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노조의 총파업과 기자들의 제작거부 결의에는 MBC가 현재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MBC노조는 “우리가 김재철 사장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공영방송으로서 MBC의 위상이 거듭 추락한 데 있다”고 밝혔다.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MBC 보도는 종종 불공정 시비에 시달렸지만 내부 구성원들을 움직일만한 동력은 부족했다. 그러나 지난해 10·26 서울시장 재보선, MB 내곡동 사저, 한·미 FTA 등 일련의 보도들을 거치며 시청자들은 MBC에 등을 돌렸고, 취재진은 현장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다.
취재 현장에서 MBC의 신뢰도 추락을 몸으로 경험한 기자들을 중심으로 참회와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는 곧 보도책임자들에 대한 사퇴 요구로 이어졌고, 기자들의 제작거부와 노조의 총파업 결의까지 이끌어냈다.
MBC 구성원들은 최근 한목소리로 위기를 부르짖고 있다. 노조가 지난 10~13일 조합원 5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95.2%가 MBC의 신뢰도가 현재 위기라고 응답했다. 노조는 “과거와 달리 인터넷과 SNS를 통해 충분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시청자들은 더 이상 MBC를 찾지 않는다”면서 “‘나꼼수’와 같은 대안 매체를 시대적 대세로 키워준 것은 왜곡된 MBC 보도, 할 말을 못하는 MBC 그 자체”라고 자조했다.
보도부문의 위기의식도 다르지 않다. 보도부문의 경우 MBC 위기의 내용에 대해 가장 많은 응답자(70.8%)가 사회갈등 현안 외면과 아이템 연성화를 꼽았다. 친정부적인 보도태도로 뉴스 신뢰도가 약화됐다는 응답도 66.9%를 기록했다. 예민한 사회적 현안에 대해 뉴스 보도를 아예 안하거나 하더라도 친정부적인 보도를 하는 현상을 지적한 것이다. 이는 “MBC 뉴스의 지난 1년은 침묵과 왜곡, 편파로 점철됐다”는 기자들의 고백과 맥락을 같이 한다.
위기의 원인으로는 ‘보도부문 책임자들의 리더십 부재’, ‘편집회의와 데스크 기능 부실’이 지적됐다. 기자들은 가장 시급한 과제로 ‘전면적인 수뇌부 쇄신 인사’를 촉구했다. 보도 방향에 대해 구성원들이 공유할 수 있는 원칙을 마련하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로 지적됐다. 기자들은 이 같은 문제제기를 바탕으로 보도책임자들의 사퇴를 요구하며 제작거부를 결의한 상태다. 노조는 김재철 사장에게 총체적 위기의 책임을 물어 퇴진을 촉구하고 나섰다.
MBC의 투쟁에 대한 여론은 전과 다르게 그리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만시지탄’이라는 지적도, ‘정권 교체 시기를 노린 정치적 투쟁’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그러나 기자들과 노조의 이번 결의가 ‘반짝’ 투쟁에 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평기자들을 중심으로 한 쇄신 인사 요구와 제작거부 결의에 부장급 기자들이 동조하고 나섰고, 이 같은 기류는 다른 부문까지 확산되고 있다. 노조의 김재철 사장 퇴진 투쟁에 대해서도 조합원들의 87.7%가 찬성 의사를 나타내 총파업 가능성을 밝혔다.
MBC 시사교양국 평PD협의회는 16일 성명을 통해 기자들의 결의에 동감을 표시하며 김재철 사장을 향해 “보도부문과 제작부문의 공정성과 제작 자율성을 침해한 인사들에 대한 단호한 인사 조치와 그간 행적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이들은 “권력을 감시하고 소외된 자의 편에서 저널리즘을 구현한다는 우리가 스스로 만든 방송 강령을 휴지처럼 만들어버린 것이 지난 1년이었다”면서 “시청자들이 기억하고 있는 지금 MBC의 행태는 언젠가 우리에게 칼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