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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저강도 언론통제'

한국기자협회 온라인칼럼 [김주언의 미디어거울]

김주언 전 한국기자협회장  2011.06.23 11:3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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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주언 전 한국기자협회장  
 
# 1
 ○내외통신 보도, “16일 북한, 일본 사회당 전당대회에 축전.” 이 사실을 적절히 보도 바람. (1985년 12월 17일).
 ○북한, 팀 스피리트 훈련기간 중 남북대화 중단 선언. 내외통신 보도 전문을 실어줄 것. (1986년 1월 19일).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 언론사 편집국에 시달됐던 보도지침 중 북한관련 지침 일부이다. 당시 신문과 방송 등 제도언론은 문화부 홍보조정실이 매일 내려 보내는 보도지침에 따라야 했다.
전두환 정권은 보도지침을 통해 보도의 방향과 논조는 물론, 기사의 비중과 분량까지 결정하여 언론사들이 반드시 지키도록 했다. 특히 북한 관련 보도는 독자적인 취재보도는 엄격하게 금지됐다. AP 등 통신사는 물론, 신문과 방송의 북한관련 보도를 인용할 수도 없었다. 오로지 내외통신이 전하는 뉴스와 논평을 실어야 했다.
이명박 정부는 최근 일부 언론사에 남한이 중국 베이징 비밀접촉에서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제안했다는 북한 국방위원회 대변인 발표문 전문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일부 언론사들은 통일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발표문 전문이나 일부를 삭제했지만 이에 응하지 않은 언론사도 있었다. 발표문에는 남북접촉 경위와 남측 제안 내용이 상세하게 담겨 있기 때문에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정보 제공차원에서 필요하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통일부는 “국방위 대변인 발표문이 기자와의 ‘문답’ 형식으로 실린 조선중앙통신과 연합뉴스가 전재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만큼 연합뉴스가 보도하지 않은 발표문 전문을 게재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가 공식적으로 게재하지 않은 원문을 다른 언론사가 게재하는 것은 조선중앙통신과 맺은 계약에 위반된다”며 연합뉴스측이 통일부에 문제를 제기했다는 이유였다.

 # 2
 ○오늘 학생시위 중 외대학생과장이 얻어맞아 중태인데 주 제목을 “학생 폭력화” 등으로 할 것.(1986년 3월 13일)
 ○인천시위 관계기사 및 해설에서 “경찰의 과잉개입이 과격데모를 유발”했다는 식으로 하지 말 것.(1986년 5월 15일)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 학생시위 관련 보도지침 중 2개만 뽑아본 것이다. 당시 대학가 시위 기사는 무조건 1단으로 보도해야 했다. 그것도 시위대가 학교 밖으로 나왔을 때만 보도할 수 있었다. 교내시위는 ‘보도 불가’였다.
다만 학생시위를 ‘과격 용공’으로 대대적으로 키워 보도하는 것만은 예외였다. 학생이나 노동자의 가두시위 보도에는 ‘왜’가 없었다. ‘학생 불법 과격시위로 시민불편 가중’이라는 시커먼 제목이 신문지면을 장식했다. TV에는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장면만 반복 방영됐다. 언론이 정부의 보도지침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때 아닌 경찰의 황당한 보도지침이 파문을 일으켰다.
지난 11일 오후 트위터에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교통 방송하는 리포터들에게 내려온 공문’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올라왔다.
공문에는 “등록금 관련 야간 촛불집회라는 표현을 그간 썼으나, 이제부턴 ‘한대련 등 등록금 관련 야간 불법집회’라는 용어를 써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지시문이 떠 있었다. 공문에는 “한대련 등 등록금 관련 야간 불법집회로 인해 어디 구간이 정체이니 어디로 우회하시기 바랍니다” “한대련 등 등록금 관련 야간 불법집회 참가자들이 어디 구간의 도로를 점거하여 정체되니 우회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방송멘트 예시문까지 적혀 있었다.



   
 
  ▲ 21일 오후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한대련을 비롯한 참가자들이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촛불문화제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이 사실이 알려진 직후 인터넷에는 “전두환 정부의 보도지침에 버금가는 신 보도지침”, “이런다고 촛불이 꺼지겠냐”는 등 정부와 경찰을 비난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경찰은 이에 대해 “교통정보센터 관계자가 리포터들에게 개인적으로 의견을 전달한 메모일뿐”이라고 군색하게 해명했다. 경찰은 “실무자의 단순한 실수”라거나 “용어 선택은 리포터들이 자율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조현호 경찰청장은 기자들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진정성이 담겨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독재망령 부활’ ‘2011년판 보도지침’ 등 비난여론을 피해보기 위한 일시적 제스처처럼 보인다.

이명박정부 언론자유 급격위축

이명박 정부 들어 언론자유가 급격히 위축되어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지적은 수없이 되풀이되어왔다. 수많은 기자와 PD들이 해직되거나 현업에서 쫓겨났다. 몇몇 언론인은 검찰의 기소로 재판정을 드나들어야 했다.
이에 반발한 언론인들은 중징계에 처해졌다. 뉴스를 전하는 언론인뿐 아니라 미네르바 등 인터넷 논객의 처지도 비슷했다. 프리덤 하우스, 국경없는 기자회 등 국제 언론단체들로부터 언론자유도 순위가 후퇴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유엔은 각종 법령을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눈 하나 꿈쩍 않는다. 오히려 좀더 교묘한 방식으로 언론을 통제하려고 시도한다.

위에서 제시한 사례는 이명박 정부의 언론통제가 일상화해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가 직접 나서 언론인들을 해고하거나 징계하는 대신 정부가 장악한 언론사들이 알아서 해주면 된다. 이명박 정부의 손에 들어온 방송사들이 나서면 정부는 손에 피를 묻힐 필요가 없다.

비판적인 언론인들을 현업에서 몰아내고 다른 언론인들에게는 ‘겁주기’라는 이중의 효과를 달성할 수 있다. 북한 관련 보도는 조선중앙통신사와 독점 계약한 연합뉴스를 활용하면 된다. 연합뉴스가 정부에 불리한 정보는 언론사에 제공하지 않거나 과거 내외통신이 그랬던 것처럼  정보를 왜곡해서 내보내면 된다. 연합뉴스 핑계를 대면 정부의 책임을 모면할 수 있다.

보도지침 들통나면 “실무자 실수”
보도지침도 중앙정부 차원에서 시달할 필요가 없다. 정부 하부기관에서 알아서 보도지침을  시달했다가 들통나면 ‘실무자의 실수’라고 변명하면 그만이다. 따라서 이제는 경찰 하부기관에서도 마음대로 보도지침을 시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악명 높았던 전두환 정권의 문공부 홍보조정실만 사라졌을 뿐이다. 조현호 청장은 마지못해 기자들에게 사과했지만, 속으로는 보도지침을 내려보낸 관계자들을 치하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통제 정책이 모든 정부기관에 스며들어 누구든 언론을 통제할 수 있다는 발상에 젖어 있는 것 같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통제는 군사독재정권의 수법을 빼 닮았지만, 물리적 폭력을 동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보도지침을 지키지 않았다고 남산 안기부 분실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지 않아도 된다.
신문사를 폐간하겠다는 협박도 없다. 해직자들은 다른 직장에 자유롭게 취업할 수 있을 뿐더러 법원에 해고무효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나 ‘PD수첩’처럼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법원의 최종 판결을 받을 때까지 ‘통제의 효과’는 충분히 거둘 수 있다. 이를 통해 언론인들에게 ‘겁주기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이러한 방식을 ‘저강도 언론통제’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저강도 언론정책 첨병은 낙하산 경영진
아무래도 이명박 정부의 ‘저강도 언론통제’의 첨병은 정권에 장악된 ‘관제 언론사’의 낙하산 경영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MB 낙하산으로 방송사를 장악한 ‘점령군’들이 비판적인 직원들을 솎아내고 시사 프로그램을 없애버린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방송 뉴스에서 이명박 대통령에 비판적인 뉴스를 찾아보기 어려워졌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 전두환 정권시절 저녁 9시 시보와 함께 대통령 동정을 내보내던 형식적인 ‘땡전뉴스’는 없어졌다. 하지만 내용을 곰곰이 따져보면 이명박 대통령의 ‘말씀’을 따르는 저강도 ‘땡박뉴스’가 등장했다는 비아냥도 들린다.    
문제는 일반인들이 제대로 알 수 없는 곳에서도 이러한 저강도 언론통제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남북 베이징 비밀접촉에서의 북한 국방위 대변인 발표문 보도통제 사건에서 의 연합뉴스 역할이 그것이다. 연합뉴스가 제공하지 않은 발표문 전문을 보도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연합뉴스의 잘못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군부정권시절 내외통신, 북한관련 정보독점
군사독재정권 시절 북한관련 정보를 독점했던 내외통신은 1974년 1월 13일 내외문제연구소 부설기관으로 창간됐다. 처음에는 ‘통신’이란 이름으로 발행되다가 1975년 2월 1일 사단법인 ‘내외통신’으로 독립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무소불위의 안기부가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었던 내외문제연구소는 이른바 ‘사상범 조작’을 담당했던 곳이었다.

독재에 항거하다 붙잡힌 학생과 재야인사의 집에서 압수해온 사회과학서적을 감정하여 ‘이념서적’으로 낙인찍었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불온서적’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여 기소했다. 내외문제연구소는 민주인사를 빨갱이로 만들어내는 감정기관이었던 셈이다.



   
 
  ▲ 연합뉴스가 서울 종로구 수송동 현 부지에 착공 예정인 신사옥 조감도.  
 
내외통신 1998년 12월 연합뉴스에 인수돼

당시 언론계에서는 내외통신을 ‘유령 통신’이라고 불렀다. 안기부가 운영하는 통신사로만 알려져 있을 뿐 내외통신에 근무하는 기자들은 코빼기조차 볼 수 없었다. 내외통신에는 북한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하는 용어로 북한의 실상을 왜곡하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북한 관련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정보기관에서 만들어내는 선전물이 내외통신이었던 셈이다.   

내외통신은 민주화와 남북관계가 진전되면서 1998년 12월 연합뉴스에 인수됐다. 연합뉴스는 당시 “최근 급증하고 있는 북한관련 정보의 체계적, 효율적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양사 통합을 단행했다”고 통합배경을 설명했다.

이로써 25년 동안 유지돼왔던 정보기관의 북한정보 독점체제는 무너졌다. 연합뉴스는 이후 남북관계가 화해기조로 전환되면서 2002년 일본의 조선통신과 조선중앙통신 및 조선중앙TV 기사에 대한 전재계약을 체결해 북한관련 뉴스를 서비스하고 있다.

북한 국방위 발표문 통제사건은 정부가 언론사의 보도나 편집에 개입하려 했다는 비난을 피해보려는 교묘한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통일부는 “조선중앙통신과 연합뉴스가 전재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만큼 연합뉴스가 보도하지 않은 발표문 전문을 게재해서는 안 된다”며 “조선중앙통신의 보도 내용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통일부가 그동안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된 북한의 성명이나 발표문 원문을 제공하고 언론사들이 이를 전재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납득이 되지 않는다. 

통일부의 해명을 그대로 믿더라도 정부와의 사전접촉에 따라 연합뉴스가 총대를 메기로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정부로부터 연간 수백억원에 달하는 지원금을 받는 연합뉴스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고려하여 ‘알아서 긴’ 것일까. ‘조선중앙통신과의 상업적 계약’으로 북한뉴스를 독점적으로 공급하고 있는 연합뉴스의 반성이 요구된다.

연합뉴스 조선중앙통신 발표전문 제공안한 것 ‘직무유기’
연합뉴스가 조선중앙통신에 실린 국방위 발표문 전문을 언론사에 제공하지 않은 것은 뉴스도매상으로서의 지위를 저버린 직무유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에 관한 북한의 공식 발표문이라면 당연히 언론사에 원문 전문을 제공해야 한다. 보도 여부는 언론사들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독재의 망령’인 보도지침이 슬금슬금 자취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보도지침은 이제 아무리 꽁꽁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정권이 언론사에 보낸 ‘비밀 통신문’이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었다.

물리적 폭력이 판치던 그 시절에도 보도지침은 만천하에 공개됐다. 인터넷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현 시점에선 더 말해 무엇하랴. 이제 어떤 보도지침도 ‘공개된 비밀’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명박 정부는 똑똑히 알아야 한다.
이번 경찰 보도지침도 공문 사진이 트위터를 타고 순식간에 퍼져나감으로써 널리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도지침으로 언론을 통제하려는 이명박 정부는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가.   

<김주언 전 한국기자협회장>