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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렙법 치열한 장외공방 속내는?

방송사·노사·단체별 주장 제각각…'미디어렙의 혼란'

김고은 기자  2012.01.11 14: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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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바코의 방송광고 독점판매가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은 지 3년여. 입법 공백 상태를 메워줄 것으로 기대했던 미디어렙법 제정이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원칙론과 현실론의 대립 속에 힘겹게 탄생한 미디어렙 법안은 논란 끝에 상임위를 통과하는 데 성공했지만,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KBS 수신료 인상’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여기에 미디어렙과 관련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앞세운 방송사업자들의 로비가 뒤엉키면서 미디어렙법 처리는 한 치 앞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언론운동 진영 분열
지난 5일 국회 문방위 전체회의를 통과한 미디어렙 법안은 ‘1공영 다민영’ 체제를 기본으로 한다. MBC는 KBS, EBS와 함께 공영 미디어렙으로 묶고 SBS와 종합편성채널은 다민영 체제로 풀어준 것이다. 민영 미디어렙의 경우 방송사 1인 최대 지분을 40%까지 허용해 사실상 SBS와 종편은 자사 렙을 소유할 수 있게 됐다. 종편의 미디어렙 위탁은 승인 시점으로부터 3년 유예됐다. 이에 따르면 종편 4개사는 승인 시점에 따라 2014년 3~5월까지 직접 영업이 가능해진다. 지주회사 출자가 금지돼 SBS미디어홀딩스의 ‘미디어크리에이트’는 6개월 이내의 시한부 활동만 가능해지며, 이후 SBS 출자 렙으로 전환해야 한다. 또 이종매체(신문-방송) 간의 교차판매는 금지되고, 동종매체(지상파-케이블PP) 간의 교차판매는 허용됐다.

한나라당의 입장을 대폭 수용한 법안 내용을 두고 언론·시민단체들은 ‘원칙론’과 ‘현실론’으로 갈라졌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원칙을 접고 타협해서는 안 된다”며 “최악의 경우 총선 이후를 도모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지역방송협의회와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연내(2011년) 입법이 최우선”이라며 “차선이라도 선택해서 최악을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팽팽하던 논란에 불을 지핀 것은 MBC의 자사 렙 설립 선언이었다. 이전까지 ‘1공영 1민영’ 입장을 견지하던 언론노조는 MBC의 자사 렙 설립 선언 직후 “미디어렙법의 입법 지연이 가져올 총체적인 파국이 현실화되고 있다”며 서둘러 연내 입법을 촉구했다. 이에 MBC노조가 “한 회원사의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한다”고 반발하며 이강택 위원장의 사퇴까지 촉구하면서 언론노조 내부가 분열 양상으로 치닫기도 했다.

결국 미디어렙 법안을 둘러싼 논란은 언론노조-언론연대-지역방송 및 종교방송을 중심으로 한 축과 민언련-MBC노조를 중심으로 한 또 다른 축으로 갈라지면서 전례 없는 대립 양상을 보였다. 미디어렙 법안이 국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매듭이 지어지든 언론·시민사회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게 될 것이란 분석이다.

KBS 수신료·MBC 재논의 주장
미디어렙법을 둘러싸고 장외공방이 한창이던 와중에 국회 안에선 자사 이익을 앞세운 방송사업자들의 치열한 로비전이 펼쳐졌다. KBS는 수신료 인상안 처리를, MBC는 미디어렙법 재논의를, SBS는 지주회사 출자 허용을 요구하며 여야 의원들을 설득했다. KBS와 MBC 기자들이 의원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이는 모습은 연말연시 국회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급기야 KBS와 MBC는 지난 6일 민주통합당 대표 경선 토론회 중계를 취소하는 초강수를 두면서 미디어렙법과 수신료 인상안 연계 처리를 압박했다.

KBS로선 이번 임시 국회에서 수신료 인상안을 처리하지 않으면 김인규 사장의 남은 임기 1년 동안 사실상 수신료 인상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다. MBC는 MBC만 공영 렙에 묶고 SBS와 종편에 자사 렙을 허용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MBC 한 고위 관계자는 “‘1공영 1민영’으로 종편과 SBS를 민영 미디어렙에 묶는다면 우리가 공영 렙에 포함되는 데 이의가 없다. 그런데 다 풀고 MBC만 공영으로 가라면 죽어도 못한다”면서 “1공1민으로 하든지, MBC도 SBS나 종편과 똑같은 법적 지위를 부여하든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MBC노조는 자사 렙 설립은 반대하지만 ‘1공영 다민영’ 체제는 역시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미디어홀딩스의 미디어렙 설립을 반대해 온 SBS노조는 ‘지주회사 출자 금지’에 한숨 돌리는 분위기다. 하지만 법 시행 후 6개월까지는 ‘미디어크리에이트’의 영업 활동이 가능해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종교방송과 지역방송이다. 이번 주부터 미디어크리에이트가 코바코와 별도로 독자 영업에 나서면서 그동안 SBS와 연계 판매를 해온 불교방송, 원음방송, 지역 민방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박원식 종교방송협의회 간사(불교방송)는 “미디어크리에이트가 광고 물량을 연계 판매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상태”라며 “이달 들어 SBS와 불교방송의 결합 판매 실적이 전혀 없다”고 전했다. 종교방송사와 지역 민방들은 미디어크리에이트와 연계 판매를 위한 협의를 진행 중이지만 입법 공백 상태가 계속되면서 실무상의 진척은 전혀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노조 “재개정 투쟁할 것”
결국 입법 공백의 장기화는 종편 외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선 입법 후 개정’이냐, ‘총선 후 제대로 입법’이냐 하는 논란 속에서도 중소지역방송에 대한 지원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언론노조 한 관계자는 “현행 미디어렙 법안은 결코 만족스럽지 못하고 모두에게 아쉬운 게 사실”이라면서 “안타깝지만 현실적으로 참담한 상황을 인정하고 일단 기본적인 얼개를 만들어놓은 뒤 개정 투쟁을 강하게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