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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조심 협박에 "물러나면 죽는 것과 같아"

제작방해 사태 당시 신동아 출판국장 장행훈씨

김성후 기자  2011.08.18 09:5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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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9월20일 안기부가 신동아 10월호 발행을 중단시키기 위해 인쇄소를 점거한 당시 동아일보 출판국장을 지낸 장행훈 언론광장 대표는 기자와 인터뷰 자리에 누런 대봉투 2개를 가져왔다. 대봉투를 열었더니 오래된 종이냄새와 함께 당시 그가 시간대별로 정리한 메모지, 각종 성명서, 기사 스크랩이 가득했다. 누렇게 빛이 바랜 종이들은 24년 전 사건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었다. 인터뷰는 지난 8일 기자협회 사무실에서 했다.


-이후락씨 인터뷰 기사는 어떻게 싣게 됐나요.
“군사정권에 대한 비판을 박정희 정권의 비화를 다루는 것으로 돌파구를 찾던 때였죠. 매달 화젯거리를 찾는 것이 고민이었어요. 신동아 9월호 원고로 들어온 김대중씨 글을 보니 김씨가 자신의 납치사건에 대해 이씨에게 사건의 전모를 밝히라는 대목이 있더군요. 이씨의 입을 열게 하면 좋겠다 싶었어요. 이씨와 친분 있는 강성재 기자에게 접촉하도록 했어요. 얼마 후 안되겠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종각 기자가 인터뷰를 성사시켰어요.”

-처음부터 게재가 쉽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인터뷰 성사로 흥분돼 있는데, 이후락씨 쪽에서 안되겠다고 하더군요. 그와 친분 있는 국회의원을 통해 ‘안기부에서 곤란해 한다. 나중에 큰 거 줄 테니 이번엔 취소하자’고 했어요. 무조건 반대했죠. 문공부에서 전화오고, 안기부는 수차례 게재 중단을 요청하다가 내가 듣지 않자 인쇄 중단을 운운하더군요.”

-안기부에서 협박이 있었나요.
“안기부 국장급 간부가 사태 와중에 한번 찾아왔더군요. 고등학교 후배인 그 간부가 그러대요. ‘선배님, 몸조심 하셔야죠.’ 점잖은 협박이었죠.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야, 내가 여기서 물러나면 죽는 것과 똑같아. 나는 후퇴할 길이 없어.’ 그렇게 말하고 보냈어요.”

-7박8일간 철야농성하면서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각계 인사들과 독자들의 격려가 이어졌어요. 시민단체 원로들이 농성장을 찾아와 고생한다고 손을 잡아줬어요. 외신기자들의 취재 경쟁도 치열했죠. 김영삼 민주당 총재, 김대중 민주당 고문이 차례로 방문한 것도 기억납니다.”

-기자들의 끈질긴 저항과 전국민적인 항의에 정부가 항복한 것이죠.
“신동아의 승리였죠. 하지만 형식적인 승리였어요. ‘김대중 납치 이후락이 지시했다’는 직설적 내용이 빠졌어요. 아쉬운 대목이죠. 그러나 권력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 신동아를 발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죠. 특히 동아일보가 신동아 사태를 지면에 실었던 것도 큰 사건이었어요. 창피한 이야기지만 당시는 신문사가 권력에 당해도 그 사실을 자사 지면에 못 썼어요.”

당시 이후락씨를 인터뷰했던 이종각 기자는 동아일보 사보 ‘동우’(1987년 10월호)에 기고한 ‘이후락 증언·취재후기’에서 “이후락씨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내가 했다’는 말은 기사화하지 않은 채 간접적으로 시인하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여타 부분은 전부 이후락씨의 말을 그대로 살리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윗분들의 판단은 그렇지 않았다. 원문 일부가 수정돼 인쇄 공장으로 넘어갔다”고 밝혔다.

-요즘 언론계에 대해 한말씀 하신다면.
“우리나라 언론은 크게 3가지 수치가 있어요. 첫째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후반 일제에 부역한 점이고, 둘째는 박정희·전두환 등 군사정권에 협력한 것이죠. 어찌 해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변명합니다. 이해는 가지만 완전한 변명은 안돼요. 지금은 어떻습니까. 누가 잡아가는 것도 아니고 기사를 못 내게 하지도 않는데 스스로 권력과 자본의 편에 섭니다. 3가지 수치 중 가장 최악이죠.”

※1987년 8월 말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과 인터뷰했던 동아일보 이종각 기자는 정치부 차장, 심의팀장 등을 지내다가 2001년 일본으로 가서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사회연구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주오대학 겸임강사로 일하면서 일본 신문과 잡지 등에 한국 및 한·일관계에 대한 칼럼을 쓰고 있다.

※오효진 기자는 조선일보 사회부장, SBS 보도국장 등으로 활동하다가 정치인으로 변신해 1996년과 2000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며 1998년 국민의 정부 초대 정부 대변인겸 국무총리 공보실장, 2002년에는 충북 청원군수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