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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노동의 시대다

[컴퓨터를 켜며] 원성윤 기자

원성윤 기자  2011.11.16 15:5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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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성윤 기자  
 
지난주 전태일 열사의 분신 41주기 특집 ‘전태일 열사 분신 한 달 전 청계피복 참상 전한 기자 있었다’를 보도한 이후 경향신문 기자들로부터 많은 전화와 문자를 받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였다. 1970년 10월 7일 경향신문 7면 머리기사에는 이런 내용이 실렸다.

“높이가 1.6m밖에 안 돼 허리도 펼 수 없는 2평 남짓한 작업장, 먼지 가득한 그곳에 15명 정도씩 몰아넣고 종일 일을 시켜 폐결핵, 신경성 위장병까지 앓고 있는 어린 소녀들, 저임금에 휴일도 모른 채 일을 하고 있지만 건강검진은커녕 근로기준법에 담긴 노동자 기본 권리도 박탈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전태일이 뛸 듯이 기뻐하며 좋아했다는 이 기사를 쓴 기자를 기억하는 이는 좀처럼 없었다. 경향신문 50년사에도 이와 관련한 이야기는 실려 있지 않았다. 기명 기사가 아니라 쓴 기자를 찾기 어려운 탓이기도 했고 41년이라는 세월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기는 쉽지 않았다.

당시 근무했던 기자들은 대부분 사회부 동대문경찰서를 출입하던 한 기자를 지목했다. 그러나 전태일이 영등포 노동청을 출입했던 기자를 만나 피복공장의 실태보고서를 전달한 것과 정황상 맞지 않았다. 포기하려던 순간 새로운 증언이 나왔고 고(故) 기남도 기자가 보도한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

전태일은 외로웠다. 전태일은 동양방송(TBC) ‘시민의 프로’에서 평화시장 피복공장의 실태를 토로하려 했으나 설문 대상자 숫자가 적다는 이유로 방송출연을 거부당했다. 서울시 사회과, 노동청 등에 어느 누구도 노동자들의 피맺힌 외침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외로웠던 전태일을 뜀뛰게 만든 건 바로 기사였다.

41년 만에 빛을 보게 된 기 기자의 보도를 복원하며 우리 시대 외로운 수많은 전태일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크레인에 올라 농성을 벌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309일 동안 한시도 잊지 못한 이름이 김주익, 곽재규였다”며 한진중공업의 노동실태를 알리려 자살로 생을 마감한 동료들을 떠올렸다.

폭압적 진압의 후유증으로 구조조정 이후 벌써 18번째 자살 사망자를 낸 쌍용차 사태도 3년째 진행 중이다. 하루 21시간의 운전시간을 줄여달라는 삼화고속 버스 운전자들의 요구는 벌써 한 달을 넘어가고 있다.

“우리도 인간인가 보다. 우리 문제도 신문에 날 때가 있나 보다.” 41년 전 전태일과 삼동회 회원들이 기뻐했다는 그 외침이 아직 유효하다는 사실이 기자의 가슴을 무겁게 두드린다. 다시, 노동의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