도할 수 있었던 건 환자들과 대화를 통해 그들의 사연을 가까이에서 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의료전문 브로커가 기사 청탁하기도” 의사와 기자의 경계선에서 있는 그들의 고충도 있다. 조 기자는 “입사하자마자 의료전문 브로커가 찾아와 기사를 청탁 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조 기자는 “바로 거절하기도 했고 아스피린 비판 보도를 하는 등 기사를 통해 가감 없이 지적을 가하곤 해서인지 그 이후엔 찾아온 적이 없지만 입사 후 6개월 동안은 제안이 무수히 들어왔다”고 말했다.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골프와 술자리 접대 유혹도 적지않다. 수억 원을 호가하는 광고를 통해 은밀하게 압박해오는 경우도 있다. “접대성 제안을 다 받아들이자면 365일을 가득 채울 정도”라고 귀띔할 정도다. 입원실 배정, 주치의 소개 등 사내 민원도 골칫거리다.
그럼에도 ‘기자’라는 이름이 매력적인 것은 수천만명의 환자와 직접 만난다는 점이다. 이진한 기자는 “기사 판단 기준은 항상 독자에게 있다. 독자 입장에서 좋은 정보가 된다면 팩트에 근거해 알린다”고 말했다. 김양중 기자는 “환자마다 특성이 달라 일반론적인 기사를 쓰는 게 어렵다”면서도 “의학에 대해 접근성이 높은 만큼 제대로 된 기사를 위해 늘 의심하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원성윤, 양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