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김주언 전 한국기자협회장 | ||
박원순 후보 ‘흠집내기’에 열중했던 방송과 보수신문의 끈질긴 공격을 스마트 폰으로 무장한 시민이 이를 막아내고 박원순 시장의 당선에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에 의해 장악된 지상파 방송과 보수 신문은 이번 선거과정에서 교묘한 편파보도로 일관했다. 반면 새롭게 각광받는 SNS로 무장한 시민은 이러한 독점적 언론권력에 대항해 발랄한 반란을 일으켰다.
그동안 정치담론을 주도해왔던 방송과 보수신문 등 주류 미디어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스마트 폰을 이용한 팟 캐스트 ‘나는 꼼수다’와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를 활용한 시민미디어가 위력을 발휘했다. 기득권 세력의 탐욕을 대변하며 여론시장을 독점했던 1%의 언론권력에 대항하여 시민의 분노와 행동을 그대로 표출하는 99%의 시민미디어가 여론시장을 ‘점령’한 것이다.
박원순 시장의 당선을 축하하기 위해 서울광장에 모여 들었던 서울시민은 주류 미디어에 대한 극심한 불만을 표출했다. 중앙무대 위에서 박시 장을 둘러싸고 있던 기자들은 “기자들은 내려와라! 기자들은 비켜라!”는 연호에 밀려났다. 연말께 출범을 앞두고 있는 조중동 종합편성 채널의 카메라들도 자리를 지킬 수 없었다. 이제 주류 미디어에 의해 왜곡되게 편집된 세상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항의이기도 했다.
방송.보수신문은 여당 편향, 정부는 SNS에 칼날
이명박 정부는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여론통제에 열을 올렸다. 이미 손아귀에 들어온 방송을 통해 정권의 치적을 홍보하도록 했다. 공영방송은 노골적으로 집권여당 후보에 편향적인 보도를 일삼았다. 여기에 보수신문들이 여당의 흑색선전과 네거티브 공세에 가세했다. 이들 주류 미디어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서울시장 나경원, 평양시장 박원순’이라는 한나라당의 흑색선전이 먹혀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규제기구를 총동원해 정권에 비판적인 SNS에 대해서는 칼날을 들이댔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SNS와 스마트 폰 애플리케이션 등을 심의하는 부서를 별도로 설치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팟 캐스트 ‘나는 꼼수다’를 겨냥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방통심의위는 개의치 않았다.
경찰은 SNS상의 선거법 위반을 단속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선거관리위원회는 트위터 이용자 7명을 선거법위반 혐의로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게다가 투표일 직전엔 유명인 인증샷 등을 제한하는 ‘선거일 투표 인증샷에 대한 10문 10답’을 발표해 누리꾼의 비난을 자처했다. 그래서 투표를 독려해야 하는 선관위가 오히려 투표를 방해한다며 누리꾼으로부터 ‘선거방해위원회’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이른바 ‘공영방송’들은 이명박 정부의 ‘방침’에 충실했다. KBS는 편성단계부터 ‘정권부역 방송’이라는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4대강 새 물결 맞이’ 행사를 생중계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혜안과 리더십에 경의을 표한다”는 영상메시지도 그대로 방송됐다. 이번 행사는 ‘4대강 죽이기’라는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의 고집으로 강행된 데다 완공되지 않은 시점에서 치러졌다. 따라서 누가 보아도 “10.26 재보궐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행위”에 다름 아니었다.
선거기간 중 불거진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등 정권에 불리한 이슈도 방송에서는 축소 보도되거나 청와대의 ‘앵무새’ 역할을 자임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MBC의 경우 내곡동 사저문제를 단신으로 보도하거나 아예 묵살하다가 이 대통령이 사저 이전을 백지화한다고 발표하자 톱으로 보도했다. MBC 뉴스만 보면 내곡동 사저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도저히 알 길이 없다. ‘언론이라 부르기 민망할 뿐 아니라 코미디보다도 못하다’는 자괴감이 잇달아 터져 나오는 이유이다.
![]() |
||
| ▲ 박원순 서울시장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동 희망캠프에서 열린 ‘박원순 선거캠프 해단식’에서 캠프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뉴시스) | ||
방송사들의 선거보도는 과거 독재정권시절을 방불케 할 만큼 ‘정권 편향’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한나라당의 박원순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는 적극 보도하는 반면, 나경원 후보에 대해 제기되는 의혹은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이율배반적 행태를 보였다. 최소한의 ‘기계적 중립’조차 지키지 못하는 함량 미달의 편파·부실보도라는 지적이 걸맞다.
선거초기에 박원순 후보의 양손 입양과 학력 및 경력, 전세 아파트 문제에 대해 연일 나경원 후보가 의혹을 제기하고 박 후보가 ‘네거티브하지 말자’고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공세와 수세’ 방식으로 뉴스를 이끌었다. 반면 나 후보에 제기된 의혹이나 문제점은 아예 보도하지 않거나 박 후보측 인터뷰 중 짧은 발언으로 처리하는데 그쳤다. MBC는 부친의 사학재단에 10년 넘게 이사로 재직 중인 나 후보의 이력은 메인뉴스에서 방송하지 않았다.
특히 그동안 독립적인 매체로 국민의 신뢰를 받았던 MBC의 ‘추락’에 대한 안팎의 충격은 매우 컸다. MBC 막내기자의 “눈 감고도 쓸 수 있을 것 같다”며 제시한 방법은 이를 잘 보여준다. ①나경원 후보 측이 제시한 의혹을 쓴다 ②박원순 후보 측의 수세적 반론을 쓴다 ③그 외의 것을 한두 문장 정도 덧붙인다. 이에 대해 노조는 “MBC가 한나라당의 선거도구로 전락했다”며 편파보도에 대한 책임을 물어 공방협에서 전영배 보도본부장과 문철호 보도국장, 김장겸 정치부장 등에 대해 문책(보직변경)을 요구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책보도도 일방으로 치우쳤다. KBS ‘뉴스9’는 10월 7일 나 후보의 ‘시민과의 대화’를 보도하면서 보육·주거·복지정책 등을 소개했지만, 박 후보의 관련 정책들은 전달하지 않았다. 같은 날 MBC의 ‘뉴스데스크’도 나 후보가 한강보 철거 문제 등 정책현안에 대해 박 후보와 대립각을 세웠다면서도 박 후보를 배제한 채 나 후보의 입장만 보도했다. 더구나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이후에는 정책보도가 실종됐고 의혹공방과 유세현장, 선거판세만을 전달했을 뿐이다.
보수신문의 선거보도 역시 편파∙왜곡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나라당의 박 후보 공격을 검증하거나 확인하지 않고 대문짝만하게 보도했다. 특히 나 후보 측의 시민단체에 대한 일방적 헐뜯기 공격은 그대로 활자화했다. 더구나 박 후보의 아름다운 재단을 ‘박원순 재단’으로 폄하하는 편집태도를 보였다. 선거과정 막판에 등장한 색깔론 공세는 뉴스보도는 물론, 칼럼에까지 그대로 투영됐다. 하다못해 유권자로부터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나꼼수’와 젊은이들의 소통도구인 SNS 활용마저 비난했다가 비판을 자초하기도 했다.
현업기자들의 가슴 찌르는 고백
결국엔 언론사 신문사와 방송사 노조위원장들이 국민에게 백배사죄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국언론노조 간부 100여명은 10월21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한복판에서 ‘서울시장 선거 편파보도를 막아내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강택 언론노조 위원장은 “방송과 보수신문의 편파보도는 집권여당 선거 전략에 맞춘 부실, 편파, 일방적 보도였다”며 “이것을 막지 못한 점 국민께 머리 숙여 사과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상황까지 벌어졌을까. 언론현장에 있는 현업 기자들의 고백이 가슴을 찌른다. 지난 10월20일 열린 한 토론회에서 KBS와 MBC의 노조간부들은 이 지경이 되기까지에는 “방송이 권력에 의해 장악됐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KBS 엄경철 기자는 “어떤 권력이 와도 언론이 지켜야 할 고유 가치에 대한 학습과 경험이 KBS엔 없다”며 “20년이상 된 KBS 유전자가 몸에 박힌 선배그룹은 작금의 보도들이 심각하게 잘못인지, 권력의 편을 들고 있는 것인지 등을 인식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KBS 간부들은 직책을 개인의 입신양명을 위해 거쳐야 할 자리로 보기 때문에 어떤 뉴스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철학이 없다”며 “무조건 정부의 편을 드는 게 아니라 ‘KBS 저널리즘’이라는 자기 확신과 합리화를 앞세워 ‘정부·국가=공익’이라는 프레임을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MBC 이용마 기자는 “부끄러울 뿐이다”고 자책했다. “야권 단일후보인 박원순 후보 측에서 제기하는 나경원 후보 관련 의혹에 대해 (나 후보 측의) 반론을 전하지 않는다. 반론이 나와 봤자 나 후보에게 불리하다는 판단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박 후보의 병역의혹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박 후보가 자기의지로 입양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자들도 알지만 여당에서 의혹을 제기하니까 기사로 쓰고 박 후보 측의 반론을 받아준 뒤, 기자로서 할 얘기 다했다며 뒤로 피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사전검증없이 받아쓰기를 반복한다는 뜻이다. 그는 특히 이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문제와 관련해 “지상파 3사의 보도는 단순 청와대 발표처럼 처리됐다”며 “보이지 않는 손이 분명 작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권력이 통제못한 시민의 정치적 표현 욕구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인터넷과 SNS 통제는 제대로 먹혀들어가지 않았다. 이번 선거과정에서 팟 캐스트라는 새로운 미디어를 들고 나온 ‘나꼼수’는 위력을 발휘했다. 페이스 북과 트위터 등 SNS의 위력도 재확인됐다. SNS를 활용한 투표 인증샷은 새로운 선거문화로 정착했다. SNS 통제를 통한 선관위의 ‘투표 방해’ 꼼수는 통하지 않았다. SNS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통을 위한 미디어일 뿐 아니라 새로운 놀이기구이기 때문이다. 권력이 나서 개인의 통신을 억제하지 못할뿐더러 수많은 시민의 정치적 표현 욕구를 억누를 수는 없다.
이제 투표는 SNS라는 ‘시민미디어’를 통해 하나의 놀이인 축제로 승화했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당시 수십만 명에 불과했던 트위터 사용자는 이제 400만명으로 늘어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더 큰 위력을 발휘했다. 투표 당일 새로운 선거문화로 자리잡은 ‘인증샷 놀이’는 평일 투표율을 48.6%로 끌어 올렸다. 트윗믹스는 투표 당일 ‘투표’를 언급했거나 인증샷을 올린 트위터 글을 분석한 결과 매시간 5000건 안팎의 투표 관련 트윗글이 올라왔고 대부분 투표참여를 독려하는 내용이었다고 밝혔다.
![]() |
||
| ▲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무소속 박원순 후보의 승리로 당선 확정된 지난달 27일 새벽 방송인 김제동씨가 서울광장을 찾아 박 후보의 지지자들과 함께 당선 축하 발언을 하고 있다.(뉴시스) | ||
선거과정에서도 누리꾼은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정치 놀이’를 즐겼다. 인증샷 놀이는 물론, 나경원 후보의 자화자찬 트윗글을 비꼰 ‘나경원 놀이’와 선관위의 특정후보를 지정하여 투표권유를 하면 선거법 위반이라는 지침을 풍자한 ‘10번 번호놀이’ 등이 그것이다. 예전 같으면 선거법을 앞세운 선관위 엄포만으로도 ‘입막음’ 효과를 거둘 수 있었지만 누리꾼은 이마저 풍자와 놀이로 승화시킨 것이다.
유명인의 투표권유 불허 방침에 방송인 김제동은 안경을 벗고 얼굴 일부를 가린 채 찍은 투표 인증샷을 남겨 선관위를 비꼬았다. 탤런트 이효리는 투표 인증샷에 애견사진을 올렸다. 트위터 계정 @koilung는 “선관위는 박주영을 긴급체포하라. 오늘 같은 날 10번 달고 1번 골키퍼를 재끼다니 너무 노골적 선거운동 아닌가?”라는 트윗을 날렸고 “10m 떨어진 투표소에 10분 동안 걸어가서 10분 동안 기다리다가 누굴 찍을까 10번 생각하다가” 투표하고 나왔다는 트윗글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예전엔 볼 수 없었던 이러한 풍경은 SNS를 통한 선거운동이 지속적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스마트폰용 위치기반 SNS인 ‘아임IN’은 투표를 한 뒤 ‘발도장’을 남긴 사용자들에게 ‘세상을 바꾸는 한 표’라는 사이버 배지를 달아주는 이벤트를 벌였다. 젊은 층 투표를 장려하려 게임요소를 가미한 이번 이벤트에 하루 4,400명이 넘는 사용자들이 동참했다. 지난해 11월 미국 중간선거 때 ‘포스퀘어’란 위치기반 SNS 업체가 투표 장소에서 체크인한 이용자에게 ‘I Voted(투표했습니다)’란 배지를 달아준 것을 본 딴 것이다. 앞으로 이러한 ‘미디어 놀이’는 더욱 진화할 것이다. 기존 주류 미디어와는 달리 명실공히 SNS는 새로운 ‘시민 미디어’로서 자리를 잡아갈 것이 분명하다.
국민 신뢰 회복 위한 새로운 다짐 필요
이처럼 주류 미디어의 영향력 쇠퇴와 시민 미디어의 부상은 저널리즘을 본업으로 삼고 있는 기자들에게 경각심을 안겨주고 있다. 저널리스트의 핵심인 ‘신뢰’가 무너진다면 이제 기자라는 직업조차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한다.
원로 언론인 김중배 선생은 최근 언론노조 길거리 강연에서 “현업 후배인 기자 또는 PD들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갖고 있다”며 “이 땅의 저널리스트들은 독립적인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정신을 갖고 있다고 믿고 싶다”고 말했다. 기자가 손가락질 받지 않고 국민의 대변인이라는 자긍심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SNS를 통해 새로운 미디어가 확장되고 있다. 인터넷에 연결된 인구가 현재 20억명이라고 한다. 새로운 시대다. 언론노조의 운동은 이같은 문명의 기류를 이해하고 차근차근 바꿔 나가는 발길이 되어야 한다. 어느 젊은이들이 말했다. ‘즐겁게 혁명하자.’ 스테판 에셀 형님처럼 분노하면서 어떻게 즐거울 수가 있을까. 운동이 곧 고난의 시간인데 즐겁게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문화의 결에 맞게 운동을 다져나가야 한다. 운동이 없으면 사회는 병약해질 수밖에 없다.” 원로 언론인의 당부이다.
<김주언 전 한국기자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