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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보도 시비·노사관계 파국…낙하산 사장을 막아라

민주주의·제도·문화 '삼위일체' 필요

장우성 기자  2011.08.18 09: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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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년 11월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본관 주차장 앞에서 KBS노조 조합원들에 의해 김인규 사장이 출근을 저지당하고 있다. (뉴시스)  
 
어느 정권 때나 언론사 ‘낙하산 사장’ 논란은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논란의 강도는 훨씬 증폭됐다는 게 언론계의 평가다. ‘낙하산이 투하’된 대부분 언론사는 공정보도 시비가 끊이지 않거나 노사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았다. 더구나 노조원에 대한 해고 및 징계는 1980년 신군부 시절 이후 최대 규모로 이뤄졌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이념을 떠나 낙하산 사장을 막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가장 명백한 낙하산 사장의 유형은 대선 캠프 특보 출신이 임명되는 경우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주요 언론사·언론기관의 수장으로 임명된 MB 대선캠프 특보 출신은 8명에 이른다. 김인규 KBS 사장은 17대 대선 이명박 캠프 방송전략실장 출신이며 구본홍 전 YTN 사장 역시 MB 캠프 방송특보를 지냈다. 청와대 언론문화특보에서 곧바로 자리를 옮긴 이성준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도 있다.

그 밖에 김영일 불교방송 사장 직무대행, 양휘부 전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 이몽룡 스카이라이프 사장, 정국록 전 아리랑TV 사장, 차용규 전 OBS 사장, 최규철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도 특보 출신이다.

‘낙하산’ 있는 곳에 해고·징계·보복인사 논란

낙하산 사장이 입성한 언론사들은 대부분 안팎으로 적지 않은 내홍을 치르는 등 진통을 겪고 있다.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을 이유로 해직기자 6명을 포함해 33명의 징계자를 양산한 구본홍 전 YTN 사장은 가장 깊은 상처를 남겼다. 2008년 해직된 6명의 기자들은 4년째 해고무효 소송을 벌이며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회사 내부 역시 구성원 간의 불신과 갈등이 계속돼 조직의 화합은 요원하다. 최근 기자 3명이 한 종합편성채널로 옮기고 추가 이적설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 같은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많다.

김인규 사장을 맞이한 KBS는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라는 풍파에 시달리고 있다. KBS의 숙원인 TV 수신료 인상은 도청 의혹 파문에 좌초될 위험에 처했다. 뉴스의 공정성 시비도 기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다. 한 중견기자는 “요즘 우리 뉴스를 보면 ‘권력에 무뎌졌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며 “기자들 사이에서도 정치적 입장을 떠나 ‘다음번엔 특보 사장이 오면 안된다’는 데 고개를 끄덕이는 분위기”라고 털어놨다.

양휘부 전 코바코 사장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코바코의 한 관계자는 “양 전 사장은 코바코의 존재를 강화하고 공영렙제도를 바로세우겠다고 선언했다”며 “개인적으론 노력했겠지만 긍정적 결과를 낸 것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최근 코바코 노조가 한 달 넘게 이원창 사장 퇴진 투쟁을 벌이는 것이 양 전 사장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은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특보 출신이란 약점을 감수하고 사장을 인정했지만, 회사는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는데 ‘색깔론’ 시비까지 있는 새 사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역시 방송특보 출신인 차용규 OBS 전 사장은 2008년 구성원의 반대를 무릅쓰고 취임하기는 했지만 OBS의 최대 현안인 역외 재송신 허가 좌절과 경영 악화 등의 책임을 지고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1년 만에 사퇴했다.



   
 
   
 
불교방송은 지난해 말 김영일 사장 직무대행의 ‘연봉 1원’ 약속 불이행과 직원 상여금 체불 등을 이유로 공개적으로 노조가 퇴진투쟁을 선언하는 등 노사관계가 순탄치 않다. 이 과정에서 장용진 노조위원장은 지방전보 발령을 받아 중앙노동위의 원직복직 결정으로 복귀했지만 다시 지방으로 전보돼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특보 출신은 아니지만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인물이 사장에 임명된 뒤 갈등이 끊이지 않는 곳은 MBC다. 오랜 정치부 기자 생활 동안 이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진 김재철 MBC 사장은 “MBC 현직에 있는 사람 가운데 MB와 가장 친한 인물”이라는 평이 뒤따르기도 했다. 김 사장 취임 후 총파업과 관련해 당시 이근행 노조위원장 해고 및 전국 MBC 노조원 중 1백여 명이 징계를 당한 것을 비롯해 크고 작은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 사장이 강력하게 추진하는 지역MBC 광역화 과정에서 정대균 진주MBC 노조위원장도 해고됐다. 노사관계는 역대 최악이라고 할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선진국은 독립 위원회가 사장 선출
어떤 권력이든 언론을 장악하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제 최소한 사장의 선출만은 정파적 이익을 떠나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제도적 보완책도 조금씩 논의되고 있다. 민주당 정장선 의원이 대표발의한 방송법 일부개정안과 방송문화진흥회법 일부법률개정안도 그 예다.

△11명인 KBS 이사를 12명으로 증원 △여당 4, 야당 4, 방통위 4명 이사 추천 △사장 임명 시 현행 과반에서 3분의 2 이상 찬성 등이 방송법 일부개정안의 뼈대다. 야당 이사가 일부라도 동의하지 않으면 여당과 정부가 미는 사장 후보라 해도 선출될 수 없는 셈이다.

방문진법 개정안은 사장 임면을 포함해 MBC의 공적 책임, 기본운영계획, 결산 승인, 경영평가 및 공표, 정관변경 승인에 관한 사항은 재적이사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했다. 이사 선출도 현재 방통위가 9명 전원을 추천하게 돼 있는 것을 여당 3, 야당 3, 방통위 3명씩 추천토록 했다. 이러면 방문진 이사 여야 성향 구도는 5대 4가 되며, 사장을 임명하려면 6명의 동의가 필요하다. 방문진은 민감한 사안에서는 항상 여야 6대 3의 구도로 갈려 결국 다수의 힘에 이끌려갔다. 이 같은 힘의 불균형을 극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외국 공영방송의 사장 선출제도도 참고할 만하다. 공통점은 의회와 정부로부터 독립돼 다양한 계층과 이익을 대표하는 위원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사장을 선출한다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공영방송마다 독립적으로 구성된 ‘방송위원회’에서 사장 선출 및 주요 사항을 결정한다. 독일의 대표적 공영방송인 ZDF의 경우 방송위원 77명을 정당, 지역, 직능, 종교 등 각 부문별 대표로 다양하게 구성한다. 이 중 5분의 3이 동의해야 사장에 임명될 수 있다. NHK는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경영위원회 위원 12명을 지역 등 부문별 대표로 뽑아 의회의 동의를 얻는다. BBC는 4개 지역 시청자위원장을 포함해 10명으로 구성된 BBC트러스트가 사장을 뽑고 형식적으로 왕의 칙허장을 받는다. 모두 권력의 개입을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으나 최소화시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 것이다.

언론사 내 ‘거버넌스’ 개선 핵심
그러나 사장 선출제도 개선만으로 낙하산 논란의 재연을 막기는 불가능하다는 지적 또한 많다. 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결국 조직과 사람이다. 공영방송사 이외의 사각지대인 언론사·언론기관도 많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민주주의의 확립과 정치 문화 및 언론사 내의 ‘거버넌스’의 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목한다.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는 “이사회 등의 소수파가 일정 동의해야 임명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제도 확립이 대안”이라면서도 “보은 중심의 정치문화와 패거리의식을 극복하지 않고 언론사 구성원들의 확고한 자각이 없다면 ‘낙하산 사장’문제는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언론 단체들의 논의도 시작될 예정이다. 전국언론노조는 9월쯤 총선·대선을 대비해 미디어정책의 청사진을 제시할 논의구조를 본격 운영할 계획이다.

이강택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은 “선출 제도 문제와 함께 사장의 전횡을 견제·감시할 수 있도록 노조,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언론사 내 ‘참여와 분권’ 구조가 정립돼야 한다”며 “낙하산 사장을 막는 길은 결국 민주주의의 정착”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