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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민용 경향신문 엔터테인먼트부 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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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전 총리가 크게 망신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한나라당 이용삼 의원이 타계했을 때 빈소를 찾아가 조문하면서 거푸 ‘황당 발언’을 한 일 말입니다.
정 전 총리는 4선 의원이던 고인을 초선 의원으로 부르는가 하면 평생 독신으로 산 고인을 두고 유족에게 “자제분들이 많이 어리실 텐데 참 걱정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고인의 동생을 형으로 착각하기도 했다지요. 결국 정 전 총리는 자신의 말실수를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했습니다.
당시 개그에 가까운, 정 전 총리의 문상 관련 보도를 접하면서 입맛이 씁쓸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 전 총리가 문상을 할 때의 언어 예절을 몰라 당황한 나머지 실수를 거듭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문상을 가서 상주에게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머뭇거리다 그냥 입에서 툭 튀어나온 말을 생각 없이 전하고 합니다. 그중에는 결례의 말도 적잖습니다.
문상을 갔을 때 가장 하기 쉬운 말실수는 상제에게 “그나마 호상이라 다행입니다”라며 ‘호상’을 운운하는 것입니다.
호상(好喪)은 “복을 누리고 오래 산 사람의 상사(喪事)”를 뜻하는 말로, 대개 화목한 가정을 이끌면서 천수를 다 누린 어르신이 돌아가셨을 때 씁니다.
하지만 이 말은 제3자끼리 “그래도 김 영감님은 호상이야” 따위로 써야지, 상주 등에게 직접 건네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천수를 다 누렸다고 하더라도 부모나 집안 어르신의 죽음을 비통해하지 않을 후손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문상을 갔을 때 상주 등에게는 어떤 말을 전해야 할까요?
가장 좋은 말은 ‘침묵’입니다. 상가에서는 무조건 말을 아끼고 삼가야 합니다. 말로 슬퍼할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애통해하며, 그것을 얼굴로 보여주면 그만입니다. 고인의 죽음을 정말 가슴 아파하는 표정이 상을 당한 분들에게는 가장 큰 위로가 됩니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어색하다면 ‘얼마나 슬프십니까’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정도로 간단히 전하면 됩니다.
예전에는 부친상을 당한 상제에게는 “대고(大故) 말씀 뭐라 여쭈오리까”로, 모친상을 치르는 상제에게는 “상사 말씀 뭐라 여쭈오리까” 따위로 구분해 썼다고 합니다.
또 남편의 죽음을 맞은 사람에게는 “천붕지통(天崩之痛)이 오죽하겠습니까”라고 말하고, 아내를 잃은 사람에게는 “고분지통(叩盆之痛)…”을, 형제의 상을 당한 사람에게는 “할반지통(割半之痛)…”을 써 의미를 구분했다고 합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는 “참척(慘慽)을 당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십니까”라고 위로의 말을 전했고요.
하지만 요즘에 문상객이 이런 말을 하면 상주 등이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 당황해할 것이 뻔합니다. 이 때문에 요즘에는 이렇게 어려운 한자말을 쓰는 것을 되레 예에 어긋나는 화법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만 부모의 상을 당한 사람에게는 “얼마나 망극하십니까” 정도로 ‘망극’을 쓸 수 있습니다. 원래부터 ‘망극(罔極)’은 부모나 임금에게 상서롭지 못한 있이 생겨 지극히 슬플 때 쓰는 말입니다. 따라서 배우자를 잃은 사람이나 형제자매를 먼저 떠나보낸 사람에게는 ‘망극’을 써서는 안 됩니다.
말을 아끼는 것은 문상객뿐 아니라 상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상은 말로써 하지 않는 것이 모범이듯이, ‘죄인’인 상주는 더욱 말을 아껴야 합니다. 문상객의 말에 그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나 “고맙습니다”로 문상을 와 준 것에 고마움을 전하면 그만입니다.
그리고요. 요즘에는 상주가 지인들의 틈에 끼어 술도 한잔 하며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는 ‘죄인’의 바른 몸가짐이 아닙니다.
<엄민용 경향신문 엔터테인먼트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