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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인터넷 괴담'과 김지하의 '비어'

한국기자협회 온라인칼럼 [김주언의 미디어거울]

김주언 전 한국기자협회장  2011.11.15 16: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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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주언 전 한국기자협회장  
 
“서울 장안에 얼마 전부터/이상야릇한 소리 하나가 자꾸만 들려와/그 소리만 들으면 사시같이 떨어대며/식은 땀을 줄줄 흘려 쌌는 사람들이 있으니/해괴헌 일이다/이는 대개 돈푼 깨나 있고 똥 깨나 뀌는 사람들이니/더욱 해괴한 일이다/쿵!/바로 저 소리다”

 시인 김지하가 1972년 가톨릭계 종합잡지 ‘창조’ 4월호에 발표한 장시 ‘비어(蜚語)’중 ‘소리내력’의 일부이다. ‘비어’는 ‘유언비어’의 뒷말로 ‘메뚜기떼처럼 떠돌아 다니는 말’을 의미한다. 김지하는 이 시를 발표한 직후 중앙정보부에 연행돼 반공법으로 구속 기소됐다. ‘국민에게 불신사조를 고취시켜 적을 이롭게 한 혐의’였다. ‘창조’도 곧바로 폐간됐다.


'비어' 40년 뒤 재등장한 '유언비어 단속'


이로부터 40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서 갑자기 ‘비어’를 떠올린 것은 검찰이 ‘한미 FTA 관련 허위사실 유포’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보수언론도 끼어들어 이른바 ‘인터넷 괴담’이 유포돼 사회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며 ‘인터넷 괴담’ 단속에 힘을 실었다. 검찰은 인터넷을 통한 허위사실 유포는 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명예훼손 혐의는 피할 수 없다며 처벌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박정희를 오마쥬한 이명박 대통령은 박정희처럼 ‘유언비어 단속’이라는 명목을 내걸고 국민의 입을 막으려 한다. 당시 박정희 정권의 나팔수를 자처했던 언론이 그러했듯이 이명박 정부의 보수언론들도 한몫 거들고 있다.


검찰은 한미 FTA 비준 반대 시위와 인터넷 허위사실 유포에 구속 수사를 하는 등 강경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SNS 등을 통한 허위사실 유포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 ‘원칙적 구속수사’ 방침을 발표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로 인터넷 허위사실 유포행위는 처벌할 수 없다는 반박여론이 일자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러면서도 허위사실 유포로 피해를 본 단체를 위해 명예훼손 소송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명예훼손죄 처벌도 쉽지 않을 뿐더러 명예훼손죄가 인정되더라도 구속 영장이 발부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명예훼손죄는 피해자의 요청 없이는 기소할 수 없고 민사소송의 경우에도 검사가 나설 수는 없다. 게다가 누구의 명예를 어떻게 훼손했고 사실여부를 누가 확인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인터넷 괴담에 대해 구속 수사하겠다고 나선 것은 국민을 겁박하여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위축시키겠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검찰은 인터넷을 통해 떠돌고 있는 몇 가지 사례를 “정당한 비판을 넘어선 근거없는 허위사실로 처벌의 대상이 된다”고 적시했다. ‘한미FTA 독소조항 12 완벽정리’ ‘맹장수술을 받으면 의료비가 900만원이 되고, 감기약은 10만원이 된다.’ ‘미국과 FTA를 체결했던 멕시코 대통령은 미국으로 도망갔다.’ 검찰의 눈에는 정부정책에 대한 반대의 표현이 ‘사회혼란을 야기하고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로 비치는 모양이다. 정부의 정책이나 발표에 반대하는 내용은 무조건 ‘허위사실’인 셈이다. 게다가 반대의견을 제시하면 ‘공익을 훼손하고 사회불안을 조장하는 구속수사 대상 범죄’가 된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면 무조건 ‘종북 좌파’로 몰아붙이는 보수단체를 꼭 닮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인터넷을 통한 허위사실 유포는 현행법상 처벌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12월 ‘미네르바’ 박대성씨가 낸 전기통신기본법 47조1항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위헌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허위사실 유포를 ‘허위통신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조항이었다. 1961년 제정된 이후 미네르바 사건에 처음 적용됐던 법률이 국민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무리하게 적용했던 검찰 때문에 폐기된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무리한 법 적용 때문에 범법자로 몰린 무고한 시민에게 사과 한마디 한 적이 없다. 검찰은 정권의 안위만을 위해 권한을 남용한 것이다. 이런 검찰이 또 다시 국민을 겁박하고 나선 것이다.


괴담도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스캔들’


한미FTA에 목숨을 걸고 있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그리고 보수언론은 SNS가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한미FTA 반대여론에 빨간 색을 칠하고 있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SNS는 한미FTA 처리와 관련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있다”며 “일부 거짓 선동 세력들에게 현혹돼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온건파에 대해 테러 수준의 협박을 가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며 SNS를 비난했다. 홍 대표는 아예 한국사회가 ‘미친 사회(insane society)’로 가고 있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은 여당의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FTA가 반미 선동의 도구가 되고 있다”며 “김일성의 길이냐 박정희의 길이냐” 선택하라며 색깔론을 들먹였다. 김 수석의 한 마디로 한미FTA 처리에 반대하는 세력은 졸지에 반미주의자, 친북주의자가 돼 버렸다. 여기에 더해 보수신문들도 색깔론에 가세했다. 동아일보의 사설 제목은 아예 ‘SNS ‘인민재판’ 민주주의 흔든다’였다.


정작 ‘괴담 유포자’는 선량한 누리꾼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와 청와대, 보수단체와 보수신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동안 이명박 정부와 청와대는 누가 보아도 터무니 없는 ‘괴담을 퍼뜨렸다. “G20 서울회의의 경제적 효과가 450조 원이다.” “한미FTA로 우리 경제영토가 세계에서 제일 넓어졌다.” “종편 만들면 일자리 2만 개 생긴다.” 하나도 검증되지 않은 일방적 발표내용들이다. 관제기구나 유령기관의 주먹구구식 예측들이다. 하나같이 확인된 내용은 없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강행하기 위해 내세운 국민 현혹용 ‘괴담’들이다. 그러나 이런 구호들은 아예 괴담으로 치부되지 않는다. 검찰이 허위사실 유포라며 처벌의지를 밝히지도 않는다.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스캔들’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유언비어’는 자유로운 의사소통의 통로가 막힌 ‘불통사회’에서 널리 퍼져나가기 마련이다. 박정희 정권이나 전두환 정권 등 과거 독재정권시절에는 이른바 ‘유비통신(유언비어통신)’이 언론 보다 더욱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보도지침으로 철저하게 언론자유가 봉쇄된 사회에서 정보의 흐름이 철저하게 통제됐기 때문이다. 동맥경화로 혈류가 막히면 뇌졸중으로 죽을 수밖에 없듯이 정보가 물처럼 흐르지 못하면 사회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국민은 정권의 나팔수를 자임했던 ‘제도언론’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유비통신에 귀를 쫑긋 세울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유비통신이 사실로 확인된 경우도 많았다.


40여년이 지난 오늘날 이른바 ‘인터넷 괴담’이 국민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가는 것도 이명박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미네르바 사건과 PD수첩 기소 등을 통해 정상적 언로를 틀어막은 이명박 정부가 ‘인터넷 괴담’의 영향력을 키워준 것이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와 보수언론이 괴담으로 치부하는 내용도 사실이거나 사실로 확인된 경우도 많다. 이명박 정부는 한미FTA와 영리병원 도입은 무관하다고 강변하지만, 미국에서는 한국에서의 영리병원 도입이 수월해졌다고 말하지 않는가. 미래에는 맹장수술 비용이 900만원이 될 지 아무도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 지난 9일 충북 충주시청 광장에서 열린 충주농민회의 한미FTA국회비준 저지 집회에서 농민들이 1t 벼 포대를 야적한 뒤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이명박 정부와 보수언론이 한미FTA가 국익을 위한 것이라고 아무리 강변하더라도 국민은 믿지 않는다. 한미FTA가 체결되면 서민의 등을 쳐서 ‘재벌과 권력자들’의 배를 불리는 사회양극화가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김지하가 ‘비어’에서 지적한 것처럼 ‘인터넷 괴담’은 ‘돈 푼깨나 있고 똥 깨나 뀌는 사람들’을 ‘사시같이 떨어대며 식은 땀을 줄줄 흘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파급력이 크고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찰과 자신에 우호적인 보수언론을 동원해 이를 막아 보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국민의 목소리를 막을 수는 없다. 막으려고 할수록 더욱 사실처럼 널리 퍼져나가는 것이 유비통신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김지하는 ‘비어’에서 “에잇 개 같은 세상!”이라는 유언비어를 내뱉은 ‘안도(安道)’를 온갖 죄목으로 처벌한다. 무슨 죄로? 오늘날의 검찰은 ‘허위사실 유포죄’를 들먹였으나 ‘비어’에는 죄목이 수십 가지에 달한다. ‘비어’에 나타난 선고내용을 들어보자.


“피고는 두 발로 땅을 딛고 아가리로 유언비어(流言蜚語)를 뱉어냄으로써/건방지게 무허가착족죄(無許可着足罪), 제가 뭔데 육신휴식죄(肉身休息罪), 싸가지 없이 심기안정죄(心氣安定罪), 가난뱅이 주제에 직립적인간본질찬탈획책죄(直立的人間本質簒奪劃策罪), 못난 놈이 사유시간소비죄(思惟時間消費罪), 가당찮게 나태죄(懶怠罪), 죽고 싶어 부도죄(不挑罪), 제가 무슨 뜬 구름이라고 현실방관죄(現實傍觀罪), 부끄럼없이 앙천죄(仰天罪), 불온하게 흉곽팽창죄(胸廓膨脹罪), 분수 모르고 특수층한정직립유한권침해죄(特殊層限定直立有閑權侵害罪), 무엄하게도 촌분무휴증산수출건설적국가정책기피죄(寸分無休增産輸出建設的國家政策忌避罪), 삼불오무칠비구물위반죄(三不五無七非九勿違反罪), 혹세무민적유언비어사출죄(惑世誣民的流言蜚語思出罪), 동발음의욕죄(同發音意慾罪), 동발음죄(同發音罪), 동살포의욕죄(同撒布意慾罪), 동살포죄(同撒布罪), 조국불경죄(祖國不敬罪), 모국어비하죄(母國語卑下罪), 축생적조국비유죄(畜生的祖國比喩罪), 세계만방조국축생가능성촉성죄(世界萬邦祖國畜生可能性促成罪), 투자환경교란죄(投資環境攪亂罪), 사회혼란조장급사회불안조성죄(社會混亂及社會不安造成罪), 민심선동죄(民心煽動罪), 비관죄(悲觀罪), 염세죄(厭世罪), 탈속죄(脫俗罪), 이적가능죄(利敵可能罪), 반체제의식죄(反體制意識罪), 반체제의식고취죄(反體制意識鼓吹罪), 이심전심적반국가단체조직가능죄(以心傳心的反國家團體組織可能罪), 반국가적내란음모획책적강력심정보유급동사상포지잠재적가능성확실명백가능죄(反國家的內亂陰謀劃策的强力心情保有及同思想抱持潛在的可能性確實明白可能罪), 그 위에 더욱이 특별사회조작법위반죄(特別社會操作法違反罪)를 범하였음에 유죄가 인정되므로 법에 따라 피고의 신체에서 다시는 유언비어를 생각도 발음도 못하도록 한 개의 머리와, 다시는 두 발로 땅을 딛고 불온불손하게 버텨 서지 못하도록 두 개의 다리와, 그리고 다시는 피고와 같은 불온한 종자(種子)가 번식되지 못하도록 한 개의 생식기와 두 쪽의 고환을 이 재판이 끝나는 즉시 절단해내고, 또한 반항할 위험이 다분히 있으므로 두 손에는 뒷수정, 몸통에는 물들인 가죽조끼, 목구멍에는 견고한 방성구(防聲具)를 단단하게 짱짱하게 튼튼하게 둘러씌워 향후 오백년간의 금고형에 처할 것을 준엄히 선언하노라”


안도는 감옥에 갇혀 몸을 벽에 부닥뜨린다. 이 때 나는 소리가 ‘쿵!’이다. 이 소리만 들으면 ‘사시같이 떨어대며 식은 땀을 줄줄 흘려 쌌는 사람들’이 ‘돈푼 깨나 있고 똥 깨나 뀌는 사람들’이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보수언론이 ‘인터넷 괴담’을 문제삼는 이유도 꼭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