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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TN 해직기자들과 동료들이 7일 서울 남대문 YTN센터 후문 앞에서 열린 '해직자와 함께하는 출근길' 집회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장우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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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년.”
서울 남대문 YTN타워 후문 앞은 YTN 사태의 상징 같은 곳이다. 수많은 이들의 눈물과 열정이 켜켜이 쌓여있는 곳이다. 3년 전, 2008년 7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노조는 거의 매일 구본홍 전 사장 출근 저지와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을 이곳에서 이어갔다.
싸늘해진 아침 공기를 가르며 무심히 지나가는 행인들의 표정에서는 이 장소의 사연을 읽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낯익은 얼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노종면, 우장균, 조승호, 정유신 기자. 복직투쟁 3년을 넘긴 YTN 해직기자들.
전국언론노조 YTN지부가 7일 오전 8시 6명 기자 해직 3주기를 맞아 마련한 ‘해직자들과 함께 하는 출근길’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오랜만에 해직기자들이 정든 일터에 모였다.
맞이하러 나온 40여명의 YTN 동료들은 두팔 벌려 이들을 안았다. “오랜만이야.” 굳게 맞잡은 손과 손에 정이 쥐어 있었다.
모두 개인사정으로 오지 못한 권석재, 현덕수 기자의 빈자리에 아쉬워하면서도 오랜만에 흐뭇한 시간을 보냈다.
“밖에 있는 사람은 오히려 마음이 편합니다. 요즘 회사 돌아가는 소식을 들으니 안에 있는 분들이 더 고생인 거 같아요. 그래서 제가 오늘은 여러분을 응원하러 왔습니다.”(조승호 기자)
조 기자는 “나는 MB정부의 황태자”라고 입을 뗐다. 사람들의 표정에 알듯 모를 듯한 미소가 잠시 흘렀다.
“제 고향은 포항이고 고등학교는 대구에서 나왔습니다. 대구에는 1960년 2.28대구학생의거라는 사건이 있습니다. 당시 자유당 정권이 학생들이 야당 유세에 못나가게 일요일에 등교를 시켰다가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죠. 비슷하게 지금 회사에서 사원총회를 막고 있다고 하는데 이건 YTN 역사에 없던 일입니다.”
3년이 지났지만 나아지지 않은 YTN의 현실에 해직자들의 마음 한구석은 무거운 듯 했다. 복직이 늦어지면서 회사 정상화 또한 지체되고 있다는 데 대한 책임감이었다. 그래서 복직에 대한 의지는 한층 뜨거웠다.
“MB정권이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자부했지만 사실은 언론탄압에 완벽을 기하려 한 정권이죠. 이 정권도 종착역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사옥 안에서 여러분과 같이 지낼 날을 기대하겠습니다.” (우장균 기자)
2009년 12월23일 노조위원장 사퇴 의사를 밝혔던 노조 집회 이후 오랜만에 앞에 섰다는 노종면 전 노조위원장도 힘주어 말했다.
“종편으로 많은 동료들이 옮기고 있습니다. 해직자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어떤 이유로든 빨리 복귀하지 못해 회사에 일할 분위기를 못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6명 반드시 복직해 YTN을 최고 언론사로 일으켜 세우겠습니다.”
YTN의 자랑은 개국 초기 난국과 IMF 위기를 이겨낸 애사심이라고들 한다. 그리고 눈물 흘리는 고난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순수함이라고 한다.
낙하산 반대 투쟁 당시 노조의 살림꾼이었던 정유신 기자는 “김용수 전 노조 수석부위원장 형수님이 임신 4개월이라는 ‘굿뉴스’가 있다”며 박수를 불렀다. “뜻 깊은 자리라 새삼 정장을 갖춰 입으려 했더니 되레 순돌이 아빠가 됐다”는 김종욱 노조위원장의 유머도 구호소리 만큼 우렁찬 웃음바다를 만들었다.
야속하게 예정된 시간이 다가왔다. 집회를 끝낸 해직기자들과 동료들은 기념촬영을 했다. “뭐 하나 선창하죠.” “그래, YTN 노조 파이팅!”
해직기자와 동료들은 손을 잡고 함께 꿈꾸던 출근을 했다. 그들이 갈 수 있는 곳은 노조 사무실 뿐이라는 매정한 현실 또한 남아있었다. 정들었던 19층 보도국에 다시 들어서는 날, 그때 이들은 다시 기념촬영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