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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2일 무죄 원심 확정 판결을 받고 대법정을 나서는 PD수첩 '광우병' 편의 제작진.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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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권들은 기존의 법과 제도를 적극 활용해 언론을 통제하는 정책을 폈다. 민·형사 소송이 주된 도구였다.
1960년부터 1986년까지는 고위공직자가 언론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례가 한 건도 없었지만, 1987년 이후엔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이는 군사정권은 보도가 나오기 전 사전 통제방식을 적극적으로 취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6·10 민주화 이후에는 법과 제도가 언론 압박 수단으로 등장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에는 둘째 아들 차남 현철씨가 한겨레신문을 상대로 자신의 비리혐의에 대해 명예훼손소송을 적극적으로 제기했다. 그러나 소송 도중 사건 증거가 드러나자 대부분 소송을 취하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선 때 자신의 가족문제나 과거행적에 대해 보도한 언론을 고소·고발했다. 당시 언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은 총 11건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인 2008년 노벨상 수상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일요서울에 대해 1억원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보수언론과 불편한 관계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는 소송이 대폭 증가했다. 청와대는 언론을 상대로 19차례의 민사소송과 3차례의 형사고소를 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재산 의혹을 다룬 보도와 관련해 조선, 중앙, 동아, 한국 등 4개 신문을 상대로 총 40억원의 소송을 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언론들이 대대적으로 명예훼손을 저질러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주장했으나 스스로 “대통령 지위로 인해 법원의 공정성이 의심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임기 말까지 소송절차 중지신청을 냈다. 이후에도 청와대는 업무관련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 판결이라도 난 것은 11건이었고,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한 것은 3건에 불과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MBC ‘PD수첩’ 광우병 편 보도 이후 촛불집회가 3개월 이상 지속되자 소송을 통해 프로그램을 압박했다. 정운천 전 농림식품부장관과 민동석 전 차관보는 명예훼손 혐의로 PD수첩 제작진을 민·형사상으로 고소했다.
법원은 1, 2, 3심 모두 정부 패소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지난 9월 “국민의 먹을거리와 정부정책에 대한 여론 형성 등을 위한 공적 영역을 대상으로 하는 보도를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 없다”며 제작진의 손을 들어줬다. “정권과 한·미 FTA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악의적 왜곡을 저질렀다”는 검찰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해 6월 시사주간지 ‘위클리경향’과의 인터뷰에서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폭로해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박 시장은 “국정원이 시민단체와 관계 맺은 기업 임원들까지 조사해 개별적으로 연락함으로써 시민단체들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국가 명의로 박 시장에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학계에서는 법원이 기사의 세부 내용이 다소 진실과 다른 부분이 있더라도 악의적인 공격이 아니면 언론의 감시와 비판 기능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해 언론사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PD수첩 사건을 비롯해 대법원 판례는 언론의 권력 감시와 정부정책의 비판기능에 비춰 정책과 관련된 고위공무원 명예훼손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일관되게 이야기하고 있다”며 “소송에서 실제로 이기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언론을 괴롭히기 위해 소송을 남발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