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지금 KBS에 대한 여론은 그야말로 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하다. 한 달 가까운 침묵과 애매모호한 해명으로 일관하는 사이, 공영방송 KBS는 처절하게 무너졌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선 취재 기자들의 몫이다. 당장 취재현장에서 ‘KBS 너희들이 그렇지 뭐, 영혼 없는 기자들아 딴 데 가서 취재하라. 이런 식의 조롱과 비아냥이 들려오고 있다. 심지어 취재현장에서 쫓겨나는 경우도 있다.” (2000년 이후 KBS 입사 기자들 166명) KBS와 MBC가 위기에 처했다.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이 노골화한 이후 ‘공영’이란 이름이 무색해지더니 이제는 갈 데까지 간 것 같다. KBS는 야당 최고회의 도청 의혹을 받아 자사이익을 위해서라면 기본적인 언론윤리조차 헌신짝처럼 팽개치는 집단이라는 비난을 사고 있다.

▲ 김주언 전 한국기자협회장
# 2. “MBC라는 언론사는, 기자의 말이 전달되는 통로를 하나 둘 없애더니 이제는 기자 이전에 사원이라는 신분을 들이대며 입을 막으려 한다. 취재원 앞에서 떳떳하기가 점점 힘이 들고, 언론의 자유는 회사 밖 어딘가에 있거나 헌법 조문에만 있는 듯하다.” / “몸은 힘든데 머리와 가슴은 비어가는, 우리는 영혼이 없는 언론사 사원이 되고 있다.” (MBC 노보‘영혼 없는 사원으로 전락한 기자들’)
MBC는 이른바 ‘소셜테이너 고정출연 금지 규정’으로 사회참여 인사들의 고정 출연을 제한함으로써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긴급조치 시대’로 퇴행했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김인규, 김재철 ‘양김사장’이 지배하는 KBS와 MBC는 ‘공영방송’으로 부를 수 없을 지경이다. 이들에게 방송은 국민의 것이 아닌, 개인의 소유물인 것처럼 보인다.
KBS는 수신료 인상을 위해서라면 김인규 사장의 지휘 아래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정치부 기자들은 수신료 인상에 반대한 야당 의원들에게 “내년 총선 때 보자”고 협박하는가 하면, 한 기자는 야당 최고위원 회의실을 도청해 녹취록을 여당 의원에게 전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KBS는 김 사장 체제에서의 최대 과제인 수신료 인상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수신료를 올리려면 모든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방송을 통해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KBS의 행태를 보면 이명박 정부를 위해서라면 온갖 비난을 감수해서라도 비판적인 방송을 막는 데 온힘을 기울였다. 그야말로 ‘막가파 양아치’ 수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도청 녹취록 여당 의원에 전달 “하수인역할”
KBS 경영진은 아직 도청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경찰이 도청의혹을 받고 있는 장모 기자에 대해 본격 수사에 나서면서 많은 국민은 KBS를 ‘도청이나 하는 불법집단’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취재를 위해 도청을 한 것도 언론윤리에 어긋나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하물며 도청된 녹취록을 여당 의원에게 전달했다는 의혹은 KBS가 이명박 정부의 하수인 역할을 했다는 점을 드러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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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디어행동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KBS 본관 앞에서 'KBS 도청 의혹 진상조사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 ||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낙하산 사장 임명 등으로 일찌감치 진통을 겪었던 KBS가 이번에는 ‘친일독재 미화 방송’이라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친일파 백선엽 특집방송을 내보낸 데 이어 이승만 특집을 방송할 계획이어서 4월 혁명 단체는 물론, 광복회 등으로부터 거센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
KBS 기자들이 시위현장에서 “수신료 올리려고 도청이나 하고”라는 야유를 들으면서 폭행까지 당한 것은 KBS 경영진이 자초한 것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국민의 비아냥대로 ‘김비서(KBS)’ 방송임을 자인한 셈이다.
MBC 소셜테이너 출연금지 논란
MBC가 겪고 있는 위기상황도 KBS와 크게 다르지 않다. MBC는 그동안 ‘PD수첩’과 같은 비판 프로그램으로 공영방송으로서의 위상을 크게 높였다. MBC 경영진이 PD수첩 프로그램의 방영을 금지하고 제작진에 대한 보복인사를 단행했을 때 시민이 MBC 사옥 앞에서 촛불을 들었던 것도 이를 잘 말해준다.
그러나 김재철 사장은 김미화씨와 김종배씨 등 경영진에게 껄끄러운 인사들을 라디오 프로그램 고정출연에서 배제하고 이제는 ‘소셜테이너 고정출연 금지규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소셜테이너 고정출연 금지규정’은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에 특정인, 특정단체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지지 또는 반대하거나 사실을 오인하게 하는 발언이나 행위로 인해 회사의 공공성이나 명예와 위신이 손상되는 경우’ 고정출연을 제한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토론 패널로 참여할 예정이던 배우 김여진씨의 출연이 취소됐다.
김씨는 홍익대 청소노동자 문제, 반값등록금과 한진중공업 관련 집회 등에 참여해 여론의 관심을 모으면서 이른바 ‘소셜테이너’로 불렸다.
이 규정이 시행되자 소설가 공지영씨와 이외수씨, 서울대 조국 교수, 제정임 세명대 교수,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 고재열 ‘시사IN’ 기자 등 문화계 학계 언론계 인사들이 MBC 출연거부를 선언했다. 이들은 ‘소셜테이너 고정출연 금지규정’이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억압하는 사례”라며 “이론과 논리 이전에 황당하고 웃긴, 현 정권과 MBC 경영진의 천박한 사고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특히 탁교수는 MBC 본사 앞에 조화를 세워놓고 ‘삼보일퍽’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지식인들이 MBC 출연거부를 선언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MBC 경영진의 이번 조치는 한마디로 독재정권시절에도 보기 힘들던 희한한 일이다. 이에 분노하는 MBC 현장 PD들의 지적대로 경영진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인사들의 출연을 거부하는 ‘블랙리스트 법’일 뿐더러 이른바 ‘막걸리 보안법’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구시대의 유물을 박물관에서 꺼내 사옥 앞에 큼지막하게 전시한 꼴이다. 경영진이 방송 출연자들의 사상을 검열하여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사전에 걸러내겠다는 발상은 언론인이라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발상이다. 더구나 공영방송을 자처하는 방송사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두고두고 세계 언론계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한마디로 ‘MB씨’(MBC) 방송이라는 별명이 어울린다고나 할까.
기자들 ‘로비널리스트’(Lobbynalist)인가
KBS와 MBC, 두 공영방송의 위기는 언론계의 자사이기주의, 또는 집단이기주의와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미디어환경이 급변하면서 인쇄매체인 신문은 이미 ‘레드오션’에 빠져 버렸고 방송사들도 케이블TV의 급성장 및 4개 종합편성채널의 등장 등으로 생존의 위기에 몰려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 알 권리에 복무해야 할 공영방송 기자들도 ‘자사이기주의’에 빠져 기본적인 언론윤리를 저버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언론사’의 위기를 말하고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언론인’의 위기가 닥치고 있는 것이다.
KBS 기자의 도청의혹 사건은 잘 알려진 것처럼 수신료 인상을 두고 일어났다. KBS는 사장을 필두로 전 사원이 수신료 인상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이 과정에서 도청의혹과 국회의원 협박이 불거진 것이다. 기자들이 언론윤리를 망각한 채 자사의 이익을 위해 로비스트로 나섬으로써 이제는 기자들에게 ‘로비널리스트’(Lobbynalist)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이 하나 더 붙었다. 게다가 권력을 감시하라고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야당의원을 협박하는 ‘폭력’으로 바꿔버린 데에는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수신료는 KBS를 시청하지 않더라도 TV 수상기를 가지고 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매월 내야 하는 준조세이다. KBS가 명실공히 ‘국민의 방송’으로서 공영방송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면 30년만의 수신료 인상에 반대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고액 연봉을 받는 KBS 직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월 소득 1백만원도 안 되는 저소득층의 호주머니에 손을 내미려는 행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자사이기주의에 빠진 모습은 MBC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미디어렙 논의에서 MBC는 방송사들이 독자적으로 광고를 판매하는 ‘1사 1렙’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경영진뿐 아니라 노조와 기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종합편성채널의 광고판매를 미디어렙에 위탁하여 광고시장의 혼탁을 예방해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는 무시해버린다.
MBC 관계자들은 “자사이기주의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재원구조가 민영인 SBS와 다를 바 없는 MBC에게 공영 미디어렙을 강요하는 것은 생존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소셜테이너 고정출연 금지규정’ 같은 촌극이 나와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언론인 출신인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은 공저 ‘저널리즘의 기본요소’(The Elements of Journalism)에서 “저널리즘이 가장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은 시민이다”라고 선언했다. “뉴스를 취재하는 사람들은 다른 회사의 고용자들과 다르다. 그들은 때로 자기 고용주의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뛰어 넘어야 하는 의무를 가진다. 그리고 바로 그 의무감이 고용주가 재정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원천이기도 하다.”
국민의 신뢰없는 언론사 존재가치 없어
KBS와 MBC 기자들뿐만 아니라 ‘자사이기주의’에 빠진 모든 언론사 기자들이 가슴 속에 깊이 간직해야 할 금과옥조이다.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 언론사는 더 이상 존재가치가 없다. 국민의 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은 더 말해 무엇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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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일 저녁 서울 세종로에서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이 정부에 반값등록금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서 영화배우 김여진씨가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뉴시스) | ||
공영방송은 무엇보다도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가감없이 전달해야 한다. 영국의 방송연구소가 발간한 ‘영국의 공영방송 : 주요원칙’(1986년)은 8개의 이념을 정리해냈다. 지리적 보편성, 보편적 소구, 소수계층 이익 보호, 국가 정체성과 지역사회 봉사, 모든 이익집단으로부터의 격리, 공평한 비용부담, 좋은 방송을 위한 경쟁, 프로그램 제작자를 해방시키는 공적 규제 등이 그것이다.
우리의 공영방송이 과연 이러한 이념을 얼마나 실행하고 있느냐를 곰곰이 따져 볼 때다. ‘MB 해바라기’ 성향만을 보이는 두 방송사 경영진은 방송을 ‘개인 출세를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진다. 공영방송의 이념을 따지기에는 너무 한가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방송사 내부에서 일고 있는 일부 기자들의 ‘공영방송 지키기’ 움직임을 그대로 지나쳐버릴 수는 없다. 1백66명의 KBS 기자들이 낸 성명서를 보면, 이들의 충정이 느껴진다. 경영진의 처사에 대항하여 ‘소셜테이너 고정출연 금지규정’의 위헌성을 들어 헌법소원 등을 추진 중인 MBC 노조의 움직임도 국민에게 희망을 준다.
의인(義人) 몇 사람만 있어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경영진의 핍박이 심하고 옳은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들의 목소리는 한 줄기 햇살이다. 많은 국민이 이들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주언 (전 한국기자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