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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부산경남 총선 이겨야…출마 여부 고민 중"

[대한민국리더 미디어톡 ②정치 부문]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장우성 원성윤 기자  2011.11.30 15:4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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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집권은 MB의 연장, 현혹되지 말아야”
“한미FTA, 참여정부와 MB정부는 달라”
“안철수 원장, 정권 교체 기여할 역사적 책무있다”

[미디어 부문 인터뷰에서 이어집니다]

미래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정치인’ 문재인에 대한 질문이 필요했다. 마침 인터뷰 전날 한나라당의 한미FTA 비준안 강행처리로 나라가 떠들썩했다.

- 어제 비준안이 통과된 한미FTA에서 참여정부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우선 참여정부에 몸담았던 한 사람으로서 FTA 때문에 국론이 분열되고 혼란을 빚은 점에 대해 송구스럽습니다. 참여정부 때 FTA를 추진한 것은 그 당시 세계적인 신자유적인 조류가 배경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한 겁니다. 한미관계 이외에 미국시장을 놓고 다른 나라와 경쟁관계에서 우위에 서는 점을 봐야합니다. 우리나라 자동차가 무관세가 되면 미국 자동차업자와 경쟁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세계 최대 시장 미국을 놓고 일본 등과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하는 겁니다. 우리가 FTA를 하지 않으면 앉아 있다가 밀려버립니다. 우리와 멕시코와 관계를 보세요. 멕시코와 FTA는 일본이 먼저 했습니다. 우리나라 타이어가 멕시코에 먼저 수출되고 있었지만 FTA 이후 일본이 수출하자 우리 타이어가 반송돼 왔습니다. 시장점유율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보다 먼저 FTA를 하는 게 필요했어요. 협상 과정에도 최선을 다했으니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ISD(투자자 국가소송제도)도 참여정부 때 집중 검토했습니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은 문제소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통상교섭본부에서는 다른 나라도 다 도입한 국제표준제도라고 했죠. 대통령은 ISD를 점검할 민간합동 TF를 구성했어요. 그 결과 보건, 안전, 부동산 가격 안정화를 위한 정책 등을 간접보상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역외조항을 뒀습니다. 다른 FTA에는 이 조항이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최소한의 위험성은 완화시킨 겁니다.
그런데 이 정부 들어서 자동차 부문에서 75%를 되돌려 줘버렸어요. 그러면 ISD를 양보한 이유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ISD를 재협상하자는 민주당 주장이 타당성이 있는 겁니다. FTA가 전체적으로는 국익에 도움이 돼도 피해 입는 분야가 많습니다. 수출기업들은 이익을 보지만 내수기업들은 어려워집니다. 취약계층도 힘들어지죠. 그래서 피해보전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 전제하에 FTA를 하는 겁니다. 한·칠레 FTA는 119조원 지원 등 농업 피해보전대책을 10년간 짰습니다. 복지도 강화돼야죠. 그래서 ‘비전2030’이라는 복지대책을 세웠습니다. 이렇게 종합해 FTA를 긍정적으로 본 겁니다. 현 정부처럼 피해보전대책과 취약계층 지원은 없고 달랑 FTA만 한다는 것은 참여정부의 구상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문 이사장은 “FTA는 좀 길게 말하도 되나요”라며 오랜 시간 말을 이어갔다. 이야기를 다 하고 나서도 부족해하는 듯 했다. 또한 FTA를 비롯해 참여정부 시절에 대한 성찰은 계속될 거라고 덧붙였다.

- 야권통합이 관심사죠. 안철수 원장이 민주개혁세력을 대표할 만한 인물이냐에 대한 궁금증도 있습니다. 안 원장의 본선 진출 여부에 따라 문 이사장의 거취도 좌우될 텐데요.
“그 분이 받고 있는 높은 지지를 현실로 인정해야합니다. 그것도 허황된 탤런트적인 지지가 아닙니다. 평생 동안 이룬 업적과 사회에 대한 기여 때문이죠. 특히 젊은 세대에 대한 소통과 공감 능력에서 얻는 것이라 다릅니다. 이념적 정체성이 진보진영과 같을 지는 우리 입장에서는 중요하지만 국민들은 그렇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안 원장이 보수진보 사이 중간층 무당파를 흡수하고 있는 것을 봐야합니다. 기존 보수진보에 염증을 내고 뛰어넘기를 바라는 국민들을 대변하면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전체 국민들 입장에서는 그 세력을 다 합쳐야합니다. 통합 세력 속에서 누가 가장 지지를 받는지에 따라 선택돼야 합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가 대단한 강점을 보이고 있다고 받아들이는 게 맞습니다. 진보개혁세력과 안철수를 지지하는 중간층이 합쳐야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수구적인 이데올로기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그가 현실정치에 나설 지는 개인으로서 대단히 실존적인 결정이라 어떻게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으면 본인이 받고 있는 지지는 소중한 것이니, 그것이 정권교체에 도움이 되게끔 할 역사적 책무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 박근혜 대표는 여권 선두주자입니다. 야권통합을 하는 것이나 정권교체를 꾀하는 것은 결국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일 텐데요.
“첫째, 그분이 어떤 정치세력을 대표하는지 봐야합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상징하는 세력은 한나라당입니다. 대단히 극우적이고 수구적이죠. 이명박 정부가 역사를 거꾸로 돌렸는데, 똑같은 세력입니다. 박근혜가 된다면 정권교체가 안 되는 겁니다. 이명박 정권의 연장입니다. 박 대표가 개인적 품성은 어떻다 하더라도 뒷받침하는 세력 때문에 안 되는 겁니다. 이에 현혹돼서는 안 됩니다. 둘째, 박 대표가 유신시대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봐야합니다. 굉장히 퇴행적입니다. 지도자가 되려면 우리 역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부합되는 역사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유신시대의 인권유린, 인혁당 사건처럼 국가권력이 부당하게 국민의 생명을 빼앗았던 역사조차 침묵합니다. 비록 산업화의 공적이 있었더라도 반성과 성찰이 필요한데 그런 것이 없어요. 셋째, 복지에 대한 능력입니다. 보통 사람들의 애환, 고통을 알 수 없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머리로는 복지를 말할지는 몰라도 실제로 얼마나 서민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알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시계를 봤다. 귀경 차 시간을 좀더 넉넉히 잡을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이사장은 평생 동지였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 못하게 됐다.” 마지막으로 조심스레 노 대통령 이야기를 꺼냈다. 깊은 슬픔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답변을 하는 동안 그는 잠시 시선을 돌렸다. 인터뷰 내내 변함없이 꿋꿋했던 그의 눈빛이 가늘게 울렁였다.

-노 대통령과 성품이나 기질은 정반대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30여 년간 인연을 이을 수 있었던 이유가 있습니까. 또 노 대통령은 갖지 못했던 자신의 장점이 있다면요.
“성격은 달랐지만 세상을 보는 시각과 관점은 매우 비슷했어요. ‘사람사는 세상’을 위해 개인적 희생을 감수하는 것까지는 같았죠. 하지만 한계를 두지 않는 열정에서 그분은 탁월했습니다. 그런 열정 때문에 때로는 실수도 했죠. 그러나 그게 감동을 줬고 그분을 대통령으로 만든 원동력이 됐습니다. 전 그보다는 훨씬 신중하고 차분한 편인데 별 감동은 못줍니다. 실수가 적은 반면 감동은 없는 거죠. 별로 장점이라고 할 수는 없네요.(웃음)

-지금도 종종 노 대통령을 생각하십니까.
“이명박 정부 들어 노 대통령이 수사 받을 때만 해도 절망적인 상황처럼 보였어요. 진보개혁세력이 숨도 못 쉴 것 같았죠. 오래갈 듯 했고요. 그런데 훨씬 빨리 국민들로부터 재평가 받게 됐어요. 정치현실에서도 다시 지방선거, 재보선에서 우리가 대거 진출했습니다. 이제는 서울시장 선거처럼 우리가 힘을 모으고 변화한다면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겠다는 희망까지도 갖게 됐습니다. 결국 그 바탕은 노 대통령이 목숨을 던진 데서 온 것입니다. 소중한 그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쨌든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게 책임을 다하는 거겠죠.”

-질문을 자주 받으셨을 텐데,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실 겁니까.
“잘하면 야권통합이 결실을 볼 것 같아요. 실행 단계에 들어섰는데 아직 민주당이 정리가 안됐죠. 그래서 일단 야권통합에 매진해야 합니다. 대통합 수권정당이 태어난다면 당장 내년 총선에서 이겨야합니다. 특히 부산경남 지역에서 진력을 해야죠. 어떤 식으로 하는 게 좋을지는 고민입니다. 그 뒤의 문제는 그 때 생각할 겁니다.”

-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기자협회 회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정치권력과 자본의 억압을 뚫고 진실을 전하고 언론자유를 지키는 것이 기자들의 본분입니다. 그 맛에 기자하는 거 아니겠어요. 안 그러면 그냥 봉급 받는 직장인이죠. 적어도 기자를 처음 시작 할 때 마음가짐은 그랬을 겁니다. 그런 식의 기자정신이 정말로 필요하고 중요한 시기가 됐습니다. 내년은 새로운 역사의 시작입니다. 새로운 정치를 여느냐 열지 못하는 기로입니다. 기자정신이 더 절실한 시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점을 다시 생각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의 개인 집무실에 들어갔다. 사진을 더 찍었다. 그럴듯한 그림도 없고 별다른 치장이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입구에 유독 커다란 괘종시계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 시계에는 ‘1995. 노무현 증’이라고 새겨있었다. “사무실 열 때 노 대통령이 보내주신 거에요. 이(호철) 수석, 그때 대통령께서 뭘 하고 계셨죠?”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의 억양이 돌아왔다. “종로에서 낙선하고, 백수셨지요.” ‘바보’를 추억하며 모두가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